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시, 칼 폴라니
와카모리 미도리
김영주
2017-02-28
308
145*220 mm
979-11-85585-32-1 (03300)
17,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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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가장 중요한 사회과학자 칼 폴라니,
그의 유령이 고장난 자본주의로 황폐화된 우리 삶 앞에 다시 나타났다
세계경제는 지금 왜 그를 주목하는가?

 

칼 폴라니의 삶과 극단의 시대로 불린 당대의 풍경,
폴라니 사상의 정수를 담아낸 ‘처음 읽는 칼 폴라니’

지금 칼 폴라니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폴라니의 대표작 『거대한 전환』이 출간된 지 7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는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케인스, 슘페터, 베버와 함께 20세기 가장 중요한 사회과학자로 꼽혔던 폴라니는 왜 그의 세기에서 잊혔을까? 그리고 왜 이제야 그의 사상이 세계 각국의 수장들과 글로벌 기업 엘리트들의 시급한 논제가 되었을까?

폴라니는 ‘좋은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할 시장경제가 거꾸로 사회보다 우선시된 것이 보통 사람들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20세기 초의 비극을 불러왔다고 설명한다. 19세기 산업혁명 당시 대량생산을 위해 인간의 노동력을 상품화한 것이 그 시작이었고 그때 이후로 ‘경제적 자유’는 줄곧 ‘인간 사회’보다 우위에 있었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거대한 전환’이다. 문제는 오늘날의 정치경제적 상황도 유사하다는 점이다. 산업혁명 이후 이어진 20세기 대공황과 파시즘, 세계대전의 비극이 오늘날 세계경제의 위기와 보통 사람들의 황폐화된 삶으로 재현되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경제적 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로 얼굴만 바꾸었을 뿐 시장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무력화하고, 화폐가 우리 삶을 지배하도록 직간접적으로 종용하며, 광범위한 국제분쟁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대량 실업과 인간 노동의 근원적 변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것도 폴라니가 일찍이 분석했던 19세기 산업혁명과 인간 노동력의 상품화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 다시, 칼 폴라니』는 폴라니의 삶과 ‘극단의 시대’로 불린 당대의 풍경 그리고 폴라니 사상의 정수를 간추려 담아낸 책이다. 소화하기 까다로운 책으로 정평이 난 『거대한 전환』 등 저서들과 그의 사상을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동시대 다른 사상가들과의 맥락 속에서 폭넓게 조망함으로써 입문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케인스, 슘페터, 베버, 오언, 하이에크 등 동시대 사회과학자와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어떤 면에서 궤를 같이 하고 어떤 지점에서 멀어지는지를 살펴보며 20세기 사회와 경제의 지형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폴라니의 사상은 정치적 좌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비판하면서도 마르크스주의에는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폴라니가 왜 마르크스주의와 서구 유럽의 전통적 기독교 사회관의 한계를 지적했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떻게 ‘좋은 사회’와 ‘인간의 자유’를 향한 독자적 사유를 구축해나갔는지를 추적한다.

 

폴라니가 묘파했던 70년 전의 파국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세계금융위기로 돌아왔다

우리 시대 자본주의의 폐해로 인한 고통은 과연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 연원은 오래되지 않았다. 폴라니는 18세기 후반 자본주의(『거대한 전환』의 용어로는 ‘시장사회’)가 탄생하고 힘을 얻은 배경에 ‘빈곤자의 구제에 대한 논쟁’과 ‘산업혁명으로 인한 인간 노동력의 상품화’가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당시 영국에서는 스피넘랜드 제도를 통해 실업자와 저임금 노동자에게 임금보조 수당을 지급했는데, 이 제도에 대해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의 매몰찬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자연도태설을 사회에 적용시켰고 세계 인구는 식량의 많고 적음에 따라 조정되는 것이 당연한 논리라며 ‘빈민’을 노동하게 만드는 것은 굶주림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임금보조 수당이 오히려 빈민을 양산한다는 그들의 주장이 여론을 형성하고 있는 사이,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 수력방적기와 증기기관이 발명되었지만, 상업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했다. 상품을 대량생산하지 않으면 고가의 정교한 기계를 사용하는 데 리스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원재료와 인간의 노동력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했고, 사고팔 수 없는 인간의 노동력은 상품화되었다. 시장사회로의 대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기계 사용을 위한 결정적인 조건은 사회의 자연적 실재와 인간적 실재, 다시 말해 자연과 노동이라는 생산요소를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상품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또한 사회 구성원의 행동 동기가 생존 동기에서 이득 동기로 바뀌어야 하고, 나아가 모든 소득이 판매에서 발생해야 한다. 요컨대 기계를 생산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시장사회가 만들어져야만 한다. 상업사회에서 기계를 생산에 사용한 산업혁명은 전혀 새로운 체제를 요구했다. 바로 재화의 생산과 분배의 질서가 가격의 자기조정 작용에 위임되는 ‘자기조정적 시장self-regulating market’이었다.”(본문에서)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이 꿈꾸는 자기조정적 시장의 완성, 즉 시장유토피아는 국제금본위제로 발현된다. 국제금본위제에는 각국의 시장을 국가의 권한에서 독립시키고, 국경 없는 세계무역을 통해 전 인류를 자기조정적 시장 기반으로 조직하려는 구상이 포함되어 있었다. 각국 국민의 삶을 황폐화시킬 수밖에 없는 국제금본위제를 비롯한 경제적 자유주의의 유토피아적 시도는 국민을 위한 경제, 사회 정책을 요구하는 민주주의 제도와 격렬한 충돌을 일으켰다. 폴라니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 이러한 시장사회의 위기에서 파시즘의 근원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기조정적 시장체제를 구축하려는 시도와 그 파탄으로부터 대공황과 세계대전이라는 20세기의 파괴적 귀결을 읽어낸다.

놀라운 점은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현대 시장사회의 위기가 폴라니가 분석했던 시대와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이다. 경쟁적 시장경제를 추구한 신자유주의 국가들에서는 금융시장의 융해와 통화위기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1987년 세계적인 주가 대폭락(블랙 먼데이), 1997년 아시아 통화위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2009년 그리스 채무 위기이다. 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시장경제의 보호를 위해 공적 자금을 탕진하는 사이에 시장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국민이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공적 지출은 대규모로 삭감되고 민영화가 추진되었다. 효과적인 금융, 재정 정책을 추진할 여지가 줄어들면서 민주주의의 정당성과 효율성도 더욱 손상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이제 보통 사람들을 대변하는 정당과 정치는 더는 명확한 처방을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 분쟁 역시 세계적으로 더욱 격화되었다. 걸프 전쟁, 아프가니스탄 분쟁, 이라크 전쟁, ‘이슬람국가IS’의 출현까지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우크라이나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국제 평화는 끊임없이 와해되고 있다. 종합해보면 폴라니의 시대와 현대의 상황은 경제 위기가 정치의 위기와 국제 평화의 해체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중첩된다.

 

고대 그리스에서 찾은 폴라니의 해법이
한국의 ‘사회적 경제’를 만들어나가다

그렇다면 폴라니의 해법은 무엇일까? 그에 따르면 경제적 자유주의가 완전한 경제를 가정한다면 마르크스주의 역시 완전한 사회를 가정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폴라니는 경제 영역과 정치 영역의 분할을 상정하는 이들의 사고방식이 자본주의 경제 영역을 찬미하든 부정하든 결국 경제결정론적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경제가 사회 안에서, 사회를 위해 기능하던’ 고대 그리스의 경제생활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시장사회의 병리를 이해하는 데 대단히 현대적인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폴라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를 인용하면서 아테네의 폴리스에는 ‘좋은 생활’이라는 목적이 존재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공공생활’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때 경제는 공공생활을 위한 수단으로서 ‘사회 속에 위치’하고 있었다. 시장과 교역, 화폐 제도를 창안한 그리스인들은 시장이 악용될 위험성을 알았기 때문에 시장을 철저히 공공생활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또한 민주제를 유지하기 위해 시민이 빈곤에 처하지 않도록 했다. 그것은 아테네가 도시국가로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으며, 그때 그리스 문명은 전성기를 경험했다.

결국 폴라니가 그린 세상은 인간을 사고팔 수 없는 사회이자, 경제가 인간의 공동체를 위해 존재하는 사회다. 오늘날 폴라니의 이러한 사회관은 이론적 이상 사회에 머무르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사회적 경제’의 이론적 기초를 다지는 일에 그의 사상이 가장 중요한 지적 원천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인구 1,000만의 거대 도시 서울에서 사회적 경제를 발전시켜 시장경제와 공공경제와의 조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점도 고무적이다.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는 한국에서의 사회적 경제 운동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함으로써 ‘서울 모델’을 구축하고 확산하는 작업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칼 폴라니의 사상은 우리 삶에 더욱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지금 다시 칼 폴라니를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