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클래식
김성현
2020-09-11
308
153*223 mm
979-11-90955-01-0 (03600)
19,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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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을 노래한 클래식을 만나다

 

그리스‧로마 신화와 함께 서양 예술사에서 양대 축으로 꼽히는 성경. 클래식 음악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수많은 작곡가가 성경에서 영감을 얻어 명곡을 탄생시킨 것이다. 하지만 수난절이라든가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시즌이 아니고는 종교음악은 쉽게 접하기가 어렵고, 클래식 음반점에 가도 종교음악은 제일 끝자리에 놓여 있을 정도로 대중의 관심에서는 살짝 빗겨나 있다. 아무래도 일상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만큼, 종교음악을 ‘최애곡’으로 꼽는 클래식 애호가도 그리 많지는 않다. 다소 생소한 형식 또한 종교음악의 ‘접근성’을 떨어뜨리는지도 모른다. 지은이는 책의 첫머리에서 어린 시절 처음으로 하이든의 〈천지창조〉를 듣고 어리둥절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오페라 등의 표제곡처럼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음악의 경우는 세속음악과 달리 ‘기승전결’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었다.

이 책 『바이블 클래식』은 이런 괴리나 간극을 좁혀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을 바탕으로 한 클래식 종교음악을 선별해 소개한다. 저자는 일간지에서 오랫동안 클래식 전문 기자로 활약했고 그 사이에 클래식 관련 서적을 여러 권 출간했다. 또 지금도 유튜브와 강연을 통해 클래식을 친근하게 대중에게 소개하고 있다. 저자의 친절하고 흥미로운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이 곡들을 창작한 작곡가들의 심정까지 이해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어느덧 종교음악이 친밀하게 느껴지는 것은 물론, 비단 신앙심을 가진 청자가 아니더라도 다층적인 감상이 가능해지게 된다.

 

넓고 깊은 종교음악의 세계

 

책은 1부 구약성서, 2부 신약성서로 나누어 각각 14 작품, 6 작품의 성경에서 출발한 클래식 음악을 소개한다. 성경의 모든 책을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에서 영감을 얻은 클래식 작품을 망라했다. 종교음악을 가까이 접해보고 또 이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하나하나 찾아보면서, 지은이는 의외로 종교음악의 폭이 무척 넓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시대와 장르를 막론하고 종교와 관련 있는 음악이 고구마 줄기처럼 쏟아져 나온 것이다. 덕분에 수많은 종교음악 중에서 무엇을 소개할지를 두고 지은이는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일례로 헨델은 그 유명한 합창곡 “할렐루야”가 나오는 〈메시아〉는 물론이고 〈사울〉,〈솔로몬〉,〈여호수아〉까지 수많은 종교 곡을 내놓았다(이 책에는 헨델의 종교음악에 네 작품 소개되었다). 또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흐, 비발디, 멘델스존 등은 물론, 불신과 회의의 시대라는 20세기에 활약한 쇤베르크와 스트라빈스키, 메시앙과 번스타인 같은 작곡가들이 작곡한 종교음악도 소개돼 있다.

오페라와 교향곡 같은 세속음악이더라도 성경에서 출발한 음악은 책 속에 포함됐다. 작곡가들이 종교음악이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세속음악의 형식으로 성경 이야기를 풀어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성경이 유럽의 문화 전반을 떠받치는 두 기둥 중 한 축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생상스의 〈삼손과 델릴라〉, 베르디의 〈나부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 등 성경에서 모티브를 얻은 오페라와 번스타인의 〈예레미야 교향곡〉, 스트라빈스키의 〈시편 교향곡〉이 그런 예다. 외피는 교향곡이나 오페라 같은 세속음악이어도 본질적으로 지극히 종교적인 작품들이다.

 

삶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작곡가들은 종교적인 곡을 썼다!

 

지은이는 종교음악을 소개하면서 음악의 바탕이 된 성경 이야기는 물론, 작곡 당시 작곡가가 처한 현실적 상황과 음악 세계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놓는다. 특히 정치적 신념과 종교적 믿음이 충돌할 때, 경제적 궁핍과 예술적 자각 사이에서 방황할 때, 작곡가들이 삶의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종교적인 곡을 썼다는 사실에 눈길이 간다. 일례로 쇤베르크가 출애굽기 속 모세를 주인공으로 삼은 오페라 〈모세와 아론〉을 작곡한 것은 나치의 반(反)유대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암울한 시기의 일이다. 유대인인 쇤베르크는 일찍이 개신교로 개종했고 제1차 세계대전 때 자원하여 참전하는 등 스스로 오스트리아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반유대주의를 직접 경험한 후 마음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시오니즘에 경도된 쇤베르크는 이집트에서 노예 상태로 있던 유대인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향했던 모세 이야기를 작품으로 옮기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작품 〈모세와 아론〉은 완성되지 못하고 말았다.

말러처럼 ‘지휘하는 작곡가’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었던 번스타인이 처음으로 작곡한 교향곡 또한 성경 예레미야 애가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예루살렘 멸망에 고통스러워하는 히브리 민족의 비극을 노래했기에 이 교향곡은 유대인이라는 번스타인의 정체성이 녹아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메시앙이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포로로 괴를리츠 수용소에 포로로 잡혀 있던 동안 요한계시록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시간과 종말을 위한 4중주〉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작품은 1941년 1월 15일에 함께 수감되어 있던 세 명의 연주자와 메시앙 자신의 피아노 연주로 괴를리츠 수용소에서 초연됐다. 이처럼 작곡가들은 그야말로 ‘종교에 귀의(歸依)’하여, 즉 종교에 돌아가 기댐으로써 힘든 시절을 겪어 낼 힘을 얻는 동시에 수많은 사람에게 종교적 영감을 전해 준 작품까지 내놓았던 것이다.

각 글의 말미에는 수많은 레코딩 중에서 지은이가 엄선한 음반과 영상이 소개되어 있다. 글을 읽은 후에 추천된 음반이나 영상을 찾아보면 종교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아질 것이다. 해당 종교음악과 관련된 지휘자 혹은 연주자의 일화 또한 흥미를 더한다. 음반뿐만이 아니라 영상까지 다루고 있는데 특히 독특한 연출을 보여주는 프로덕션을 소개해 흥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