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릭 미러
지아 톨렌티노
노지양
2021-02-15
460
135*210 mm
979-11-90955-08-9 (03300)
18,000 원

 

★ 문화일보 2021 올해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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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현시대의 문화적 균열을 지적 열정과 뛰어난 문장력과 명민한 사고력으로 집요하게 파고드는 책이 출간되었다. 인터넷, 페미니즘, 정체성에 관한 경이로운 통찰을 담은 《트릭 미러》다. “밀레니얼 세대의 독보적인 목소리”로 불리는 〈뉴요커〉의 기자 지아 톨렌티노의 데뷔작으로 〈뉴욕타임스〉, 〈타임〉, 〈워싱턴포스트〉, 〈시카고트리뷴〉, 〈파리 리뷰〉 등 수많은 매체가 선정한 ‘올해의 책’을 휩쓸며 뜨거운 관심과 찬사를 받았다. 에세이, 문화 비평, 르포르타주의 독특한 융합으로 탄생한 우아하고도 대담한 산문이 한국 사회에 도착했다. 
톨렌티노는 몽테뉴를 잇는―인터넷 세대의―모럴리스트로, 삶과 세계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성찰한 문장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그는 익숙한 것에서 어두운 밑바닥을 비추고, 낯선 것에서 친숙함을 찾아내 우리에게 안긴다. ‘자아’를 중심으로 놓는 문화에서 나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지 이야기한다. 모두가 기다려온 에세이스트 지아 톨렌티노가 자기 자신과 우리 시대를 정의하는 갈등과 모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를 정직하게 바라본다. 최악의 시대에 탄생한 고전이 우리를 심오한 진실로 이끈다. “트릭 미러는 내 몸매에 단점이 없다는 환상을 제공하면서도 끊임없이 그것을 찾아내야만 하는 자기 형벌이 된다.”
 
 
모두가 기다려온 새로운 에세이스트의 탄생!
방대하고도 진실한 아홉 편의 에세이
 
뒤엉킨 갈등이 불타오르고 있다. 우리의 정체성, 문화, 테크놀로지, 정치, 담화가 한데 섞여서 부글부글 끓는다. 인터넷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장기 기관이 되었고, 관심을 착취하며 자아를 물화하는 생태계를 건설했다. 부의 불평등은 나날이 심각해지고, 각자의 민주주의를 저버리기 시작했으며, 정치적 행위는 온라인상 구경거리로 축소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최소한의 보장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경쟁한다. 무대와 관객은 잠시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감시당하고 추적당하는 느낌은 늘 쫓아온다. 성과와 끝없는 노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째깍째깍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특히 여성은 시장의 자산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최선을 다해 최대화하기 바쁘다. 끔찍한 세상―지금 이곳―이 우리를 갉아먹고 있으며 더는 피할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여기, 현시대의 문화적 균열을 지적 열정과 뛰어난 문장력과 명민한 사고력으로 집요하게 파고드는 책이 출간되었다. 인터넷, 페미니즘, 정체성에 관한 경이로운 통찰을 담은 《트릭 미러》다. “밀레니얼 세대의 독보적인 목소리”로 불리는 〈뉴요커〉의 기자 지아 톨렌티노의 데뷔작으로 2019년 미국에서 출간된 후 〈뉴욕타임스〉, 〈타임〉, 〈워싱턴포스트〉, 〈시카고트리뷴〉, 〈파리 리뷰〉 등 수많은 매체가 선정한 ‘올해의 책’을 휩쓸며 뜨거운 관심과 찬사를 받았다. 2020년에는 펜 문학상 에세이 부문 다이아먼스타인-스필보겔 상 파이널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리베카 솔닛은 “지아 톨렌티노는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에세이스트 중 한 명으로, 나는 그녀에게 계속해서 배운다”고 극찬했다. 《트릭 미러》에 맥동하는 도덕적 분노와 냉소적 농담, 학문적 엄격함은 읽는 이의 마음을 휘어잡으며 묘한 스릴을 선사한다. 에세이, 문화 비평, 르포르타주의 독특한 융합으로 탄생한 우아하고도 대담한 산문이 한국 사회에 도착했다. 이 시대 가장 손꼽히는 작가가 맑은 눈과 부지런한 손으로 우리 사회 불행의 조각들을 적확하게 집어내는 것을 보는 데에는 부인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가 따른다. 더군다나 그것이 자신의 삶을 기꺼이 소재로 삼은 글일 때는 더 깊은 쾌감과 각성이 따라붙는다. 책에 담긴 각각의 에세이는 우리 생활, 문화, 관계를 들여다보는 프리즘이다. 유머와 필력을 무기로 한 방대하고도 집중력을 흩트리지 않는 텍스트 안에서 그는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며 독자들을 거울 앞으로 이끈다. 새로운 에세이스트의 탄생을 기다려온 한국 독자들에게 이 책의 출간이 반가우면서도 섬뜩한 이유다. 
 
 
지루하고 유해하며 우울한 것이 되어버린
인터넷에 관하여
 
처음에 인터넷이 출현했을 때는 상당히 괜찮아 보였다. “아빠 회사에서 처음으로 인터넷을 써보자마자 난 사랑에 빠졌고, 끝장나게 멋지다고 생각했다.” _21쪽
 
강렬한 오프닝 에세이 〈인터넷 속의 ‘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트릭 미러》를 관통하는 가장 큰 소재이자, 지아 톨렌티노를 이루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이 인터넷이다. 톨렌티노는 인터넷의 역사와 함께 “유저”인 우리의 역사를 시간순으로 서서히 더듬는다. 1988년생인 톨렌티노가 처음 인터넷과 만난 것은 1999년으로, 당시는 “온종일 인터넷을 들락날락하는 것이 지금과는 다른 일이고 다른 느낌이었다. 영화 〈유브 갓 메일〉의 시대였고, 온라인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이라고 해봐야 내 가게를 위태롭게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 정도”였다. “한때는 나비였고 연못이었고 꽃다발이었던”, 비교적 친절하고 예의 바르며 사적인 취미 같은 일이자 은밀한 즐거움이 그 보상이었던, 평화롭고 단순했으며 건전했던 인터넷의 초창기 시절을 아련한 필치로 회상한다. 그러다 웹 2.0의 세계가 도래하며 한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던 인터넷은 이제 반드시 해야만 하는 명령이 되며, “개인의 정체성을 중심에 놓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한다.
 
이제 내 인생의 대부분은 인터넷이라는 강제 접속의 미로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이 광기 어리고 과열된, 우리를 숨 막히게 하는 지옥 말이다. _27쪽 

인터넷이 가진 독성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 새롭지 않다. 그러나 《트릭 미러》의 흥미로운 점은 작가 자신이 그가 다루는 주제에 매우 독특하게 연루되었다는 데 있다. 엔젤파이어에서 홈페이지를 만들고 어깨를 으쓱했던 열 살짜리 인터넷 시민은 지금은 〈뉴요커〉에서 그리고 이전에는 〈제제벨〉과 〈헤어핀〉이라는, 온라인 담론을 이끄는 최전선에 자리했던 사이트들에서 글을 써왔다. 그를 대표하는 특성들, 예컨대 재빠르고 유연하며, 장난스럽지만 설득력이 있고, 자신을 클로즈업할 정도의 대담성을 갖추었으며, 언제나 공격받을 준비가 되어 있고,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끊임없이 파악하고 있다는 점 등은 바로 이 온라인 환경에서 차곡차곡 형성되었다. 그리고 지아 톨렌티노는 이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인터넷은 성과 인센티브로 정의된 세계이기에 그 안의 ‘온라인 자아’는 보여지는 것, 성취를 과시하는 것에 집착한다. 트위터의 많은 이들이 올바른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옳은 일처럼 행동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톨렌티노는 이 세계에서 의견 형성 자체가 일종의 행동처럼 인식되고 취급되는 것을 추적하는 한편, 실제로 우리가 변화를 실행하는 데 사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시간을 인터넷이 훔치는 방법을 포착한다. 
 
온라인에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행위는 미심쩍은 가정들을 정언 명령으로 바꾸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스피치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향력이 있다는 가정, 말과 행동에 동일한 힘이 있다는 가정, 나의 생각을 공들여서 적어 나가는 일은 매우 정의롭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혹은 이상적이라는 가정을 기반으로 한다. _41쪽
 
톨렌티노는 1장 곳곳에서 어빙 고프먼의 《자아 연출의 사회학》(1959)을 소환한다. 고프먼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관객 앞에서 연기하는 연극배우와 같고, 이 세상은 연극 무대와 같다. 그렇다면 온라인에서는 어떠할까. 무대와 관객에 이어, 악몽 같은 상징 구조가 추가된다. 거울과 메아리 그리고 팬옵티콘이다. 인터넷 안에서는 모든 생각이 우리를 따라오고, 모든 뉴스와 문화와 대인관계와 상호소통은 나의 프로필이라는 기본 필터에 의해 걸러진다. 이를 두고 톨렌티노는 “인터넷이 영구적으로 지속시키려는 일상의 광기는 이 구조의 광기로서, 바로 개인의 정체성을 우주의 중심으로 놓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무언가를 하는 것과 그 행동을 표현하는 것, 무언가를 느끼는 것과 그 느낌을 전달하는 것의 차이”를 관찰한 고프먼의 관점을 끌어와서 행동의 재현은 그 행동 자체와는 어느 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오로지 “이러이러한 나”를 보여주기 급급한 인터넷은 이러한 허위 진술이나 그릇된 설명을 매우 적극적으로 조장한다는 것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도덕성에 관한 이야기를 올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지만, 실제로 도덕적으로 사는 것은 어렵다. 우리는 종종 어떤 의견을 표현하는 것―좋아요, 리트윗―과 실제로 정치적 행동을 취하는 것을 혼동한다. 증오와 반목을 부추기는 이 세계의 특성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반대와 분노를 우리 자아의 중심으로 간주한다. 이와 관련해 톨렌티노는 6장(〈일곱 가지 사기로 보는 이 세대의 이야기〉)에서 사람들의 관심과 주의를 재빠르게 잡아내 착취 가능한 자산으로 재해석하고 분노 같은 감정 호소에만 집중하도록 인터넷 세계를 재편한 마크 저커버그를 향해 비판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리고 이 서늘한 비판의 촉은 예외 없이 자기 자신도 겨냥한다. 
 
실은 내가 이 조건에서 계속해서 이득을 얻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의 경력을 쌓을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은 사람들의 정체성과 의견과 행동을 망가뜨린 인터넷 덕분이었다. _44쪽
 
끊임없는 자기인식과 내면 탐구, 용감하고도 쓰라린 통찰은 책의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이는 마찬가지로 인터넷 지옥을 헤매는 독자들의 경험과 포개어진다. 특히 온라인 여성 혐오가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 해시태그 디자인에서 여성이 얻는 것은 무엇이며 놓치는 것은 무엇인지 정확히 지적하는 대목에서는 옅은 희망과 절망이 동시에 찾아든다. 우리는 “싫증 난 연옥 안에 앉아서 인터넷이 다시 한번 변하여 우리를 놀라게 하고 다시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길 기다린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소셜 미디어 시대, 새로운 감옥에 갇혀버린 
페미니즘에 관하여
 
지아 톨렌티노는 인터넷 페미니즘 담론을 이끌던 〈제제벨〉과 〈헤어핀〉에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쌓아 올린 만큼, 책의 전반에 걸쳐 페미니즘에 관한 깊고 풍부하며 뾰족한 사유를 거침없이 쏟아낸다.
 
이상적인 여성은 아름답고, 행복하고, 자유롭고, 완벽한 능력까지 갖춘 것처럼 보인다. 정말 그럴까?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로 그런 사람인 것은 두 가지 다른 개념으로, 행복해 보이고 자유로워 보이려고 노력하는 건 실제로 그렇게 느끼는 능력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인터넷은 이 문제를 성문화하고 체계화해버렸고 이제 더는 도망갈 수도 없게 만들었다. _149쪽 
 
먼저 3장(〈언제나 최적화 중〉)에서는 소셜 미디어 시대에 시장 친화적으로 자리매김한 주류 페미니즘을 비판하면서, 마치 “인간 인스타그램”과 같은 지위를 구축한 현대 여성의 이상적인 삶의 미학을 탐구한다. 인스타그램에서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여성 인플루언서의 피드를 살펴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공통적인 특성이 감지된다. 이들은 사진 찍기에 예쁘게 담긴, 그러나 가격은 무시무시한 샐러드 한 접시를 먹는다. 그리고 마르면서도 탄력적인 몸을 역시 무시무시한 가격의 애슬레저에 집어넣은 채 요가나 필라테스 교실에 다닌다. 머리 모양이나 메이크업은 과해서는 결코 안 되고, “꾸안꾸” 그러니까 “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연스럽게 풍성하고 빛이 나면서 아름다워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 모습은 《트릭 미러》 안에서는 조금 더 빡빡하게 그려진다. “바(barre) 교실에서 땀을 흘린 후, 스위트그린(sweetgreen)에서 12달러짜리 샐러드를 사서 이메일을 읽으며 10분 안에 먹어치운다. 이때 당신은 애슬레저를 입고 있어야 하며, 이 모든 일은 점심시간 1시간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 톨렌티노는 냉소적으로 표현하지만, 사실 이것은 그에게 매우 친숙한 일과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인위적이면서도 끊임없이 상승하는 의무라는 조건 아래에서 어떻게든 그에 맞추어 생활을 효율적으로 조직하며 살다가 어느 순간 나 자신이 한심해질 때, 그러면서 이도 저도 못 하고 또다시 끌려가는 상황을 맞닥뜨릴 때가 아주 많다. 특히 우리 여자들은 삶의 이런 속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_119쪽

20세기 중반 미국은 “무궁무진하지만 돌아서면 새롭게 할 일이 또 생기는” 가사 노동에 여성들이 온 힘을 쏟게 만들었다. 21세기에 이것은 미모 노동으로 대체된다. 마찬가지로 무궁무진하지만 돌아서면 새롭게 할 일이 또 생기는 노동인 데다가, 수많은 시간과 불안과 돈을 소비해야 한다는 점까지 추가되었다. 통탄스럽게도 이 모든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기준에 매달리기 위함이다. 한편, 여성 개개인이 성취한 성공의 가치를 지나칠 정도로 크게 책정하는 페미니즘은 “이상적인 여성”이라는 독재자를 제거하기보다는 이 땅에 더 단단히 자리 잡게 하고 판단하기 복잡하게 해놓았다. 또한 “미모는 선”이라는 개념에 충실하게 종종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매달려오기도 했는데, 톨렌티노가 몸담았던 〈제제벨〉은 “광고나 잡지 표지에 포토샵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대대적으로 선언하며 온라인 페미니스트 담론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이는 현대 미적 기준의 인공성과 부정직함을 드러낸 긍정적인 시도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진짜” 아름다움에 대한 강력한 갈망을 보여주기도 했다. 요컨대 아이폰 카메라 앞에서 민낯이어도 물광이어야 하고, 피부에는 모공이 없어야 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워야만 한다는 쪽으로 우리의 관심을 끌고 갔다. 나아가 미모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주류 페미니즘의 도래는 ‘아름다움의 신화’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의 신화’라는 패러다임을 낳았다. 이 아래에서 여성은 사용 가능한 모든 기술과 자본과 정치를 끌어모아 이상적인 자아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이는 8장 〈어려운 여자라는 신화〉에서 다루는 ‘다재다능 슈퍼 맘’ 개념과 이어지기도 한다). 왜 여성에게는 모든 일이 이토록 어렵고 복잡한 것일까. 
 
여성이 부당한 비판을 받는다는 사실이 그녀들의 성공을 부정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그들이 성공했음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제 여성 유명인들은 그들의 까다롭고 복잡한 면모 때문에 존중받는다. 그들의 결함, 그들의 문제, 그들의 인간적인 면 때문에 사랑받는다. 우리 평범한 여성들도 결함이 있고 인간이지만 그래서 존중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_377쪽

8장에서 지아 톨렌티노는 “유명인 서사”를 채택한 주류 페미니즘이 어떻게 페미니즘의 경계를 흐릿하고 취약하게 만들었는지 이야기한다. 주류 페미니즘 아래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남성 권력에 의해 바뀌고 왜곡된 경험이 있는 여성들―그러니까 모든 여성들―은 가부장제에 의해 장사 지내졌다가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부활하여 복잡한 영웅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톨렌티노는 유명한 여성의 삶은 인기, 돈, 권력이라는 기준 안에서의 성과에 의해 결정되는 반면, 평범한 여성의 삶은 대부분 계층, 교육, 주택 시장, 노동 형태 같은 생활적인 일에 의해 지배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꼬집는다. 이를테면 킴 카다시안 같은 여성은 자기 노출로 이익을 얻는 반면, 다른 평범한 여성들―때로는 매우 같은 여성들―은 끝나지 않는 괴롭힘을 당한다. 톨렌티노는 묻는다. 우리가 여성 유명인들에게 부여한 자유가 다시금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을까? 어떤 여성이 대중에게 비난받고 있다는 무미건조한 사실 하나 때문에 그 여성을 무조건 상찬할 준비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진정 원하는 자유는 우리가 여성들을 사랑할 필요도 없고, 그들을 향한 우리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필요도 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이 모든 것에 현미경을 가져다 대고 세밀하게 분석하는 방식으로 여성의 가치와 해방이라는 그림을 그려야 할 필요가 없는 세상 말이다. _387쪽
 
그리고 어김없이 톨렌티노는 이 세계를 이렇듯 잘 아는 이유는, “자신 또한 같은 카테고리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가차 없는 자기 고백을 적는다. “페미니즘을 진지하게 여기는 여성”과 “페미니즘을 개인 브랜드로 파는 여성” 사이에 흐릿한 선이 있다면, 조금은 전자로 향하려는 것뿐이라고 털어놓는다. 어쩌면 우리 사회 많은 이들이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생식권이나 노동권을 둘러싼 고된 싸움에 대해 논의하는 것보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710달러짜리 디올 티셔츠를 입은 연예인 이야기를 나누고 찬양한다. 우리의 외모와 몸매와 성과는 최적화했지만, 임금이나 육아 제도나 정치적 대표성은 “최적화”하지 않았다. 우리는 시장의 자산으로서 우리 자신의 능력을 최선을 다해 최대화해왔다. 그게 전부다. 
 
 
관찰되고, 해석되고, 왜곡되는
정체성에 관하여
 
톨렌티노는 ‘들어가는 말’에서 이 책을 쓴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나는 언제나 혼란스럽기에,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기에, 진실과는 먼 방향으로 끌려가기에 이 책을 썼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글쓰기는 자기기만을 털어내는 방법이면서 그것을 내 눈 바로 앞에 드러내는 방법이기도 했다. _15쪽
 
다시 말해 톨렌티노는 몽테뉴를 잇는―인터넷 세대의―모럴리스트로, 삶과 세계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성찰한 문장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특히 2장(〈리얼리티 쇼와 나〉)과 5장(〈엑스터시〉)에서는 더 많은 자전적 자료가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지아 톨렌티노라는 사람을 다음과 같이 그려볼 수 있다. 필리핀계 이민자들의 자녀로, 휴스턴의 복음주의 메가 처치에서 자랐으며 초등학교 때는 체조 선수였고 고등학교 때는 치어리더로 활동했으며 리얼리티 TV쇼에 출연하기도 했다. 졸업생 대표 연설을 할 정도로 눈에 띄는 학생이었고, 남부 명문 버지니아주립대학을 전액 장학금으로 다녔으며 여학생 사교 클럽 회원이었다. 졸업 후에는 키르기스스탄으로 평화봉사단 활동을 떠났고, 대학원을 거쳐 뉴욕으로 와 〈뉴요커〉의 기자로 일하고 있다. 
이렇듯 《트릭 미러》의 가장 강력한 조각은 자아의 상품화와 관련이 깊다. 2장에서 톨렌티노는 아직 유튜브가 존재하기 전인 2004년 12월 열여섯 살 때, 〈걸스 대 보이스〉라는 제목의 리얼리티 쇼에 출연한 경험을 들려준다. 푸에르토리코의 아름다운 섬에서 십 대 남녀가 대결을 펼치는 포맷의 프로그램으로, 우정과 사랑 이야기는 당연히 따라왔다. 카메라는 열렬히 “보여주고(보여지고)” 싶은 십 대들의 굶주린 욕망을 건드리기에 충분했고 그들을 무한한 자의식의 바다로 떠밀었다. 지금 우리는 채널을 돌리면 종류도 다양한 리얼리티 쇼와 마주한다. 소셜 미디어는 자기 삶을 전시하고, 또 소비하는 삶을 열심히도 부추긴다. 감시되는 쇼에서, 모든 것이 연기로 취급되는 화면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정직할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은 그 쇼에서 내가 도덕적으로 보이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진짜 도덕적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종교적인 감시 속에서 살다 진짜 감시되는 세계로 가면서 나는 이 두 가지 개념을 구분할 수 있었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_89쪽
 
톨렌티노는 집요하게 카메라가 따라붙던 푸에르토리코에서 딱 한순간, 황홀한 자유를 만끽한다. 와편모충이 서식해서 반짝반짝 빛나는 모스키토만을 헤엄치던 때였다. 그는 이 순간을 이렇게 묘사한다. “나는 반짝이는 물기를 머리카락에서 털어냈다. 내 몸을 감싼 이 모든 행운 때문에 감격해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더없이 순수하고 형이상학적인 우연 안에 가만히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우리 주변에 카메라는 한 대도 없었고, 만약 있었다고 해도 이 장면을 잡아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중얼거렸다. 잊지 말자. 이 순간을 절대 잊지 말자.”
많은 매체가 이 에세이집의 백미로 꼽은 5장에서도 황홀한 경험은 이어진다. 톨렌티노는 현대의 영적 몽상에 대한 철학적 분석이 밀도 높게 이루어진 5장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요람(메가 처치)과 그와 함께 자란 휴스턴 힙합 그리고 종교를 내려놓던 시기 그에게 또 다른 구원으로 다가온 마약성 약물을 하나로 묶는다. 이 에세이는 일렁이는 세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 것들에 관한 내적 경험을 담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집단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도 한다. 
 
비에케스섬에서 나는 부지불식간에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21세기에는 경험의 맥락과 경험의 기록과 그 경험 자체를 구분하는 일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_87쪽
 
2장으로 돌아가서, 톨렌티노는 리얼리티 쇼를 찍었던 경험을 두고 “인터넷과 동고동락하게 된 생활을 위한 유용한 준비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삶을 찍고 기록하며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새로운, 거리낌 없는 표준이 된 시대다. 우리의 사고가 전례 없는 착취와 물질화와 감시에 종속된 이 시대, 마음과 영혼을 왜곡하지 않은 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리가 보기로 한 것과
보지 않기로 한 것들
 
빛나는 데뷔작에서 가장 주목받는 특징은 양면성, 요컨대 자기기만이다. 톨렌티노는 “지금 내가 쓰는 이 글은 조금 더 정직해지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느끼는 대로 행동하고 싶다”고 적는다. 그러나 곧이어 덧붙인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것보다 서사의 일관성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하기도 한다.” 그가 말하는 진실은 울퉁불퉁하고 난해하다. 모두가 주장하는 마땅한, 도덕적으로 쉬운 결론으로 이끌지 않는다. 명확하고 매끈하지도 않으며, 이는 톨렌티노의 의도적인 저항이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배우지 않았는가. 결론을 유보해도 되고, 그 어떤 것도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어떤 일이건 다시 검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대신 그는 익숙한 것에서 어두운 밑바닥을 비추고, 낯선 것에서 친숙함을 찾아내 우리에게 안겨준다. ‘자아’를 중심으로 놓는 문화 안에서 나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지 이야기한다. 
한편 록산 게이의 말을 빌려서 이 책을 다른 관점으로 살피자면, “문화 비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마스터 클래스”라고 할 수 있다. 대단한 독서가인 지아 톨렌티노는 어빙 고프먼과 도너 해러웨이부터 앤 카슨과 노리치의 줄리안에 이르는 사상가들을 동원해서 이 책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추어나간다. 철저한 자료 조사가 돋보이는 탁월한 문화 비평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대 미국이 안고 있는 갈등과 모순을 날카롭게 꿰뚫는다. 4장 〈순수한 여자 주인공들〉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인용과 여러 문학작품을 중심으로, 용감하다가 백지처럼 되었다가 고난을 겪는 문학 속 여주인공의 여정을 좇는다. 6장에서는 밀레니얼 세대의 정신이 되어버린 사기 행각들을 고찰하는데 금융 위기, 학자금 대출, 소셜 미디어 사기, 시장 친화적 페미니즘, 진정성을 파는 실리콘 밸리, 아마존, 트럼프 당선 등이 그것이다. 삶의 현장 구석구석에서 쥐어짤 수 있는 것은 모두 쥐어짜 이익을 취하자는 시대적 기조 아래에서 밀레니얼은 이 나쁜 교훈을 몸에 익혀 성인이 되었다. “살아남는 것 자체가 로또처럼 보이는” 오늘날 사회에서 우리가 적용할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은 그저 나 자신만, 오직 나만 생각하는 것이라고 톨렌티노는 말한다.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란 무너지는 것이고, 무너지고 싶지 않으면 하루하루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도덕적으로 타협해야 한다—즉 난파되거나, 난파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7장 〈우리는 올드 버지니아에서 왔다〉에서는 모교 버지니아주립대학에서 겪은 성·인종·권력에 관한 문제를 파헤치는데, 독자들은 이 안에 등장하는 여러 놀라운 이야기 속에서 우리 사회가 비밀을 감추기 위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했는지 목도하게 된다. 마지막 9장 〈결혼, 나는 당신이 두려워요〉에서는 “이 모든 과소비, 거추장스러움, 과도한 열광”에 대해 논하며 자신이 가진 결혼에 대한 과도할 정도의 반발심을 꺼내놓는다. 그리고 이 장은 “나는 여전히 나를 믿을 수 없다고 느낀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제목 “트릭 미러(왜곡이 있는 거울)”는 그가 2015년 〈제제벨〉에 적었던, 여성들이 페미니스트 웹사이트에서 무엇을 얻게 되는가에 대한 에세이 속 한 문장이다. “트릭 미러는 내 몸매에 단점이 없다는 환상을 제공하면서도 끊임없이 그것을 찾아내야만 하는 자기 형벌이 된다.” 숨 막히는 지옥에서 시끄러운 소음과 살아가는 우리는 이 번득이고 까다로운 문장들을 읽으며 거울 앞에 오래 서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보기로 한 것과 보지 않기로 한 것들은 무엇일까. 왜곡되는 것은 무엇이고, 왜곡하는 이는 누구일까. 최악의 시대에 탄생한 고전이 우리를 심오한 진실로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