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아마르티아 센
김승진
2024-06-20
648
140*215 mm
9791193166550
33,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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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닿는 모든 곳을 고향으로,
만난 이들 모두를 스승으로 삼은
위대한 사상가, 아마르티아 센의 원점을 만나다


1998년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으며, ‘가난하고 박탈당한 사람들을 위한 옹호자’ ‘경제학계의 양심’으로 불린 아마르티아 센. 그의 연구는 기근, 인간 개발 이론, 후생경제학, 빈곤 메커니즘, 젠더 불평등, 정치적 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실로 방대하다. 대차대조표와 무역 거래, GDP에 집착하며 효용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경제학에서 벗어나 인간의 ‘좋은 삶’을 위한 경제학으로 커다란 방향 전환을 이룬 아마르티아 센의 사상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은 센이 경제학자의 지위를 다지기까지의 전반 생을 중심으로 술회하며 훗날 그가 추구하게 되는 학문적 관심사와 뿌리를 발견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 책의 원제 ‘세계 속의 집’(Home in the world)은 센에게 ‘아마르티아’(산스크리트어로 ‘불멸’을 의미)라는 이름을 주었고, 그의 사상을 형성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도의 시인이자 사상가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저서 ‘가정과 세계’(The Home and the world)에서 따왔는데, 어렸을 때부터 여러 곳을 옮겨다니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자양분으로 쌓았던 센의 인생 편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성과 자유에 대한 신념, 다양성의 소중함을 배웠던
산티니케탄에서의 어린 시절


1933년, 다카(당시 인도의 도시, 현재는 방글라데시의 수도)에서 태어난 센은 다카 대학 화학과 교수였던 아버지 아슈토시 센, 타고르의 협력자이자 산스크리트어와 힌두이즘 학자였던 외할아버지 크시티 모한 센 등의 영향으로 유명한 학자와 사상가들에게 둘러싸여 자랐다. 센은 1941년부터 산티니케탄 학교에서 공부하는데, 타고르가 설립한 이 학교는 야외 수업, 체벌 금지가 특징인 진보적인 남녀공학으로, 아시아나 아프리카 지역의 문화 등 광범위한 내용을 커리큘럼에 담으며 당시 인도 학교 교육 전반에서 강하게 작용하던 문화적 보수주의와는 대조적인 다양성을 내세웠다. 또한 시험 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학생들의 호기심 육성을 강조하는 등, 학교의 방침 곳곳에 타고르의 신념이 녹아들어 있었다.

하지만 센이 산티니케탄 학교에서 공부하던 10년간, 인도는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었다. 식민 치하에서 전시 지원 활동이라는 명목의 경제적 수탈이 예삿일이었고, 1943년에 일어난 벵골 대기근으로 인해 200만~300만으로 추정되는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또한 힌두교도-이슬람교도의 대립이 심화되면서 피비린내 나는 폭력 사태가 이어지고 결국 인도는 무슬림 국가인 파키스탄과 힌두교 국가 인도로 분할되고 만다. 수많은 사람이 살던 곳을 떠나 종교와 일치되는 국가로 이주했는데, 센의 가족들도 정든 삶의 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혼돈의 시기를 통과하며 목격할 수밖에 없었던 불합리한 폭력과 죽음은 센이 이후 일생을 바쳐 연구하게 되는 빈곤과 불평등 문제, 인간을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보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센의 사상을 키운
캘커타와 케임브리지에서의 지적 체험


1951년, 센은 경제학과 수학을 배우기 위해 캘커타 대학 프레지던시 칼리지에 입학한다. ‘새로운 인도, 지금만큼 가난하지도 부도덕하지도 않고 어처구니없도록 잘못 돌아가는 부분도 없는 인도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 그러려면 경제학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295쪽).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우의 개척적인 사회선택 이론서 『사회적 선택과 개인적 가치』가 출판된다. 애로우가 이 책에서 제시한 ‘불가능성 정리’는 명백하게 합리적인 기본 절차를 충족해야 할 경우 독재 이외의 사회선택 메커니즘으로는 일관성 있는 사회적 의사결정이 산출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제 막 독립을 하고 좋은 민주 국가가 되고자 하는 인도에서 일관성 있는 사회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민주적 정치체의 실현 가능성은 매우 중요한 이슈였다. 애로우의 정리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민주적 일관성이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었지만, 센은 이에 동의하기 어려웠고 독재 메커니즘이 아닌 사회적 선택의 규칙이 성립될 수 있는 또 다른 공리적 조건들이 있으리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센은 애로우가 탐구했던 사회적 선택의 문제에 맹렬히 몰두했고, 이는 평생에 걸친 센의 학계 경력에서 지극히 중요한 주제가 된다.

경제학 연구를 이어가기 위해 1953년부터 재적했던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모리스 돕, 피에로 스라파, 데니스 로버트슨, 조앤 로빈슨 등 여러 우수한 학자를 최고의 스승이자 동료로 만나게 된다. 특히 피에로 스라파는 이탈리아 출신 경제학자이자 철학자로, 비트겐슈타인과 안토니오 그람시의 사상과 이론 형성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스라파의 경제학적 아이디어는 물론 철학적 아이디어는 센의 관점을 확장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다.

‘좋은 삶’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는
자유, 다원성에 대한 관용이라는 믿음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에서 드러나는 센의 삶의 궤적은 세계 근현대사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유소년 시절에 목격했던 기근 사망자들과 종교 분쟁의 희생자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본 채플 벽에 빼곡하게 새겨진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트리니티 칼리지 학생들의 이름들…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종교라는 이유만으로, 국가 간 대립에 휘말려 폭력의 희생자가 되어버린 이들은 센의 인생 곳곳에 존재했다. 약육강식의 냉혹한 역사 속에서 고통받는 약자들을 그저 외면했다면 인류에 기여한 센의 다양한 연구는 실행되지 않았으리라. 그는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나는지 끊임없이 성찰하고 대안을 제시하려 했다. 왜 대기근이 발생했을까. 식량이 있어도 너무 비싸 살 수 없는 경제적인 부자유, 기근의 실태를 대중에게 숨겼던 보도의 부자유 때문이었다. 센이 목격한 종교 분쟁의 희생자였던 카데르 미아는 집에 먹을 것이 없어 일거리를 찾으러 위험을 무릅쓰고 적대적인 지역을 찾았다가 살해당하고 만다. “빈곤은 살해당할 위험이 굉장히 높은 상황을 무릅쓰지 않을 자유도 포함해 모든 종류의 자유를 박탈할 수 있었다”(200쪽). 센은 자유의 박탈이 부른 비극을 해결하는 방법 역시 자유에서 찾는다. 기근의 원인을 분석한 연구를 통해 그가 발견한 기근 퇴치의 필수적 요소는 바로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였다. “자유로운 언론이 있다면 기근이 시작되었을 때 언론이 상황을 사람들에게 알리게 될 것이고, 민주적인 투표 제도가 있다면 기근 시기나 기근 직후의 시기에 집권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기근을 지체 없이 해소하려는 인센티브를 갖게 된다”(262쪽). 실제로 인도는 영국 식민 치하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언론을 갖게 된 이후 더는 기근 피해를 입지 않는다.

센이 회고록을 집필하던 당시인 2021년에도 지금도, 알카에다, 보코하람, IS, 강력한 반유대주의, 중동과 아프리카 난민에 대해 조직적인 적대를 표출하는 이슬람 혐오 집단 등 종교 정체성 기반의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종교 정체성뿐만 아니라 정치 성향, 젠더, 지역 갈등 등으로 양극화되어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으로 돌리며 다양한 의견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전 세계적으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곧잘 인간을 단일한 정체성으로 묶어 쉽게 재단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복수의 ‘집’(정체성)을 가질 수 있으며, 누군가의 정체성을 하나의 범주만으로 가둘 필요는 없다는 것이 센의 입장이다. “본국, 시민권, 거주지, 언어, 직업, 종교, 정치 성향, 그 밖에도 수많은 정체성은 우리 안에서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고 그 정체성들 모두가 우리 각자를 자기 자신이 되게 해준다”(554쪽). 정체성의 다원성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관용적으로 만들고, ‘좋은 삶’에는 자유가 불가결하다는 것을 온 생애에 걸쳐 증명했던 아마르티아 센의 메시지는 오늘날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