페들러스 타운의 동양 상점
우성준
송섬별
2019-07-01
452
140*210 mm
979-11-85585-70-3 (03840)
13,8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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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은 성공과 직결된다는 믿음이 있던 그 시절,

한국을 떠나 미국 땅에서 성공을 캐내려는

한인 가족의 치열한 고군분투

 

미국 사회에서 한인들은 미국 이민자들 중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아메리칸드림을 이루어 내고 미국 사회로 편입한 그룹으로 일컬어진다. 한국인 이민자들은 단순히 빈곤을 탈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경제적으로 더 많은 기회를 찾으려고 미국행을 택했다. 그들에게 미국 이민은 곧 ‘성공의 패스포트’였다. 하지만 성공의 땅, 미국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노동시장에서 한인들은 언어 장벽으로 차별을 겪었다. 특히 필리핀계, 인도계 이민자들보다 낮은 수준의 영어 구사 능력은 아메리칸드림의 첫 번째 걸림돌이었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꿨던 많은 이들이 한국 물품 수입점이나 식료품점, 세탁소 등의 자영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던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페들러스 타운의 동양 상점Everything Asian》은 1980년대에 뉴저지주 매너스빌, ‘페들러스 타운’이라는 쇼핑몰에서 아시아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는 한인 가족의 미국 정착 분투기다. 주인공 데이빗(한국 이름은 대준)의 아버지가 5년 전에 미국으로 먼저 건너가 자리를 잡고, 가족들이 뒤이어 미국으로 들어와 정착한 첫해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새로운 미국인’의 탄생 과정과 그 성장통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면서 동시에 열두 살 소년의 눈에 비친 미국 사회와 그 안에 살고 있는 군상들을 치밀하게 풍자했다.

한편 이 책의 저자 우성준은 저자 자신이 실제로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 1.5세대다. 그래서 이민자들의 삶의 모습을 더 섬세하고 정확하게 포착해 그려 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데이빗은 저자의 어린 시절 모습이기도 하다.

 

인종차별, 가난한 나라에서 온 동양인에 대한 차가운 시선,

이등시민으로 살아야 하는데도

왜 그들은 미국에서 뿌리내리려 부단히 노력했을까?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건너간 미국이지만 모든 것이 낯설고 무엇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족 중 영어에 능숙한 사람도 없을뿐더러 주인공의 아빠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미국에 오고 싶어 하지 않았다. 말도 쉽게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주인공 가족이 별일 없이 무사히 정착할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다.

아빠는 가게 일로 항상 바쁘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고 매달 위태위태하다. 엄마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고 영어를 배우려는 의지조차 없다. 게다가 사춘기 누나는 고국에 대한 향수병으로 늘 우울하고, 애꿎은 데이빗에게 시시때때로 그 화를 푼다. 주인공 데이빗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찐따’ 취급을 받는데, 미국 사람들이 자신을 신기한 아이로 쳐다보는 시선이 불편하다. 미국에서 이 가족은 같은 나라에 사는 같은 시민이 아니라 가난한 나라에서 건너온 측은한 사람, 혹은 ‘이등시민’일 뿐이었다.

아빠는 처음 임대 계약을 할 때 같은 건물 안에 아시아 기념품이나 의류를 파는 가게가 없다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게다가 앞으로 이런 물건을 취급하는 가게를 건물에 입점시키지 않겠다는 점도 협의했다. 이 계약은 구두 계약이 아니라 실제 문서로 남긴 법적 효력이 있는 계약이었다.

(…)

“그럼 새로 들어온 가게를 내보내면 되는 거 아냐?” 내가 누나에게 물었다.

“멍청아, 그 가계도 계약을 했잖아. 계약을 어기면 소송을 당하게 된다고.”

“그럼 우리도 소송을 걸면 안 돼?”

“모르겠어. 돈이 들 걸? 그리고 소송은 미국 사람들이 하는 일이야. 우리 같은 사람들 말고.”

내 생각엔 소송이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같았지만 어차피 선택은 내 몫이 아니었다.

_아시아의 향취, 108~109쪽

 

내 옆자리 남자는 머리를 누나보다 길게 기르고 손톱에는 검은 매니큐어를 칠했는데, 그 옆에 있자니 나는 평범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학교에서도, 가게에서도, 나는 신기한 아이, 이국적인 아이였지만 여기서는 아니었다.

_사진 속 여자, 346쪽

 

바쁘게 살아도 미국 사람이 될까 말까 한데,

아빠가 요즘 수상하다. 뭔가 있는 게 분명해!

 

주인공 데이빗의 아빠는 성실한 사람이지만 요즘 들어 어딘가 수상한 구석이 있다. 흰머리가 부쩍 늘어나고 늘 근심에 젖어 있는 엄마의 표정을 보니 무언가 심상치 않다. 급기야 데이빗과 데이빗의 누나는 아빠를 미행할 탐정을 고용하고, 부모님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의 실체를 파헤치려고 한다. 가족이 무너지는 장면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아메리칸드림을 쫓아 미국으로 간 이 가족, 이대로 정말 괜찮을까?

 

“도움이 필요하니?” 밀러가 여자아이에게 물었다.

“네.” 여자아이가 대답하더니 자기는 수전 김, 동생은 데이빗 김이라고 소개했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마치 연극 대사처럼 스타카토로 나왔다.

“제 아빠를 미행해 주세요.”

_밥 밀러, 322쪽

 

엄마는 두 달 전부터 아빠가 월요일마다 뉴욕에 가서 도매 물건을 떼어 오는 것 외에 딴짓을 하는 게 아닌

가 의심했다고 했다.

“어떻게?”

“여자의 본능이야. 오랫동안 같이 살면 배우자가 뭔가 달라졌다는 걸 알아차린다고.”

“하지만 엄마랑 아빠는 5년이나 떨어져 살았잖아.”

“그래서 엄마가 곧바로 알아차리지 못한 거야. 알아내기까지 한참 걸렸지. 아빠 바지 주머니에서 식품점 영수증이 자꾸 나오는 바람에 엄마는 식품점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지난달에 엄마랑 교회에서 만난 아줌마가 아빠를 봤대. 아빠도 정말 멍청하지.”

_사진 속 여자, 337쪽

 

열두 살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미국 이민자들의 삶의 풍경

 

미국 사회 안에서 녹록지 않은 이민자들의 삶의 풍경과 그 주변 공동체 구성원들의 모습을 열두 살 소년의 관점으로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는 점이 이 소설이 더 특별한 이유다. 때로 엉뚱하게도 부모님이 운영하는 상점과 경쟁 관계인 다른 상점 주인 아주머니와의 결혼을 상상하고, 그 짝사랑의 고통에 가슴 아파하는 발칙한 주인공 데이빗의 매력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스테이시 옆에 앉으면 초현실적으로 완벽한 결혼 생활이 눈앞에 그려졌다. 스테이시가 조그만 앞치마를 두르고 팬케이크를 잔뜩 굽는 동안 내가 신문을 읽는 모습. 우리가 손을 잡고 민들레가 피어난 푸른 언덕을 위풍당당하게 걷는 모습. 열두 살에 불과한 나에게도 이런 생각은 우스꽝스러운 환상으로 느껴졌고 스테이시의 끝없이 부풀어 오르는 배가 보일 때처럼 현실이 눈앞에 닥쳐오는 순간, 그 환상도 곧바로 깨지곤 했다. 나는 아기 아빠가 누구일지, 그 사람은 아직 테네시에 있을지, 어쩌면 그 사람 때문에 스테이시가 고향을 떠난 것인지가 궁금했다.

_아시아의 향취, 116쪽

 

《페들러스 타운의 동양 상점》은 적극적으로 더 나은 미래와 행복을 찾아 지구 반대편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모험을 감행한 가족의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결국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화해하고 용서하며 행복을 향해 묵묵히 전진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불안한 미래와 팍팍한 현실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간다. 자신들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 사람들은 마침내 행복을 찾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