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디언의 굴레
조귀동
2021-12-10
288
135*210 mm
979-11-90955-45-4 (03330)
17,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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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각양각색의 모순이 두텁고도 끈끈히 덧얽힌 호남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정교히 뜯어보는 책이 출간되었다. 《세습 중산층 사회》를 통해 불평등 사회에 날카롭고 묵직한 화두를 던졌던 저자가 이번에는 보편의 문제와 특수한 사정이 옭아매는 한국 내 유일한 지역 “호남”에 주목한다. 
책은 광주를 중심으로 호남이 안고 있는 문제를 다양한 각도와 층위에서 살펴본다. 지역차별, 저발전, 불평등, 산업 및 경제 구조, 부패와 무능, 취약한 지역정치 구조와 거버넌스 등 오늘날 호남이 안고 있는 중층적 모순을 들여다본다. 지역과 계급이라는 이중차별,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호남의 이야기를 그려낸 《전라디언의 굴레》다. 
 
 
오래된 이야기에서 시작해,
그곳에 똬리 튼 수많은 ‘민낯’을 드러내는 시도
 
매년 5월과 선거철에만 소환되는 지역이 있다. 호남이다. 5·18민주화운동의 뜨거운 정신으로 기억되고, 민주당의 정치적 기반으로 자리하는 호남. 어딘지 모르게 고맙고, 또 어딘지 모르게 미안한 지역. 우리가 호남을 기억하는 긍정적인 방식은 여기까지다. 이어지는 키워드들. 낙후, 소외, 침체 그리고 차별. 
《세습 중산층 사회》를 통해 불평등 사회에 날카롭고 묵직한 화두를 던졌던 저자가 ‘지역 문제’로 돌아왔다. 전작에서 90년대생이 겪는 불평등에 천착했다면, 이번에는 보편의 문제와 특수한 사정이 옭아매는 한국 내 유일한 지역 “호남”에 주목한다. 앞서 서술한 호남의 비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오래된 이야기다. 그런데 책은 2021년, 왜 ‘낡은’ 호남문제를 들추는가. 저자는 두 가지 대답을 들려준다. 먼저 한국 사회가 쌓아올린 모순이 이 지역, 호남에 집약돼 있기 때문이다. 서울이 ‘머리’가 되고 지방이 ‘손발’이 되는 경제적 역할 분리, 개별 지역의 불균등 발전, 이촌향도라고 불리는 대규모 인구이동과 이주민의 도시 하층민으로의 편입, 지역 기반 정당 간의 경쟁 구도, 개별 지역 내부에서 패권적 지위를 갖는 정당의 출현 등을 양적·질적으로 가장 강도 높게 겪었던 곳이 바로 호남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호남이라는 지역이 가진 특수성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호남은 불균등 발전의 희생양이었다. 산업화라는 로켓에 탑승하는 걸 거부당하고, 차별과 모멸을 받고, 거대한 국가 폭력에서 집단 학살의 대상이 되는 과정은 기실 한 사회의 ‘어둠’을 한 지역에 몰아넣는 것이나 다름없었다(16~17쪽). 
여기,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각양각색의 모순이 두텁고도 끈끈히 덧얽힌 호남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정교히 뜯어보는 책이 출간되었다. 책은 광주를 중심으로 호남이 안고 있는 문제를 다양한 각도와 층위에서 살펴본다. 지역차별, 저발전, 불평등, 산업 및 경제 구조, 부패와 무능, 취약한 지역정치 구조와 거버넌스 등 오늘날 호남이 안고 있는 중층적 모순을 들여다본다. 지역과 계급이라는 이중차별,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호남의 이야기를 그려낸 《전라디언의 굴레》다. 
 
 
“반도의 흑인 또는 아일랜드인”
우리가 호남을 타자화하는 방식
 
전라도 출신을 향한 노골적인 차별 행위는, 여전히 한국 사회 도처에 남아 꿈틀거린다. 인터넷에서건, 생활 세계에서건 자리를 가리지 않고 살그머니 고개를 들고는 한다. 지난 2018년 경기도 부천의 한 편의점에서 내건 아르바이트생 채용공고가 상당한 화제를 모은 일이 있었다. “주민등록번호 중 8번째, 9번째 숫자가 48~66 사이에 해당하시는 분은 채용 어렵습니다(가족 구성원도 해당할 경우 채용 어렵습니다)”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주민등록번호 8, 9번째 숫자는 출신 지역으로 부여되는데, 전북·전남·광주에 해당한다. 요컨대 ‘본인이나 부모가 전라도 출신이면 채용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저자는 지역감정이나 지역차별이 노동시장에까지 영향을 줄 정도로 심각하게 나타나는 사례는 ‘호남차별’밖에 없다고 말한다. ‘경상도 사람들은 이렇고, 충청도 사람들은 저렇다’는 다분히 주관 섞인 시각도 존재하지만, 그러한 편견이나 악감정은 경제 행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심각하게는 호남차별의 기저에 일종의 “준인종적 정체성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상의 인종 차별이라는 것이다. 극우 성향을 가진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의 단골 콘텐츠 중 하나는 “호남 출신은 열등한 품성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지역 출신과 비교하면 더욱 그러하다”는 내용이다. 심지어 외모마저 구분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19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에서 깡패, 사기꾼, 양아치를 맡은 배역이 서남 방언을 즐겨 사용해서 문제가 됐던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간 셈이다. ‘전라도’에 특정한 속성을 부여하고 통상적인 ‘한국인’의 범주에서 벗어난 이질적인 존재인 것처럼 규정하며, 끊임없이 타자화하는 방식은 그들에게 일종의 인종성을 부여하는 것에 가깝다(38쪽).
이렇듯 호남차별의 본질이 인종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호남인이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다른 지역’과 다르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밝힌다. 그보다는 근대화와 그에 따른 대규모 인구이동 속에서 다른 인간 집단, 정확히는 좀 더 열등한 이등시민으로 간주되고 스스로도 구별된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전라도인은 반도의 ‘흑인’과 ‘아일랜드인’ 사이 어느 중간에 있는 존재”라고 꼬집는다. 흑인처럼 피부와 언어가 다르고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이들은 아니면서도, 아일랜드인처럼 나중에 온 이민자들 덕에 ‘백인성’의 범주에 포함되기에는 여전히 상당한 차별과 모멸을 받고 있는 까닭이다. 제목에 속한 단어이자, 인터넷에서 멸칭으로 쓰이는 ‘전라디언’이라는 단어는 사실상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드러내고 있다. 
 
 
‘전라디언’이 탄생한 두 가지 경로:
엘리트 사회 내 배제와 도시 하층 노동자 대군의 등장
 
전라디언이라는 이등시민은 한국이 경험한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탄생했다. 해방 이후 기업과 자본이 성장하면서, 이른바 ‘엘리트’ 자리를 두고 뜨거운 경쟁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자본에 대한 배분권을 쥔 정치권력이었고, 기준은 ‘지연과 학연’이었다. 학교 동창, 특히 고교 동창이 네트워크(연줄망)의 핵심에 자리했다. 지역 소재 명문중·명문고를 거쳐 촘촘히 얽힌 각 지역 출신의 재경 엘리트 네트워크를 구성한 것이다. 1961년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세력의 핵심은 TK(대구·경북)였다. 정확히는 TK 출신의 육사 졸업 장교와 경북고(와 그 전신인 대구고보) 네트워크였다. 이들은 국가를 경영하면서, 자신들의 기반인 영남을 중심으로 산업을 발전시켰다. PK(부산·경남)는 TK의 하위 파트너 역할을 맡았다. 그들과 끈끈한 네트워크를 맺은 영남 출신 기업인들에게 자본을 우선적으로 공급하고, 영남을 중심으로 각종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했다. 1950년대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한 이러한 경향은 정부 주도 산업화 과정에서 강화되고, 결국 거대한 물적 토대의 차이를 만들어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한국의 고성장이 만들어낸 각종 기회에 철저하게 소외된 것은 호남 명문고 출신들이었다. 이들은 1950년대에는 한국민주당(한민당)과 민주당을 중심으로 뭉쳐 이승만 정권 당시 야당 역할을 했다. 특히 호남은 1971년 대선에서 영남이 성장의 과실을 독식하는 상황에 신민당 지지로 결집하면서 명실상부한 반박정희 지역이 되었다. 지역 명문고 출신들이 ‘중앙’에 진입해 경쟁하는 구도에서 태생적 ‘야당’인 전라도 출신들은 거의 완전히 배제됐다. 그들은 다양한 조직에서 임용, 승진, 경력 형성 등의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했다. 저자는 이들의 사례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1990년대까지 어느 정도 교육받고 번듯한 일자리를 잡았던, 또는 엘리트 사회에서 경쟁해야 했던 전라도 사람들과 그들을 부모로 둔 이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해야 했던 일로 보는 게 더 타당하리라는 것이다. 이들이 겪었던 차별과 배제의 경험은 오히려 ‘호남 사람’이라는 지울 수 없는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갖도록 이끌었을 것이라 서술한다. 
그러나 엘리트 사회, 좀 더 넓게 보아 산업·금융 등 기업, 관계, 법조계 등에서 전라도 출신에 대한 배제가 있었다고 해서 지역 전체에 대한 차별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전라도 출신이 바람직하지 않고 부도덕하기까지 한 속성을 가졌다는 낙인을 찍고, 실질적인 대규모 차별이 시작된 데에는 1960년대 이후 진행된 호남 출신의 대규모 이주가 있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학력이 낮고, 기술도 없으며, 별다른 네트워크도 가지지 않았던 이들은 일거리를 찾아 이주한 도시에서 자연스레 하층 노동자 또는 빈민 집단을 형성했다. 대표적인 곳이 용산구 한남동 한남현대시장 일대다. 관악구 봉천동과 신림동도 있으며, 현재 성남 원도심을 만든 광주대단지사건의 당사자도 호남 출신의 비중이 높았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자영업 등을 통해 성공하기도 했지만, 다수는 실패했다. 전국으로 흩어져 하층 노동자 또는 도시 빈민의 역할을 맡게 되면서, 전라도 사람들은 토착민 또는 그 지역 농촌에서 도시로 오게 된 이들과 경쟁 관계에 놓였다. ‘전라도 출신’이라는 낙인찍기의 대상이 되었다. 
한편 전라도를 둘러싼 역사가 산업화와 이주민 그리고 엘리트 사회에서의 배제만 있었다면, ‘무난한’ 수준의 지역 저발전 내지는 지역차별에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1980년 5·18은 광주를 중심으로 한 전라도 거주민들 그리고 전라도에서 타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들에게 격렬하고 각별한 경험과 그로 인한 정체성의 각인을 이끌어냈다. 가뜩이나 경제발전에 소외되고, 갖가지 차별을 겪어야 했던 호남 사람들에게 5·18은 자신들이 ‘비국민’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해준 계기였다. 이 경험은 1987년 제6공화국 출범 이후 김대중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정치적 정체성의 핵심이 된다. 나아가 민주당이 일종의 지역패권정당으로서, 지자체라는 행정 권력을 점유하며 호남 시민사회에 깊숙이 침투하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진짜 호남인은 이중차별을 받는다”
지역과 계급이라는 이중의 차별에 관하여
 
저자는 2000년대 들어 흔들리기 시작한 ‘이등시민’ 내부의 급격한 변화에 주목한다. 그 안에서도 경제적 이해관계나 출신 계층 등이 상이해진 까닭이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은 호남 출신 엘리트도 정치권력의 수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들은 그동안 경북고를 중심으로 영남 엘리트가 만들어놓은 ‘게임의 규칙’에서 벗어날 이유가 없었다. 이른바 재경 또는 출향 엘리트들은 소수의 지역 소재 명문고를 졸업했으며, 출신 지역을 제외하면 상당히 비슷한 배경을 가졌기 때문이다. 몇 번의 정권 교체를 거치는 가운데, 명문고를 기반으로 한 학연과 지연의 혼합체야말로 가장 영향력 있고 믿을 만한 네트워크였다고 책은 말한다.
2021년 5월 문재인 정부의 장·차관과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정무직의 출신 지역을 분석한 결과 전체 401명 중 서울이 104명(25.9%)으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호남으로 96명(23.9%)이었다. 이들 다수는 1950년대 후반~1960년대생으로 대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서울 명문대로 진학한 이들이다. 지금은 강남 3구 일대를 비롯한 요지의 아파트에 거주하며, 상위 중간 계급의 일원에 걸맞게 행동한다. 필요에 따라 정치권력과 동맹 관계를 맺을 뿐, 이념이나 정책 지향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이들이 엘리트 사회에서 지분을 늘린다 해도 정작 호남의 일반적인 사람들이 받는 혜택은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남 출신 이주민들의 분화도 눈여겨보아야 할 지점이다. ‘로켓’에 올라타는 게 힘들었을 뿐, 말석에라도 앉은 이들이 점차 등장하면서 이들 사이의 동질성을 상실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반면 이주민 중에서 여전히 중하층에 머무른 사람들 그리고 호남에 남은 이 중 대다수는 지역차별에다가 열등한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차별까지 이중으로 받고 있다. 이들은 경제적 지위 상승의 기회를 좀처럼 찾지 못한다. 어엿한 서울 거주 중상위층으로 살아가는 이른바 ‘호남 인재’들이나, 호남에서 기득권을 점유하면서 중앙의 정치권력과 연계를 맺고 있는 ‘지역 엘리트’들과 다른 삶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진짜 호남인’은 지역과 계급이라는 이중의 차별을 받는 존재라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2010년 이후 호남 지역이 민주당의 적잖은 골칫거리가 되고, 2016년 안철수가 이끄는 국민의당이 이곳을 석권하는 등 투표장에서의 ‘반란’이 때때로 터져나오는 이유다. 오늘날 ‘호남문제’의 핵심은 호남 내부의 분화와 이해관계의 대립일 것이다(64쪽).
 
 
‘전라디언의 굴레’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익숙함과의 결별이 필요하다
 
책은 호남의 정치와 경제 구조를 다룬다. 특히 해방 당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저발전의 구조와 그로 인한 지역 내 사회 구성체와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의 문제를 함께 살핀다. 일종의 ‘지방 지향의 정치경제학’을 목표로 한다. 호남문제에는 오랫동안 이어진 저발전과 그로 인한 불평등, 지역차별로 형성된 강렬한 정체성, 중앙정치와 긴밀하게 연결된 지역 거버넌스 등이 복합적으로 꼬여 있다. 책은 뒤엉켜 배꼬인 실타래를 풀기 위한, 찬찬하고도 집요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책은 호남문제의 본질을 말하는 1장을 시작으로, 2장에서는 경제 구조의 특질을 분석한다.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주변부적인 역할에 머물며 경제 구조가 비틀린, 요컨대 “산업화라는 열차의 꼬리칸에 몸을 실었다 보니, 지금도 그 칸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제법 단단하게 만들어진 양상을 살펴본다. 특히 산업화가 시작된 1950년대부터 이미 호남 출신 자본가에 대한 억압이 상당했음을 밝힌다. 호남의 저발전은 단순히 박정희 정부 시절 도로·철도·항만이 건설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농업자본의 상업자본화 또는 상업자본의 산업자본으로의 발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산업 기반(‘괜찮은 일자리’의 주된 창출처인 제조업 대공장)이 없어 자생적 발전을 위한 역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고, 중산층이 얇고 불평등이 심한 사회 구조를 만들어냈음에 주목한다.
3장에서는 민주당의 지역패권정당 지위가 어떻게 유지 및 강화되는지 그 메커니즘을 파헤친다. 2021년에도 지역 기반 정당이 강고하게 유지되는 것은 정당과 지역민의 강한 일체감 때문이 아니다. 정당이 지역사회 전반에 촘촘히 뿌리를 내리고 지역민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기 때문이며, 역사적으로는 김대중이라는 걸출한 정치인의 출현과 재야세력이 지역 민주당과 깊은 관련을 맺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남인의 정당이었던 민주당이 ‘수도권 상위 중산층의 정당’으로 변모하면서 지역정치와 중앙정치 사이의 관계가 큰 폭으로 변화하였고 일종의 긴장 관계에 접어든 모습을 살펴본다. 4장에서는 앞서 설명한 경제와 정치 구조가 족쇄처럼 기능하는 양상을 분석한다. 2021년 6월 학동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무너져 17명이 죽거나 중상을 입은 참사는 지역에 깊이 또아리를 튼 부패 구조를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구조적인 부패는 ‘구조적인 무능함’을 낳는다. 아시아문화전당 사업의 실질적인 실패,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불확실한 미래 등을 통해 지역의 거버넌스가 각종 개발 사업의 발목을 잡는 모습을 그린다. 
5장은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유지됐던 지역 내부의 정치-경제 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했음을 말하고, 그 원인을 분석한다. 이른바 ‘지방지배체제’의 문제다. 재경 엘리트-지역 기반 정당-중앙정부의 재원을 기반으로 한 지역개발사업이라는 세 축 모두 균열 양상을 보임을 호남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이는 민주당이 가진 패권정당 지위에 대한 염증과 반발로 나타났는데, 2021년 대선 국면에서 20대 남성의 국민의힘 지지율이 민주당을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이 대표적이다. 역사적으로 민주당이 보수정당을 상대로 갖고 있던 이데올로기적 우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이며, 또 지역민들의 불만과 ‘구체제’에 대한 염증이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6장에서는 더는 유지될 수 없는 지방지배체제 속에서, 지역과 계급의 이중차별을 받는 호남인들에게 어떤 대안이 가능한지 살핀다. 정치 영역에서는 외국과 같이 지역당을 허용해 풀뿌리 정당이 지방의회 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을 배출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제안한다. 또 지방의회 비례대표를 대폭 늘려 소수 정당의 진출을 보장해야 함을 말한다. 자생적 발전역량을 갖추고, 서울과 수도권이 머리 역할을 맡고 지방이 손발 노릇을 했던 분업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저자는 호남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껏 역사의 흐름에서 쌓여왔던 것들, 요컨대 꽤 익숙하고 다소 편안한 것들과의 결별이라고 말한다. 호남이 겪는 문제는 해방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고 낙후된, ‘반도의 흑인’으로 차별받은 전라도 지역에서 형성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구조가 더는 21세기와 맞지 않아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지체 현상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한국의 지방이 겪는 일반적인 문제이지만, 동시에 그 문제가 발생하고 작동하는 양상에는 호남만의 특수한 사정이 녹아난다. 저발전과 호남차별이 민주당으로의 쏠림 현상과 정치 우위의 시민사회 구조를 낳고, 그것이 발전적으로 해체되거나 극복되지 않은 채 부패와 무능과 소지역주의 등 여러 문제를 낳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261쪽). 민주당이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와 사회 전반에 침투해 있고, 한 번도 하나의 경제 권역을 형성해본 적이 없는 호남이 늘 파편화된 상태로 중앙의 정치권력에 휘둘리는 건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필연적이기도 한 결과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책은 주류 담론에서 벗어나, 좀 더 ‘내부의 시각’에서 날것 그대로의 지역과 마주하고 “무엇이 지역을 옭아매고 있는지” 명징한 언어로 건져내는 사명을 기꺼이 감당한다. 이러한 작업의 기저에는 ‘나고 자란 고장’의 현실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나아가 대안을 강구하기 위한 저자의 갈망이 자리해 있다. 그래서일까. 그간 중앙 엘리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였던 ‘호남문제’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스스로의 필요와 언어로 구축된 담론을 만드는 일”이라는 저자의 메시지가 무척이나 반갑게 들려온다. 예전 같지 않은 호남의 마음을 돌리려고 노력하지만 자꾸만 헛발질 중인 민주당도, 전국 단위에서의 선거 승리를 위해 이 지역에 강한 ‘민정당’ 반대 정서를 극복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지만 호남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담론을 갖지 못한 국민의힘도 아닌 ‘진짜 지역정치’를 외치는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과 지역을 둘러싼 목소리를 살뜰히 모아 치밀하게 분석해낸 통렬한 르포르타주는 이제라도 호남을 제대로 바라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유효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전라디언의 굴레’를 끊어내는 일은 가능할 것인가? 20대 대선을 앞두고 한국 사회에 날아든 매섭고도 엄중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