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 모든 것의 마이크로칩
제임스 애슈턴
백우진
2024-01-29
488
150*225 mm
9791193166420
27,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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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모든 빅테크는 ARM에 주목하는가?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는 ARM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기술업계의 숨겨진 보석을 손에 넣기를 10년 넘게 갈망했다”라며 보유하고 있던 알리바바의 지분을 팔면서까지 인수(2016년)했던 회사 ARM. 인공지능 반도체의 리더 엔비디아의 젠슨황 회장이 “이 물건이 나온다면 제가 최고 입찰자가 되겠습니다”라며 적극적으로 인수를 시도했던 회사도 ARM이다.

ARM은 그야말로 모든 곳에 존재한다. 아이폰과 갤럭시 등 스마트폰의 프로세서AP는 거의 100% ARM 설계 기반이다. 테슬라의 전기차, 후가쿠 슈퍼컴퓨터, 아마존 AWS와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도 ARM 기반 칩을 장착한 데이터센터를 운영한다. 그리고 ARM의 설계는 칩질라 인텔의 영역이던 PC로도 확장되고 있다. ARM 기반 칩은 2024년 1월 기준 누적 2,700억 개 출하되었으며, 매초 900개가 늘어난다.

ARM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리스크RISC라는 아키텍처에 기반한 덕분이다. RISC 아키텍처는 인텔이 채용한 시스크CISC 아키텍처에 비해 저전력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 덕분에 커다란 휴대전화의 배터리 사이즈가 줄게 되어 1990년대 후반부터 노키아가 이끌었던 휴대전화 혁명이 가능했고 아이폰이 열어젖힌 스마트폰 시대가 가능했다. 오늘날 데이터센터는 엄청난 전기 소모량과 발열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ARM 기반 칩이 활용될 여지가 생긴다. 이렇게 ARM이 성장하는 동안 PC와 노트북의 범용 CPU로 시스템 반도체를 수십 년 장악했던 인텔은 점차 세를 잃게 되었다.



전문화되는 반도체산업
생산(파운드리)은 TSMC, 노광장비는 ASML, 기본 설계는 ARM


반도체산업의 초기에는 한 회사가 설계부터 생산까지 모든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반도체 공장(팹) 하나를 만드는 데 200억 달러 이상 소요될 정도로 산업이 성장하고 기술이 발전한 오늘날에는 각 기업이 전문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세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기업으로 대만의 TSMC, 네덜란드의 ASML, 그리고 영국의 ARM이 있다.

TSMC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로, 고객이 주문한 사양에 따라 반도체를 제조한다. 반도체를 설계하지도 않고, 자신들의 반도체를 팔지도 않는다. TSMC의 주요 고객으로는 애플, 엔비디아, NXP, AMD, 인텔, 퀄컴 등이 있다(이를 파운드리라 하며, 이 분야의 2위 업체는 삼성전자다). ASML은 노광(빛으로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과정)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이다. 현재 ASML의 장비 없이는 최신 반도체를 만들어낼 수 없다. ASML은 2017년 극자외선EUV 기술을 적용하며 앞서나갔고, 이 기술을 보유한 경쟁사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설계에는 ARM이 있다. ARM은 1980년대 말 애플이 메시지패드(시대를 앞서나갔던 이 아이디어는 결국 아이패드가 된다)에 장착할 칩을 찾는 과정에서 애플과 에이콘 컴퓨터, VLSI의 합작사로 탄생하였다(애플은 2000년 지분 매각). ARM은 처음부터 인텔이 장악한 PC보다는 임베디드 기기(통신, 게임, 이미지 처리 등 특별한 목적을 가진 기기) 영역을 겨냥했고, 또한 모든 것을 다 하기보다는 설계의 기본 구성요소를 지식재산으로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했다. 무언가 특화된 마이크로칩을 개발하고자 하는 업체들이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ARM의 설계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범용 프로세서에서
ARM 설계에 기반한 맞춤형 반도체의 시대로


애플이 사실 거대 반도체 회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컨설팅 업체 맥킨지의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애플은 브로드컴과 퀄컴에 이은 세계 3위 팹리스 반도체 업체이며 애플이 칩을 판매할 경우 연간 매출이 200억 달러에 이르고 시장가치는 8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아마존은 어떤가? 아마존이 오늘날 공룡과 같은 유통 기업이 되기까지 클라우드 시장의 45%를 점유하며 아마존 영업이익의 거의 대부분에 기여했던 사업이 아마존 웹서비스AWS이다. AWS는 2019년 자신들 최초의 맞춤형 프로세서인 ARM 기반 그래비턴 칩을 발표한다. 현금이 풍부하고 칩 구매량이 엄청났던 아마존은 자신들의 필요에 맞는 자체 칩을 개발함으로써 성능도 높이고 구매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되었다.

구글은 스마트폰용 텐서 칩을 개발하여 삼성전자를 통해 조달했다. 중국의 화웨이는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을 통해 만든 기린 칩을 사용한다. 알리바바는 2018년부터 자회사인 T-헤드세미컨덕터를 통해 서버 칩을 자체 개발한다. 2019년에는 테슬라가 전기차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실행하는 맞춤형 칩을 선보였다. 일런 머스크는 “칩을 설계해 본 적도 없는 테슬라가 어떻게 세계 최고의 칩을 설계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객관적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갤럭시 제품군을 위한 새로운 맞춤형 프로세서를 2025년에 내놓을 예정이다.

이제 마이크로칩은 마이크로칩 업체에만 맡겨두기에는 너무나 중요해진 시대, 맞춤형 실리콘의 시대가 되었다. 거대 빅테크들의 차별화를 위한 경쟁에 수십억 달러가 지출되고 있다. 그런데 맞춤형 반도체를 만드는 업체들, 즉 애플, 아마존, 삼성전자, 퀄컴, 구글, 화웨이, 알리바바,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를 가릴 것 없이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ARM이다.



미중 무역전쟁과 빅테크들의 쟁투 가운데에 위치한 ARM

2016년 ARM이 소프트뱅크에 인수된 이후, 중국 정부는 ARM을 압박하는 수위를 높였다. 2017년 중국에서 설계된 모든 첨단 칩의 95%가 ARM의 기술 기반이었다고 한다. 반도체가 미중 분쟁의 핵심으로 떠오르던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당연하게도 ARM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기를 원했다. ARM으로서도 중국은 중요한 시장이었다. 매출의 20%를 차지할뿐더러 앞으로 미국보다 중국에서 매출이 많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수십 년 동안 중국 사업을 해온 손정의 회장은 분사를 통해 중국 사업의 미래를 확보하고자 했다. 그 결과 ARM은 ARM 차이나의 경영권을 7.7억 달러에 현지 투자자 그룹에 양도한다고 발표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곧바로 ARM은 서방과 중국 사이 반도체 긴장의 한복판에 놓이게 되었다.

2020년 여름 손정의 회장이 젠슨황 엔비디아 회장에게 보낸 휴대폰 문자를 보낸다. 이로부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9월, 엔비디아가 ARM을 40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곧바로 강력한 반발이 시작되었다. 최고의 기술기업이 영국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영국 정부의 우려야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빅테크들로 이루어진 강력한 그룹이 반발을 이끌었다. 알파벳(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퀄컴 등으로 이루어진 빅테크 그룹은 2021년 2월 연방거래위원회FTC에 반대 의견을 제출했다. 이들은 엔비디아가 중요한 공급업체를 장악함으로써 ARM의 핵심 설계에 대한 다른 기업의 접근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ARM 기반 맞춤형 칩을 직접 개발하는 업체들에게는 심각한 이슈였다. 중국 정부도 이 인수 시도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중국의 신생 칩 업체 중 다수가 ARM 고객인데, 미국 기업이 ARM을 소유하게 될 경우에 대한 우려였다.

FTC는 곧바로 조사에 착수했고, 결국 2022년 2월 이 거래가 “양사의 선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대한 규제 문제로 인해 무산되었다”고 발표했다. 이후 ARM은 상장으로 방향을 선회했고, 2023년 9월 역대 17번째 규모로 나스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