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생각한다
황주명
2021-03-05
284
135*210 mm
979-11-90955-10-2 (03800)
15,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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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법조인이자 30년대생 황주명이 말하는

책임, 공감, 존중이라는 키워드

 

저자 황주명은 스스로를 이렇게 평한다. “나는 가난과 고생을 모르고 자랐다. 좌절의 경험도 내게는 없다.” 80세가 넘은 사람의 이토록 객관적인 자기 평가가 놀랍다. 39년생인 황주명 회장은 어릴 적 피란길에 남하하여 서울 친척집을 옮겨 다니며 살기도 했고, 오래 법조계에 몸담으며 온갖 사건들을 만나고 해결하고 판결했다. 직장에서 한발 물러나서는 마음 헛헛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몇 해 전에는 친형도 하늘로 떠나보냈다.

혹자는 부잣집에 태어나 공부도 잘했고 명예와 부를 누렸으니 힘들 일이 뭐가 있었겠냐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자이고 똑똑하다고 해서 인생을 평탄하다 느끼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사람은 누구나 후회를 하고 좌절을 경험한다. 인생 서사를 오르내리는 동안 고통을 감내하면서 세계를 넓히고 성숙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의 “어려움 없이 살았다”는 그 말이 더욱 놀라운데, 이는 총 4부로 구성된 그의 글에서 납득이 된다.

《사람을 생각한다》를 관통하고 있는 정서는 ‘그래도 나, 나답게 살았다’는 자신감과 떳떳함이다. 저자는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지 않고, 마찬가지로 타인도 깎아내리지 않는다. 그의 글에서 비겁함은 읽어낼 수 없다.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드러나지 않는 글을 읽는 기분은 어딘가 묘한데, 그건 우리가 일상적으로 스스로를 속이고 타협하며 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저자의 글엔 ‘그때의 난 틀렸었다. 그러니 모두들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뉘앙스가 발견되지 않는다. 혹여 과거의 선택이 ‘어떤 기준’에서 보면 경직되고 난처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본인의 인생을 놓고 보면 큰 흐름에서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곧 나였다고 덤덤히 고백하는 저자의 문장을 통해, 독자는 ‘이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좌절한 적이 없는 거구나’라는 걸 알게 된다.

 

호기롭고 자유분방한

이 시대 어른의 이야기

 

황주명 회장은 언제나 숨지 않고 발언하는 사람으로서 50년 넘게 법조계에 몸담았다. 1971년 여름, 1차 사법파동에서도 그는 첫 목소리로 앞으로 나섰다. 정권과 사법부가 대립하던 때, 사법부가 검찰의 구속영장을 보복 조치로 판단하고 서울형사지방법원의 판사들이 단체로 사표를 제출한 사건이었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면서 야당이 들고 일어나서 법무장관을 추궁하기도 했다. 언론도 처음에는 향응에 초점을 맞추다가 점점 법원에 대한 탄압 쪽으로 논조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 무렵 부장판사 방에 판사들이 모여 앞으로의 대응 방향에 대한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때 지금은 없어진 동아방송의 기자가 들어왔다.

“판사들이 화를 내면서 사표를 내고 그러는데 마이크만 대면 말하는 분이 한 명도 없어요.”

화가 나서, 또 다들 내니까 사표를 내긴 했는데 앞장서려는 사람은 없었다. 괜히 나섰다가 찍힐까 봐 겁이 나기도 했을 것이다. 그때 세상 물정 모르고 철없던 서른한 살의 내가 욱해서 말했다.

“아, 그래요? 제가 하죠. 판사도 잘못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인권이 유린당해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잘못했다고 길거리 조리돌림처럼 망신을 줘서야 되겠어요.”(15쪽)

 

저자 황주명은 소년등과하여 많지 않은 나이에 판사 직함을 달고 세상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이웃집 소가 내 밭 배추를 뜯어 먹은 피해 보상 사건부터 국제 기업 특허 소송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머리 휘날리며 종횡무진하였다. 스스로는 ‘철이 없고 별종이었다’고 말하지만 클라이언트를 혼내 가며 열과 성을 다해 재판 준비를 하고, 거리낄 것 없이 할 말을 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대한민국 1호 사내 변호사로 대우실업 상무이사 겸 대우그룹 법제실장을 지내던 때의 몇몇 이야기들은 마치 시트콤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주 6일을 근무하던 시절, 회사 눈치를 보면서 일요일까지 출근해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일요일에는 나오지 말고 쉬’라고 말하기 무섭게 김우중 회장에게 호출당한다. 어떻게 된 거냐고 호통치는 회장에게 이에 질세라 말한다. “쉬는 날도 있어야죠.”

무겁지 않게 해소되는 긴장이 우리를 감싸고 있던 두터운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낸다. 시종일관 호기롭고 당당한 언행을 따라 읽으며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것에 자신이 얼마나 무뎠던가에 한 번 놀라고, 옳은 일을 옳지 못한 일이라 혼동하였음을 환기하며 두 번 놀란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것, 그리고 본인이 선택한 삶을 지지하고 진심으로 임하는 것은 타인과 나를 지키는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 젊은이들, 자기와 맞지 않는 사람들 욕하며 지내기보다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자기를 돌아본다는 것이 꼭 과거를 회상하고, 반성하고, 정리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래에 나에게 닥칠 일을 생각하는 것도 자기를 돌아보는 일이다.

젊은 사람들에 비해 확률은 낮지만 황당하거나 기막힌 일들이 내게 닥쳐올 수 있다. 다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달리 대책을 세울 수 없다. 그러나 나에게 반드시 다가올 일, 100퍼센트의 확률로 일어날 일이 있다. 죽음이다. (206쪽)

 

나이 듦과 죽음 앞에서도 초연하다. 마치 치열하게 삶을 살았으니 죽음, 네 말도 들어보자는 뉘앙스다. 겉으로 드러나는 순수한 열정과 한 사람이 자신의 지평을 넓혀가며 해온 일들을 따라 읽다 보면 닮고 싶은, 배우고 싶은 한 어른의 세계가 보인다. 세상을 향한 눈을 번쩍 뜨고, 본인의 일에서는 매서우리만치 꼼꼼했던 원칙주의자 황주명 회장을 만나면서, 독자는 ‘무엇이 중요했던가’라는 질문이 그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큰 뜻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치사하게 살기 싫었다.”

큰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큰 일을 해낸다

 

명예와 권력, 부를 손에 거머쥔 사람들은 전지전능한 위치에서 남의 인생을 함부로 휘두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때가 적지 않다. 그러나 세상에 공중부양이 가능한 사람은 없지 않은가. 남들보다 위에 있다고 느끼는 건 어쩌면 누군가의 등을 밟고 서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땅콩회항’ 갑질 논란으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과 수행운전기사에게 폭언을 퍼붓던 조선일보 어린 손녀 이야기에 분개했지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못하는 건물관리인, 화장실에서 휴식을 취하는 청소노동자들의 존재는 보고도 못 본 척한 적은 없었던가? 저마다 성 안의 사람인 동시에 성 밖의 사람이다. 저자 황주명은 본인의 성 안에서 성주로서 안주하지 않고 자신을 둘러싼 사람과 세계를 평생 궁금해하고, 경청하고, 이해하려 노력해왔다. 당연한 소리처럼 들리는 것을 당연하게 실천해왔는데, 모르면 공부를 했고 타협하지 않고 ‘법대로’ 한 것이다.

 

그날 135번 버스를 타고 자하문 정류장에서 내렸다. 달빛 비치는 골목을 지나 집까지 15분을 걸었다. 달이 나에게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인생의 보람을 느꼈다. 판사의 프라이드와 희열을 느꼈다.

‘내가 오늘 친절하게 재판 잘했고 선고도 잘했다. 나 때문에 산 사람도 있다. 열심히 했다.’

이 맛을 모르면 판사 하지 말아야 한다. (281쪽)

 

글을 마치며 “오늘 친절하게 재판 잘했고, 선고도 잘했다. 나 때문에 산 사람도 있다. 열심히 했다”라고 쓴 문장에서 삶에 대한 깊은 만족감이 느껴진다. 타인이 갈등과 경쟁의 대상이 되고, 착취하고 이용하는 사회에서 무릎 꿇고 좌절하지 않기 위한 열쇠는 역시 ‘사람’이다. 꾀부리지 않으면서 곧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이 비범해진 세상에서, 한결같이 사람을 중심에 둔 그의 이야기들이 그렇게 살아갈 힘을 채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