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이끈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미국을 시발점으로 주요 강대국들이 저마다 산업정책과 통상 규제를 내놓으며 세계 무역 질서를 흔들고 있다. 보조금, 온쇼어링, 데이터 통제, 수출 통제, 경제 제재 등 이제 세계 무역은 각국 정부의 ‘보이는 손’ 아래 재편되고 있다.
《조건부 자유무역의 시대》는 자유무역이 더 이상 공짜가 아닌 ‘조건부’ 자유무역의 시대에 주요 국가들은 어떤 산업정책과 통상 전략을 가지고 있으며, 자국에서 생산되지 않은 제품들에 어떤 규제를 적용하는지를 면밀히 분석한다. 이를 기반으로 우리 기업과 정부, 학계가 어떻게 적응하고 도약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대응 방안을 제시한다.
★★★★★★
조건부 자유무역 시대의 도래
‘보이는 손’이 움직이는 무역 질서로의 전환
“우리는 지금 자유무역을 위해 다양한 조건과 절차를 충족해야만 하는, 말 그대로 조건부 자유무역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8쪽)
30여 년간 신자유주의적 자유무역 체제에 의존해 성장해온 세계 경제 질서가 격변하고 있다. 미국과 EU, 중국, 인도 등 주요 강대국들은 과거처럼 국제 무역을 시장에 맡기지 않고, 각자의 산업을 보호하는 정책 그리고 안보를 고려한 통상 규제를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WTO 체제는 규칙을 만들고 분쟁을 조정하는 기능이 사실상 마비되어 가고 있으며, FTA 역시 무차별적 자유무역이 아니라 가치와 기준 중심의 조건부 체계로 변화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세계 무역질서의 거대한 변화를 ‘보이는 손’, 즉 강대국 정부들의 산업정책과 통상 규제가 주도하는 흐름으로 분석한다. WTO나 FTA라는 익숙한 무대는 이제 뒷전으로 밀려났고, 새로운 시대에는 디지털 기술, 환경 규제, 노동·인권 기준, 안보 등 새로운 조건이 무역의 성패를 좌우한다.
이제 무역은 과거의 단순한 ‘시장-국경-상품’이라는 틀을 넘어 ‘정치-안보-기술-가치’가 얽힌 새로운 장으로 옮겨갔다.
이 책은 무역과 산업정책, 정치와 안보가 얽힌 ‘조건부 자유무역’ 시대의 본질을 꿰뚫어 보여주는 새로운 국제통상 전략서다. 격변하는 통상 환경 속에서 정부, 기업, 학계가 어떤 원리로 세계 무역이 재편되고 있는지 이해하고, 변화된 WTO·FTA의 활용법과 생존 전략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다.
4대 강국별 산업 정책과 통상 정책 심층 분석
: ‘시장’이 아니라 ‘정부’가 경제를 움직인다
《조건부 자유무역 시대》는 미국·EU·중국·인도라는 4대 강국의 산업정책과 통상정책의 변화를 심도 깊게 분석한다.
우선 미국은 CHIPS법,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등을 통한 대규모 보조금을 활용하여 반도체, 전기차, 청정에너지 등 전략 산업에서 자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을 가속화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2기가 강조하는 관세 부과 정책은 보조금과 수단적으로는 다르지만 결국 자국 산업 보호와 육성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지향한다.”
EU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 ‘디지털 서비스법(DSA)’ 등 규제와 가치 중심의 통상정책을 내세운다. “디지털 시장법, 디지털 서비스법, 인공지능법 등을 통해 디지털 경제 활성화와 플랫폼 규제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중국 제조 2025’, ‘혁신주도 산업전략(IDDS)’, ‘이중 순환 정책’을 통해 첨단 제조업 육성 및 내수 시장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며, 사이버 안보와 데이터 통제 등 디지털 통상규제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중요 데이터’, ‘핵심 데이터’, ‘개인정보’ 등을 구분하고, 이에 대한 해외 반출을 규제한다.”
인도는 전통적 보호무역 노선을 유지하면서도 ‘자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수입 규제와 수출 촉진 정책을 병행하며 성장 중이다.
이들 강대국은 WTO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이미 각자 고유한 산업·통상 전략을 적극 구사하는 ‘국가 주도형 경제’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국제무역에서 관세율보다 보조금·규제·안보·기술 기준이 더 중요한 시대다. 이 책은 오늘날 무역정책을 움직이는 각국의 정치·경제적 계산과 그 흐름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국제통상 전략 지도’라고도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이후의 WTO와 FTA 활용법
: 여전히 중요한 다자 및 지역 협력의 재구성
비록 WTO 체제는 위기에 처했지만 여전히 중요한 국제 플랫폼으로서의 가치도 강조된다.
《조건부 자유무역 시대》는 WTO와 FTA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WTO에서는 디지털 무역, 환경 무역, 새로운 보조금 규율 등의 주제를 중심으로 소다자 협력(‘클럽형’ 협정)이 활발해지고 있으며, 디지털 서비스·녹색 무역·플라스틱 오염 대응 등 다양한 포럼이 형성되고 있다. “무역 및 환경 지속가능성 구조적 논의(TESSD)”, “플라스틱 오염에 관한 대화(DPP)” 등이 그 사례다.
FTA의 경우 과거처럼 관세 철폐 중심의 협정이 아니라, 가치 중심 FTA, 규제 조화형 FTA, 투명성과 컴플라이언스 역량 확보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다. “FTA와 지역 통합 협정에 포함된 투자 조항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한국이 WTO 개혁 논의에 적극 참여하고, FTA 및 소다자 협력의 새로운 규범 형성에 기여함으로써 글로벌 규칙의 ‘룰 메이커’로 나아갈 여지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WTO·FTA라는 익숙한 도구들이 오늘날 어떤 전략적 의미를 갖는지, 무엇은 기대할 수 있고 무엇은 기대해서는 안 되는지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새로운 사용법을 제시한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정부는 “급변하는 국제통상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국익을 최우선에 둔 실용적 통상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규제 강화를 추진하는 EU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한-EU 간 상호인증 체제를 마련”하고, “규제 트래커 같은 시스템”으로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기업은 “각국의 통상규제를 면밀히 분석하고, 이를 준수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정글 같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대응력을 강화해야 한다.
학계는 국제통상법 연구를 WTO·FTA 법리를 넘어 “산업정책, 안보정책, 환경·노동·인권 규제” 등과 접목시킨 새로운 연구 영역으로 확장해야 한다. “국제경제법 학계는 다학제적 접근과 실무 중심 교육을 통해 학문적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정부-기업-학계가 유기적으로 대응할 때만이 한국은 새로운 무역 질서의 생존자로 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