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양반사회
김은희
2022-03-04
264
140*210 mm
979-11-90955-52-2 (03300)
17,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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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유교’라는 해묵은 듯 해묵지 않은 키워드를 통해 오늘날 한국 사회를 낱낱이 해부하는 책이 출간되었다. 저자 김은희는 정치와 도덕이 분리되지 않았던 조선시대 양반사회를 떠받친 성리학적 인식체계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재현되고, 재생산되는 작금의 현실에 주목하고 이를 ‘신양반사회’라 명명한다. 
책은 문화적 개념으로서의 ‘양반’을 돌아보며, ‘아무개 자손’이라는 정체성을 필두로 우리에게 ‘조상’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제도로서의 양반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사회의 지도층, 요컨대 민주화 투쟁을 주도하고 지금은 현실 정치의 견인 세력인 586세대를 관통하는 지배 정서로 강건하게 살아남았다.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독특한 멘탈리티의 기원을 찾아, 문화인류학적 고찰을 담아낸 《신양반사회》다.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멘탈리티의 기원을 찾아
 
제20대 대선이 성큼 다가왔다. 문재인 정권의 국정 운영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이제 지난 5년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촛불 정부’, ‘검찰 개혁’, ‘코로나19’, ‘일자리’, ‘부동산’ 등 그간의 정책과 성과를 살펴볼 키워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인류학을 전공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전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오랜 시간 한국 사회와 문화를 연구해온 문화인류학자 김은희는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분석을 위해, ‘양반’이라는 키워드를 우리에게 제시한다.
여기, ‘유교’라는 해묵은 듯 해묵지 않은 키워드를 통해 오늘날 한국 사회를 낱낱이 해부하는 책이 출간되었다. 저자 김은희는 정치와 도덕이 분리되지 않았던 조선시대 양반사회를 떠받친 성리학적 인식체계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재현되고, 재생산되는 작금의 현실에 주목하고 이를 ‘신양반사회’라 명명한다. 책은 최근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갈등의 중심에 ‘누가 도덕적으로 우월한가’라는 물음이 있었음을 건져낸다. 그리고 이 물음을 ‘현대 한국 사회의 양반은 누구인가’로 치환한다. 제도로서의 양반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사회의 지도층, 요컨대 민주화 투쟁을 주도하고 지금은 현실 정치의 견인 세력인 586세대를 관통하는 지배 정서로 강건하게 살아남았다.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독특한 멘탈리티의 기원을 찾아, 문화인류학적 고찰을 담아낸 《신양반사회》다. 
 
 
도덕성을 무기로 한,
새로운 양반 계층이 등장했다
 
저자 김은희는 문재인 정부 후반기에 한국 사회를 들썩인 ‘조국 사태’와 ‘윤미향 사태’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당시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논리에 주목한다. 양반, 군자, 소인 등의 용어를 쓰지 않을 뿐이지, 조선시대 양반사회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양반사회는 군자와 소인, 존귀한 자와 천한 자를 구분했다. 조국과 윤미향의 지지자들 역시 한국 사회의 구성원을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한쪽에는 ‘양반’, 즉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며 살아온 사회운동가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소인’, 즉 자신의 이익을 좇는 사람들이 있다. 전자에는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고 이후 사회운동에 뛰어든 사람들이 속하며, 후자에는 ‘기득권’과 ‘적폐 세력’이 포함된다. 그리고 운동가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이 추구하는 ‘정의’는 법 위에 존재하는 윤리 규범인 ‘의’에 가깝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양반사회가 지향했던 덕치는 군자가 교화를 통해 소인을 지배하는 것을 말하며, 이러한 유교적 정의론에 기반해 사고하고 행동하는 이들에게 ‘정의’는 법 위에 존재하는 ‘도덕적 심성의 문제’일 것이라고 분석한다. 따라서 법의 원칙과 절차, 혹은 과학적·합리적으로 도출된 사고를 가까이하는 대신 살아온 내력과 평판을 내세우는 등 ‘도덕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저자는 모든 시민이 도덕적으로 평등한 근대 시민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상의 자유와 사유의 공존을 허용하지 않는 양반사회로 회귀하는 한국 사회를 대상으로 심도 있고 날카로운 분석을 시도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운동가들이 그렇게도 실현시키고자 하는 ‘정의로운’ 사회는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들에 의한 통치, 즉 덕치를 지향하는 양반사회이지 법치에 기반한 근대적 자유주의 사회는 아니다. 그들이 양보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는 최후의 보루는 자신들의 도덕적 우월성이다.” 
―13쪽, 들어가며 ‘신양반사회의 도래’ 중에서
 
 
“양반은 누구인가?”
문화적 개념으로서 ‘양반’ 다시 보기
 
책은 먼저 1장에서 조선시대 ‘양반’ 계층이 어떤 사람들을 가리켰는지, 그 근원을 추적한다. 가장 크게는 “조선 후기 양반제가 붕괴했다”고 말하는 주류 역사 담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많은 교과서와 한국사 연구자들은 “조선 후기에 들어와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고 심지어 상업도시가 성장하였으며, 이로 인해 양반을 지배계층으로 한 신분질서가 와해되었다”고 서술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가족과 친족문화에 관한 인류학적 연구들은 정반대의 사실을 드러낸다고 저자는 밝힌다. 양반제가 붕괴되었다는 서술의 기본 전제가 되는 한국경제사의 주류 이론인 ‘자본주의 맹아론’이나 ‘내재적 발전론’은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후진적이었던 조선 후기의 상공업 수준을 왜곡·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 김은희는 도로와 교량 같은 물적 증거의 부재, 직조와 염색기술의 쇠퇴 등 다양한 근거를 토대로 실제로는 조선 후기 들어 상공업이 침체했다고 강조한다. 
이어서 “조선 후기에 양반이 격증했다”는 주장에도 정면으로 맞선다. 저자에 따르면 ‘양반’은 객관적 기준으로 규정되는 법적 개념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사회관습을 통해 정착된 문화적 개념이다. 조상과 가문으로부터 독립된 자유로운 개인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양반’이 어떻게 규정되는지 소개하는 대목은 “상공인이나 부유한 상민이 돈을 주고 족보를 위조하여 양반으로 계층상승했다”고 서술되던 기존 역사 담론과 다시 한번 부딪친다. 저자는 양반은 문화적 규범에 따라 정당성을 부여받은 신분계층이었기에, ‘양반의식’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그는 현대사회로 계승된 양반의식, 요컨대 소위 ‘국민 정서’라고 불리는 의식과 이념에 관해 분석한다. 출신 성분에 따른 도덕적 우월성을 강조하고, 사적 영역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 등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요즘의 언어로 묻는다. ‘친일파’ 후손인가? 혹은 ‘기득권 적폐 세력’인가? 아니면 독립운동가 후손 혹은 민주화 운동가인가? 그러나 이 질문들의 핵심적인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의 조상은 누구인가? 대의를 위해 살았는가?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불의와 타협하며 살았는가?”
―40쪽, 1장 ‘양반은 누구인가?’ 중에서
 
 
“우리에게 조상은 무엇인가”
‘아무개 자손’이라는 정체성에 관하여
 
그렇다면 우리에게 ‘조상’은 무엇인가? 김은희는 2장에서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조상과 후손을 동일시하는 ‘아무개 자손’이라는 혈연의식이 양반 계층에 강화된다. 조상의 제사를 공동으로 지내는 친족집단을 구분하고 통합하는 제도인 중국 고대의 ‘종법제’가 널리 퍼진 까닭인데, 조선 초기에는 엘리트 사대부가에서도 잘 시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17세기에 들어 유학자들의 성리학 이론이 심화되고 유림이 서원과 향약 등을 발판으로 향촌사회의 지배세력이 되면서, 종법사상이 양반 계층에 뿌리내리게 되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이 과정에서 정작 종법제의 본산지인 중국보다도 조선 사회가 더 엄격하게 심화된 형태로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유학자와 관직자들에게 정통성을 따지는 것은 사회기강을 지키는 기본원칙이었으며 천륜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한 예로, 중국의 부계친족집단이 ‘공동재산’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면 조선 사회에서는 사회적 평판과 명성이 중심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 후기로 갈수록 유명한 조상의 자손이 아니면 본인의 학문과 덕망이 뛰어나도 지역사회에서 양반으로 대우받지 못했다고 책은 말한다. 
종법제는 ‘집家’을 적장자가 제사를 물려받아 끊임없이 대를 이어가는 영속체로 만들었다. 조상 대대로 그리고 자손 대대로 이어지는 제사는 조상과 자손을 동일시하는 ‘우리’라는 혈연의식과 집단의식을 강화시켰다. 개인은 독립된 생명이 아니라 부모와 조상의 생명이 연장된 존재로 인식되었고,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집과 친족집단은 개인 자신의 일부가 되었다. 동시에 제사집단으로서의 ‘집안’은 정치사회에 종속된 공적인 영역으로 변환되었다. 제사는 ‘중앙’의 정치사회에서의 지위를 재확인하는 공적인 행사였다. 저자는 이렇듯 양반사회의 정치와 친족 간 관계가 오늘날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아직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 회사, 우리나라, 우리 민족 등으로. 사적인 개인은 ‘우리’의 일부가 되어 강력한 집단주의적 사고에 종종 매몰되어 버린다. 조상과 후손이 동일시되니 몇백 년 전, 몇천 년 전 단군시대의 역사까지 바로 나 자신의 일이 된다. 적서의 분을 따지듯이 역사적 사건에서 누가 더 도덕적으로 우월한가 정통성을 따지고 시시비비를 가리고자 한다.”
―165쪽, 2장 ‘우리에게 조상은 무엇인가?’ 중에서
 
 
그들이 말하는 ‘정의로운’ 사회,
‘공정한’ 나라, ‘진정한’ 민주국가는 무엇인가
 
책은 문재인 정권의 여론정치를 두고, 조선 후기 양반사회의 공론정치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이라고 지적한다. 시민단체가 정부 정책에 대거 참여하는 것은 조선 후기 양반사회에서 중앙정부의 관료조직 밖에 있는 지방유림이 거의 준관직자로서 중앙의 정치에 참여했던 실태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유교적 도덕정치에서 국왕의 자의적인 권력행사는 민주공화국처럼 삼권분립에 의해 견제되었던 것이 아니라 유학자 관원들, 그중에서도 국왕의 잘못을 간할 수 있는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젊은 관료들의 감시를 통해 제어당했다. 그러나 도학정치를 실현하겠다는 훌륭한 의도로 제도화된 삼사의 간쟁 활동은 조선의 왕권을 상당히 약화시켰으며, 조선 중기부터 붕당의 형성과 이로 인한 행정의 비효율성과 난맥이라는 문제점들을 초래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리고 당시 조정의 대신들이 지적했던 신진사류의 문제점은 현대 한국 사회의 ‘민주화 세력’ 혹은 ‘운동권’의 모습과 많이 흡사하다는 것이다. 요즘 표현으로 ‘패거리 정치’, ‘내로남불’, ‘불투명한’ 정책결정 과정 등과 하나도 다를게 없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부제인 “586, 그들이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알 수 있듯이, 《신양반사회》의 칼끝은 586세대를 향한다.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고, ‘군자’가 ‘소인’을 지배하는 양반사회의 논리를 그대로 이어받은 정치권의 특권의식을 향한 비판이 매섭다. 그러나 이 책은 유교적 이데올로기에서 자유하지 않은 우리 사회 전체가 기꺼이 읽어내야 하는 텍스트다. ‘K’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보다 두터운 시각으로 한국 사회의 근원을 파헤치고 싶은 독자들에게 특별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유교적’ 역사관, ‘유교적’ 경제관, ‘유교적’ 정치관, ‘유교적’ 문화관 등을 아우르는 문화인류학자의  날카롭고 섬세한 통찰과 분석이 ‘정의로운 사회’란 무엇이고 ‘공정한 나라’와 ‘진정한 민주국가’는 무엇인지 새로운 시각과 접근 앞으로 독자를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