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예방 경제학
원승연, 강신욱, 김혜원, 허석균, 주상영, 박복영, 지만수, 김계환, 정세은, 이선화,
2025-08-20
240
135*210 mm
9791194880127
19,8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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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 선포와 탄핵 반대 세력의 결집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생각만큼 강고하지 않으며, 언제든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민주주의가 강건할 때, 경제학자들은 마치 일상에서 공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굳이 생각하지 않듯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하지만 민주적 제도가 흔들리고 정치적 갈등이 심화하고 과거의 질서에 균열이 생기면 제도, 정치, 정의와 같은 요소들이 다시 경제학의 범주로 들어온다.

《내란 예방 경제학》은 우리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필요한 경제적 처방에 관해 경제학자들이 고민한 결과물이다. 비상계엄 선포는 전 대통령의 시대착오적이고 무모한 일탈이라고 치부하더라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전개된 상황은 일회성 해프닝이 아니라 근저의 구조적 원인들이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저자들이 모여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하는 데 경제적 요인들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렇다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경제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의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하고자 한 결과가 이 책이다.

 

★★★★★★

 

경제적 요인들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했는가

 

최근의 정치적 극단화나 양극화를 단순히 경제 양극화의 결과로 생각하기 쉽지만, 한국의 경우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지난 10여 년 동안 소득 재분배 정책이 확장되면서 지표상으로는 가처분소득의 불평등이 완화되었기 때문이다. 1장에서 원승연(명지대학교 경영학부)은 재분배 정책에 대한 보수층의 반발과 반감이 정치적 극단화를 가져왔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2장에서 강신욱(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경제적 조건이 정치 성향에 미치는 영향을 데이터를 이용하여 분석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수도권 주민들은 분명 자신의 경제적 조건에 따른 정치 성향을 갖고 정당을 선택했다.

탄핵 과정에서 일부 청년층이 탄핵 반대 세력으로 결집한 현상은 많은 우려를 불러왔다. 3장에서 김혜원(한국교원대학교)은 지난 10여 년간 20대 남성의 보수화가 30대 남녀, 20대 여성과 달리 심해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특히 20대 남성은 소득 재분배를 선호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는 능력주의적 분배원리에 대한 그들의 강한 선호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4장에서 허석균(중앙대학교 경영학부)은 성장과 형평성이라는 대립하는 두 가치에 대해 다른 선호를 지닌 두 집단이 어떻게 정치사회적 입장을 선택하는지를 모형을 이용하여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경제적 불평등도에는 변화가 없더라도 성장이 둔화하면 두 집단 사이의 정치사회적 간극이 더 벌어지게 된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경제 환경은 계속될 것인가

 

5장에서 주상영(건국대학교 경제학과)은 인구구조 변화를 고려할 때 지금과 같은 수준의 잠재성장률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망한다. 이는 정치 성향의 양극화가 더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극단적인, 특히 극우 포퓰리즘은 우리만이 아니라 선진국과 신흥국을 가리지 않고 득세하고 있으며, 자유무역 합의를 내던지고 관세 전쟁과 보호무역주의로 치닫고 있다. 6장에서 박복영(경희대학교)은 이런 민주주의 위기와 개방적 무역질서의 위기가 사실은 같은 뿌리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반 세가가량의 세계화 과정에서 주변화된 집단을 제대로 포용하지 못한 것이 이런 위기를 낳았다는 것이다.

계엄을 옹호한 많은 사람은 중국에 의한 강한 반감에 기반하여 중국이 한국의 선거를 조작했다고 주장한다. 7장에서 지만수(한국금융연구원)는 이런 혐중 정서가 중국 경제에 대한 격관적 평가를 방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매번 빗나가지만 반복해서 나타나는 중국 경제 위기론이나 최근의 시진핑 실각설 등이 그런 예이다. 중요한 무역 상대국에 대한 잘못된 진단은 큰 경제적 비용을 치를 수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경제 전환의 방향

 

8장에서 김계환(산업연구원)은 적극적 산업정책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 경제가 저생산성 함정에 빠지고 산업구조가 정체된 것이 산업정책의 효과가 떨어졌기 때문이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산업정책의 원칙과 방향을 제시한다. 9장에서 정세은(충남대학교 경제학과)은 저성장 탈피를 위해 적극적 재정정책을 주문하고, 재정 보수주의를 극복하고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극우가 세력을 확장한 데에는 지역 경제의 침체가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미국의 러스트 벨트의 쇠퇴는 트럼프의 재집권을 가져왔고, 영국 공업지대의 쇠락은 브렉시트를 초래했다. 이런 점에서 지역경제의 활력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조건일 수 있다. 이선화(국회미래연구원)는 10장에서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새로운 접근을 제시한다. 11장에서 임일섭(예금보험공사)은 은행이 과도하게 안전성을 추구하도록 규제가 설계됨으로써 우리나라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에 집중하고 부동산 버블로 인한 자산 양극화를 초래했다고 주장하며 개선 방안을 제시한다.

 

 

민주주의의 근간, 중산층을 어떻게 복원시킬 것인가

 

부동산정책은 중산층 복원을 위해 매우 중요한 정책이지만, 또 가장 까다로운 정책 영역이기도 하다. 안정적 주거 확보와 자산 증식 욕망 사이에서 정책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12장에서 박성욱(한국금융연구원)은 안정적 주거를 확보하여 자산 불평등을 축소함으로써 중산층을 복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고령화 시대에는 안정적 노후 자금이 마련되어야 중산층에서 탈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데, 박창균(자본시장연구원)은 많은 가구의 금융자산이 은퇴 후 소비에 필요한 수준에 못 미친다며 이를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강제 연금인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의 개선방안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