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에 사표로 맞선 단 한 명의 공직자
계엄 1년, 그날의 진실과 윤석열을 말하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 추천★
“그가 사직했다는 기사를 보고 ‘역시 류혁답다’고 생각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라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자신의 직을 던졌다. 그는 대통령의 폭거에 사표로 저항한 유일한 공직자다. 류혁 에세이 《단 하나의 사표》에는 계엄 당일의 긴박하고 생생한 상황과, 추-윤 갈등에 휘말려 불거진 친윤이라는 오해를 넘어선 원칙주의자의 단단한 행보가 담겼다. 공대 출신 아웃사이더였지만 누구보다 합리적으로 수사하려고 했던 한 법조인의 가치관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책은 계엄 사태 1주년을 맞아 출간된다. 무너졌던 법치와 민주주의의 상흔 속에서 양심과 원칙의 가치를 되묻는 의미 있는 회고가 될 것이다.
류혁은 법무부 장관 주재 회의에서 “계엄과 관련된 일체의 지시나 명령은 이행할 생각이 없다”고 선언하고 즉시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행위를 ‘내란죄’로 규정하고 계엄을 ‘정신 착란’이라 비판했다. 류혁의 결단은 평화로운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평범한 시민의 상식에서 비롯되었다. 비정치적으로 살아오던 한 인간의 가장 정치적 선택이기도 했다. 류혁은 검사가 특권층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여기며 사건에만 집중했고, 그래서 가장 검사답게 살 수 있었다. 그는 정치 검사는 소수이며, 검찰이 사라져도 성실한 사람들이 역할을 해줄 것이라 믿는다.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은 법치와 양심을 따른 원칙주의자의 모습으로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전 대통령과 대비된다. 저자가 소개하는 검사 윤석열과의 일화는 한 권력자의 파멸을 미리 내다본 듯해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
12.3 계엄에 사표를 던진 유일한 공직자
법무부 감찰관의 ‘내란죄’ 선언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의 에세이 《단 하나의 사표》는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당일의 긴박한 회고로 시작한다. 계엄, 법무부로 모이라는 소집 명령, 박성재 법무부 장관 주재 회의와 류혁의 사직은 우리에게 그날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류혁은 법무부 장관에게 “계엄 관련 회의라면 저는 참석하지 않겠습니다. 계엄과 관련된 일체의 지시나 명령은 이행할 생각이 없습니다”라고 한 뒤 회의실을 나가 사직서를 썼다. 분을 이기지 못한 그는 다시 회의실 문을 벌컥 열고 법무부 장관에게 일갈한다. 이 결기 충천한 일화는 계엄의 공포에 맞선 한 사람의 용기, 그날 밤 작성된 단 하나의 사표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이바지했는지 잘 보여준다. 법무부를 빠져나온 그는 “계엄은 정신 착란”이며 윤석열 전 대통령의 행위는 “내란죄”라고 규정하였다(12월 4일 몇몇 언론은 류혁 감찰관의 이런 발언을 인용하여 보도했다. 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한 최초의 보도들로 보인다).
검사로 살아온 류혁은 자신이 사표를 던진 이유를 정의감이라 말하지 않는다. 도리어 “검사스러운 모습에 실망한 국민들이 참 많은 듯하다”며 자조하기도 한다. 그의 결단은 나쁜 사람이 될 수 없었던 한 평범한 사람의 양심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취미 부자로 살아왔으며 검사실 직원들과 지청에 애착이 깊은 비정치적 성향의 고위 공직자다. 류혁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평화로운 일상이다. 그는 프라모델 제작, 천체관측, 철인3종경기에 빠져 산다. 아내에 대한 사랑도 지극하다. 이것들을 단숨에 파괴한 것이 바로 비상계엄이었다. 류혁의 분노는 여기서 기인하였고, 우리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한 이유와 다르지 않다. 계엄의 밤, 비정치적으로 살던 그는 사표로써 가장 정치적인 선택을 했다. 계엄 후 1년. 탄핵이 되고 정권이 바뀌었으며 우리의 일상은 회복되고 있다. 그러나 상흔은 법치에 대한 불신과 여야의 극한 대립, 국론의 분열을 남겼다. 검찰청 폐지와 사법부 신뢰 여부가 화두인 요즘, 계엄 한가운데 있었던 인물의 이야기는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친윤이라는 오명을 넘어선 원칙주의자,
그리고 윤석열에 관하여
감찰관 류혁은 문재인 정부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에 반대하여 한때 ‘친윤’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는 이 사안에 대해서도 여전히 “절차적인 면이나 실체적인 면에서 좀 더 신중하고 차분하게 진행했어야 한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복잡다단했던 감찰관으로서의 행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원칙이다. 그는 이때의 행동 또한 계엄을 내란이자 정신 착란이라 규탄하는 자신의 행동과 모순되지 않는다 말한다. 두 행동 모두 공직의 원칙을 따른 데서 나온 결과라는 것이다. 그는 감찰관 일을 하며 절차상 트집 잡힐 일을 남기려 하지 않았다. 검사 생활이 세세히 기록된 이 책에서 그 원칙과 행보를 만날 수 있다. 그는 빵으로서의 학문으로 법을 대했지만, 사건 처리에서 누구보다 절차와 과정을 중시했다.
‘검사 윤석열’ 편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첫 만남과 법무 기록에 남은 그의 행적이 서술되어 있다. 검사 윤석열의 오만과 안일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그의 몰락을 미리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저자의 주장은 단순한 정치적 비난이 아닌, 직업인으로서의 관찰과 법리적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한 권력자의 파멸에 대한 검찰 내부자의 시각을 따라가다 보면 정치적 진영 논리를 넘어 오직 법치와 양심만을 따랐던 원칙주의자가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렇게 원칙주의자 류혁은 국가적 위기 앞에서 원칙대로 용기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었다. 기본에 충실한 그 철저한 직업정신은 모든 직업인에게 큰 울림을 줄 것이다.
공대 출신 아웃사이더
정치 검사의 대척점에서 가장 검사답게
류혁 전 감찰관은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검사가 되었다. 책에서 그는 존경하는 과학자 이야기를 할 때 특히 더 신이 나 있다. 그는 조르다노 브루노, 아인슈타인, 뉴턴에 대해 말하고, 《코스모스》를 백여 권쯤 산 것 같다고 썼다. 그는 마지막에 치른 사법시험 결과를 기다리며 삼성 반도체에 엔지니어로 취업한 적이 있는 진짜 공대생이다. 과학적 사고, 공학에 대한 이해는 그에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태도를 심어주었다. 사건을 대할 때의 집요함과 철저한 합리성은 여기에 기인한다. 그렇게 그는 권력과 타협하지 않을 수 있었고, 원칙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며 양심을 지킬 수 있었다.
취미를 이야기 하는 부분은 과학 이야기보다 분량도 많고 에피소드도 다양하다 프라모델을 만들고 망원경을 직접 제작하며 철인3종을 완주하고 눈물을 흘리는 그는 언뜻 봐도 주류와는 거리가 멀다. 무던히도 이어온 취미 생활과 아웃사이더 기질에 대한 에피소드는 ‘검사도 사람이다’라는 당연한 명제를 상기시킨다. 류혁은 사회와 동떨어진 채 살아가게 되는 검사 생활에 의문을 제기하며 검사란 마땅히 특권층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스크림을 들고 잠바 차림으로 다니던 그를 검사라고 알아본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한다. 그는 요즘도 캡모자에 기능성 운동복 차림이다. 마라톤 대회에서 진행 요원으로 발견되기도 한다.
평범한 사람은 대개 성실하게 밥벌이를 위해 애쓴다. 류혁도 그랬다. 직업윤리와 양심에 따라 일했다. 누구 하나 억울함이 없도록 헌신적으로 수사했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원칙적으로 수사했다, 동료들을 존중했고 함께 어울리기를 즐겼다. 그렇게 그는 가장 검사답게 살았다. 검찰 불신이 팽배한 요즘이지만 류혁은 믿는다. 정치 검사는 소수라고, 검찰이 사라지더라도 그 역할을 해줄 수많은 성실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