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
이상헌
2025-05-01
320
140*210 mm
9791193166970
19,8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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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우리가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교범이 될 것이다.” _장하준(경제학자)

♦“고등학교에서 노동권 수업을 하면서 이 책을 교과서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_정보라(소설가)

 

국제기구, 정책 현장, 경제학 연구의 최전선에서

일과 일자리, 일하는 삶의 본질을 새롭게 정의하다

 

일자리는 귀하고 중하다. 우리는 생계를 위해, 자아실현을 위해, 사회와 연결되기 위해, 그 안에서 자기만의 자리를 찾기 위해, 나아가 이런저런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일자리를 원한다. 그러나 일자리가 있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낮은 임금, 열악한 복지, 곳곳에 도사리는 해고 위험 등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고용 환경 속에서 ‘좋은 일자리’는 한층 더 귀하고 중하다. 이 시대의 일자리 문제란, 간단히 ‘있느냐, 없느냐’의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이 책은 시장의 논리와 인간의 존엄 사이에서 ‘삶의 의미로서의 일’을 재정의한다.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이상헌이 다시 한국 사회와 마주 서서 오늘날 일자리 문제의 본질을 규명한다. ‘일하는 삶의 경제학’이라 이름 붙인 시리즈를 통해 숫자 너머를 보려, 불화 속에서 길을 찾으려 애쓰며 지금 여기에서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를 해결하는 일에 집중한다. 시리즈 첫 번째 책인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는 똑떨어지게 답이 나오는 경제학적 분석을 뛰어넘어, 노동과 고용이라는 좁은 개념 밖에 존재하는 넓고도 온전한 ‘일하는 삶’이라는 시각에서 ‘일’의 가치를 재발견한다.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땀과 눈물과 먼지로 번들거리는 일자리의 현실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지난 30년간 국제기구, 정책 현장, 경제학 연구의 최전선에서 정책 개발과 조언을 업으로 삼아온 그가 학문적 고찰과 실천적 고민을 함께 담은 일자리 입문서를 선보인다. 각종 경제 이론과 연구 결과, 최신 국제 사례를 바탕으로 기존 경제학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분석과 통찰을 제공하며 우리 앞에 놓인 복잡한 퍼즐을 함께 맞추어가는 흥미롭고도 보람 있는 여정으로 독자를 이끈다.

 

 

“내 이름은 로제타, 나는 일자리를 찾았어.”

경제학이 외면한 ‘삶의 의미로서의 일’에 관하여

 

책은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여성의 고단한 삶을 그려 20세기 마지막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다르덴 형제의 영화 〈로제타〉로 문을 연다. 수습을 마치자마자 공장에서 해고된 로제타는 자격 요건이 되지 않아 실업 급여도 받지 못한다. 버려진 캠핑카에서 알코올 중독의 어머니와 함께 사는 그는 유일한 구원인 일자리만을 기다린다. 밤마다 자장가 삼아 “내 이름은 로제타, 나는 일자리를 찾았어”라고 말하지만, 그 구원은 좀체 오지 않는다. 이상헌은 이를 스크린 속 허구와 과장의 이야기로 치부하지 않는다. 되려 한 발자국 나아가 “로제타는 어디에나 있다”고 말한다. “유럽의 작은 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로제타는 어디에나 있다. 유럽의 어느 나라에도, 미국에도, 여기 한국에도 있다. 그리고 젊은 로제타도 있고, 나이 든 로제타도 있다. 로제타는 영화처럼 여성의 모습으로도, 남성의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공장에도, 가게에도, 사무실에도, 공사장에도, 도로 위에도, 논과 밭에도 그리고 집 안에도 있다. 로제타는 일자리에서 밀려난 모든 사람을 부르는 보통 명사다.”(12쪽)

곧이어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히 직시할 것을 제안한다. 이상헌에 따르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왜 일자리는 부족한가”가 아니라, “왜 좋은 일자리는 부족한가”이다. 경제학적 접근을 넘어, 삶의 의미로서의 ‘일’을 사유하고 재정의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는 그간 경제학 책에서 쉬이 찾아볼 수 없던 논의이다. 이상헌은 ‘노동’을 상품으로 바라보는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모든 것은 본디 ‘상품이 아닌’ 노동이 상품으로 취급되고 거래되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노동시장’ 이야기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노동시장을 공급과 수요가 만나 균형을 이루는 공간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실업을 비롯한 모든 일자리 문제는 자연스럽게 조정되며 절로 해결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현실은 간단하지 않다. 노동자는 상품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인간인 까닭이다. 따라서 일자리의 가치는 임금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적 기여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상헌은 노동시장이 태생적으로 불완전하며, 말끔한 시장 논리만으로는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날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자동화와 디지털 혁신이 가속화되며 어제의 새로운 기술이 오늘의 지루한 기술이 되는 지금, 과거와 같은 안정적인 일자리 개념은 더는 굳건하지 못하다.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계약직 등 다양한 고용 형태가 확산되며 노동의 개념 또한 급격히 변화하고 있지만, 우리의 정책적·사회적 대응은 아직 한참 부족하다. 논의조차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과서적 경제학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며, 꿈틀거리는 ‘일자리 정치경제학’을 고민하고 ‘좋은 일자리’란 무엇인지 묻는 이 책은 반갑고 값지다.

 

 

‘일하는 삶을 위한 경제학’

아홉 개의 장, 하나의 문제의식

 

총 아홉 장으로 구성된 책은 각각의 장에서 ‘좋은 일자리’를 둘러싼 다층적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나라의 ‘일하는 삶’을 생생히 묘파하고 곳곳에서 대안을 강구한다. 1장 “실업: 하나의 현실, 갈라지는 생각들”에서는 경제학이 일자리의 상실, 즉 ‘실업’을 어떻게 다루는지 살펴보며 고용을 시장 논리로만 해석하는 한계와 역사적 논쟁을 짚는다. 같은 실업률이라도 분석과 처방이 갈리는 이유는, 노동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시장이 실업을 자연스럽게 조정한다고 보는 시각과 오히려 문제의 원인이라는 시각이 맞선다. 흥미롭게도 시장주의의 상징인 애덤 스미스조차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의 불균형을 걱정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장 “일의 세계: 고용과 노동을 넘어”는 고용률이나 실업률 같은 수치가 놓치고 있는 ‘일의 질’에 주목한다. 통계가 포착하지 못하는 일상의 노동을 돌아보며 지불되지 않거나 과소평가되는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궁극적으로 일자리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이렇듯 1장과 2장은 경제학 이론과 개념적 토대를 정리한 장으로, 전체 논의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출발점인 동시에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독자들에게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

3장부터는 일터에 있는 우리에게 한층 가까운 언어로, 보다 본격적이며 실질적인 탐구가 펼쳐진다. 3장 “일자리의 가치: 사회적 가치와 기여적 정의”는 ‘좋은 일자리’의 기준을 임금이 아닌 사회적 기여로 확장한다. 좋은 일자리에는 긍정적 외부성이, 나쁜 일자리에는 부정적 외부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기여적 정의(contributive justice)라는 개념을 통해 일자리의 생산 과정 자체에 의미 있게 기여하는 것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이는 경제의 주춧돌로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법에 관한 깊이 있는 논의로 이어진다.

4장 “일의 대가: 너무 높은 임금, 너무 낮은 임금”에서는 임금이 단순히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지적한다. 임금 결정 과정에서 작용하는 힘의 불균형을 다루는데, 노동자의 논리와 기업의 논리가 충돌하는 지점에 대해 탐구한다. 특히 최근의 경제적 추세에서 노동자의 교섭력이 약화되고, 임금은 생산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을 분석한다. 저임금층과 저소득층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다루며, 일의 대가가 사회적 공정성을 갖추기 위한 조건을 제시한다.

5장 “낮은 일의 대가: 최저임금은 축복인가, 실수인가”는 최저임금을 다루며, 이를 둘러싼 찬반 논쟁을 종합적으로 살핀다. 관련 연구 결과를 통해 최저임금이 저임금층의 삶을 개선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확인하면서도 제도 운영에 있어 신중함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이어지는 6장 “일하는 시간: 시간 단축의 꿈과 좌절”에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 노동시간을 말한다. 경제 성장과 소득 증대에도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를 구조적으로 분석한다. 장시간 노동의 반인간성과 비경제성을 다루며, 단시간 일자리와 관련된 새로운 과제들을 탐구한다. 또한 가사노동 분담과 사회적 지원을 검토하며 노동시간 단축이 일자리 창출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논의한다.

7장 “기술 변화: 풍요와 그늘, 분화하는 일자리와 분열하는 일터”는 기술 변화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살핀다. 기술이 변화함에 따라 일자리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고임금 일자리와 저임금 일자리가 함께 늘어나는 현상을 분석한다. 나아가 기술 발전이 일자리에 미치는 사회경제적 효과에 대해 이야기하며, 기술에만 투자할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투자로 균형을 맞춰야 함을 강조한다.

8장 “국경을 넘는 노동: 이주노동, 오해, 편견”은 이주노동을 둘러싼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는다. 이들은 불청객이 아니라 ‘우리가 필요로 해서 온 사람’이라는 점을 역설하며, 이주노동에 대한 두려움과 차별이 어떻게 부메랑처럼 우리에게 돌아오는지 설명한다. 이주노동이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임금을 낮춘다는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는 점을 확실히 짚는다.

마지막 9장 “일하는 삶에 투자하는 사회”에서는 앞선 논의를 바탕으로, 우리의 대안과 선택을 논한다. 기여적 정의와 사회적 지원 등 다양한 정책과 제도, 투자를 통해 일자리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가능성을 모색한다.

 

 

일하는 사람, 일할 사람

모두가 읽어야 할 일자리 입문서

 

모두를 위한 입문서이지만, 가볍게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실업, 최저임금, 노동시간, 기술변화, 이주노동, 정부와 기업의 역할 등 일자리와 관련한 굵직한 쟁점들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까닭이다. 때로는 몰랐기에 아프고, 때로는 알고도 외면했기에 서먹서먹하다. 이상헌은 독자들이 그 어떤 지면에서도 이해를 포기하지 않도록 작고도 살뜰한 장치를 곳곳에 마련했다. 9장을 제외한 모든 장 말미에는 간추린 내용을 수록해두었고, 다소 복잡한 개념이나 쟁점은 가능한 한 일상적인 언어로 풀어냈다. 또한 경제학 교과서의 통념을 반박하거나 전에 없던 새로운 질문을 던질 때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인용했다. 학문 내부의 다양한 관점이 실린 주요 저널 논문을 토대로 논의를 전개하면서도 독자 친화적인 서술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 책은 빤한 경제학 서적이 아니다. 단순한 진단에 그치지도 않는다. 일하는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을 더 깊숙이 들여다보게 한다. 희망의 불씨이다. 실업과 고용 불안정이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공동체의 미래까지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임을 강조하며, 독자를 새로운 이해와 인식의 지점으로 이끈다. 나아가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독자는 일자리 문제를 둘러싼 구조적 원인과 해결책을 새로이 발견하는 것은 물론, 경제학이 숫자의 학문이 아니라 사회학적·철학적 논의를 포함해 인간의 삶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학문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다. 9장에서 언급되는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마리엔탈’의 경험은 특히 인상적이다(275쪽). 좋은 일자리 하나를 키우려면 온 동네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전하며 세계 각국의 관심을 모은 마을의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로제타〉 상영 이후 벨기에를 비롯한 유럽 곳곳에서는 청년고용촉진법을 뜻하는 ‘로제타법’이 제정되었다.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 또한 현실의 ‘로제타들’이 함께 모여 고민하고 더 나은 일하는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단단한 디딤돌을 놓는다. 도처에서 실마리를 찾아 묻고, 파고들고, 제안하고, 희망하며 결국 더 나은 선택의 가능성을 우리 앞에 놓아둔다. 일터는 곧 삶터임을 역설한다. 좋은 일자리는 왜 늘 부족할까? 아프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질문들과 그 너머에 놓인 가능성을 함께 품은 책. 지금 한국 사회에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도착했다. 시장의 논리와 인간의 존엄 사이에서 길을 찾는 지적 탐험과 ‘내 일’의 주인 자리로 독자를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