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차 저널리스트가 스스로 현장이 되어 써 내려간‘피해의 연대기’
■ 도서 소개
이 책은 24년 차 저널리스트 곽아람이 기록한, 피해자 곽아람의 자기증명과 생존의 과정을 담고 있다. 7년 전 어느 날 자신이 쓴 기사와 회사 업무로 진행한 팟캐스트를 통해 일면식도 없는 가해자의 스토킹범죄 타깃이 된 저자는, 2021년 첫 번째 고소 이후 6년간 가해자를 일곱 번 고소하며 수사와 재판을 통해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고 있다. 징역형을 선고받고 현재도 수감 중인 가해자는 형기 초반 감옥에서도 편지 등으로 스토킹을 지속했고, 이를 제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미비해 저자는 1년 5개월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마저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는 동안에도 그가 무너지지 않고 끝끝내 버틴 까닭은 “기자인 나도 이렇게 힘든데 다른 피해자들은 대체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걸까”하는 처절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시스템이 부정한 당사자성의 획득을 위해,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을 이어갈 모든 ‘피해자’들을 위해 기록을 시작한다. 저자는 스스로 ‘현장’이 되어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스토킹범죄의 공포와 피해자를 배제하여 절망케 하는 형사사법 시스템의 민낯을 낱낱이 고발한다. 사건의 외부가 아니라 한가운데 선 피해자의 시각으로 취재를 이어가며, 피해자로서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통해 우리의 사법 정의를 저울 위에 올린다.
피해자의 감각으로 포착하고, 기자의 펜 끝으로 벼린 이 책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피해자의 관점으로 구성한 서사’와 연대임을 웅변한다. 국가 시스템이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실패한 현실에서, 기댈 곳 없는 피해자가 마지막 희망을 걸 곳은 언론밖에 없다는 사실을 검찰이 공소장 오류를 저지르고도 인정하지 않을 때 언론에 제보해 구제받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2026년 5월 14일 가해자를 단죄하기 위한 또 하나의 재판을 앞두고 있는 저자는 출간일인 2026년 5월 8일 이 책을 재판부와 검찰에 국가의 실패로 인한 자신의 고통을 입증할 참고서류로 제출했다.
■ 차례
이 책에 대하여
1 노벨문학상 시상식 날 울다
2 특별한 피해자
3 피해자는 당사자가 아니라는 말
4 수치심과 분노
5 변호사들
6 판사들
7 검사들
8 경찰관들
9 이해할 수 없는 것들
10 연대
11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12 눈물의 여러 빛깔
13 취재가 시작되자
에필로그: 끝나지 않은 이야기
감사의 말
부록: 이 책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형사사건 법률용어
사건일지
주
참고문헌
곽아람
어느 날 갑자기 기자에서 스토킹 피해자가 되었다. 세계가 붕괴되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일상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현장을 취재하고 기록하는 것밖에 없었다. 이 책은 가해자가 7년간 저지른 범행을 단죄하기 위한 6년간의 소송을 토대로 한 르포르타주다.
2003년 기자 생활을 시작해 현재 〈조선일보〉 문화부 출판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에서 미술사 석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미술경영협동과정 박사과정 수료 후 뉴욕대학교 IFA(The Institute of Fine Arts) 방문 연구원으로 있었다. 지은 책으로《나의 다정한 AI》《나와 그녀들의 도시》《나의 뉴욕 수업》《구내식당: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가고》《쓰는 직업》《공부의 위로》《매 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미술 출장》《어릴 적 그 책》《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그림이 그녀에게》 등이 있다.
범죄 피해자 지원 단체에서는 나 같은 사람을 ‘자원이 많은 피해자(resourceful victim)’라 부른다. 지적 능력이든, 경제력이든, 사회적 영향력이든, 도움을 줄 사람들이든, 뭐가 되었든 힘을 가진 피해자. 가해자에 대한 형사고소가 두 번을 넘어 세 번이 되고, 네 번이 되고, 다섯 번이 되고, 여섯 번이 되고, 심지어 민사소송까지 진행하는 걸 보고 누군가는 나를 ‘탁월한 피해자’라 불렀다. 맞다. 나는 탁월한 피해자다. 사건을 겪으며 수천 번 생각했다. 나도 이렇게 힘든데 다른 피해자들은 대체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걸까.
_28쪽, ‘노벨문학상 시상식 날 울다’
어느 식사 자리에서 사건을 겪으며 고생한 이야기를 털어놓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보이자 그 자리에 있던 검사가 “지금 울지 마시고 법정에서 우세요”라고 했다. “이런 말, 피해자 입장에선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법정에서 증언하다 피해자가 울면 저희들은 속으로 ‘아, 다행이다’라고 생각해요. 피해자답게 보이니까 판사들도 형량을 올려줄 것 같거든요.”
_37쪽, ‘특별한 피해자’
“검사와 판사는 조금 적나라하게 말하면 진짜 내가 잘 보여야 되는 사람이거든요. 경찰도 검사도 판사도 공무원의 한 사람이에요. 사람이다 보니 ‘내 사건만 더 깊이 있게 봐주세요’ 식의 뉘앙스를 풍기면 부담스러워하거나 오히려 정나미가 떨어져요. 오히려 딱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딱 갖다 주고 ‘이거 해주세요’ 하는 사건 당사자들이 훨씬 고맙거나 속된 표현으로 더 예뻐서 더 챙겨주는 그런 효과가 발생해요. (…) 어떻게 하면 나를 이쁘게 볼까. 여기서 ‘이쁘게’가 물리적인 ‘이쁘게’가 아니에요. 아시죠? 저는 항상 일을 그렇게 접근하거든요. 그리고 그들이 내 편 안 들어준다고 떼쓸 생각도 없어요. 내가 떼 써봤자 나 안 이쁘게 보거든요. 내가 어떻게 하면 이분들 눈에 더 잘 들어서 이분들이 정말 내 편이 되는 판결을 해줄까 처리를 해줄까 그것만 생각하면 돼요.”
_41쪽, ‘특별한 피해자’
“제게는 목숨이 걸린 일이에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믿을 수 없는 말이 돌아왔다.
“회사가 법률비용을 부담하는 것과, 곽아람 씨가 자비로 부담하는 것이 곽아람 씨의 안전에 무슨 차이가 있죠? 곽아람 씨가 소송을 계속하는 바람에 가해자를 자극해서 더 위험해지는 게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_51쪽, ‘특별한 피해자’
르포르타주(reportage)…. 그게 내게 주어진 답이었다. 나는 피해자이자 기자로서 이 자리에 있을 것이었다. 피해자를 겁박하고 억누르는 형사사법 시스템의 모든 문제를 낱낱이 취재할 것이었다. 피해자다움에 대한 강요와 2차 가해에 대해서도 모조리 밝혀낼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내가 취재 중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할 것이었다. 나는 잠입취재 중이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그나마 통쾌했다.
_54쪽, ‘특별한 피해자’
나는 피해자지만, 사건의 당사자는 아니었다. 법적으로 그랬다. 내가 수사기관에, 법원에, 무언가를 요구하려 하면 다들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곤란합니다. 피해자는 사건의 당사자가 아닙니다.”
_60쪽, ‘피해자는 당사자가 아니라는 말’
블랙스톤의 말은 분명 아름답지만, 중대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면 열 명 이상의 피해자가 생겨날 수 있을 텐데, 그들의 눈물은 누가 닦아줄 것인가? 블랙스톤이 살았던 18세기엔 과학수사의 미발달로 무고한 죄인이 많았겠지만 곳곳에 CCTV가 널려 있고, DNA 감정과 디지털 포렌식이 가능한 현대에도 여전히 그의 말이 유효할까. 무죄 추정의 원칙은 분명 중요하지만, 법원이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경직된 자세로 이 원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한다면 오판(誤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핑계가 아닐까.
_69~70쪽, ‘피해자는 당사자가 아니라는 말’
당사자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사건의 주체로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는 주변부로 밀려나고 약자라 무시당하며 자주 잊힌다. 형사사법 시스템에서 가장 지위가 낮은 이는 피해자다. 법정에서 판사(判事)와 검사(檢事)는 ‘님’이라고 불린다. 가해자는 피고인(被告人)이라 불리며 사람(人) 대접을 받는다. 피해자(被害者)에겐 ‘놈 자(者)’가 붙는다. 증인(證人)으로 소환될 때만 비로소 사람 자격을 얻는다.
_71쪽, ‘피해자는 당사자가 아니라는 말’
성폭력 피해자는 죄인이 아니다. 그런데 왜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껴야 하지? 자신이 등장하는 음란물을 접한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으면 가해자의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규정하는 법조문이 피해자다움에 대한 강요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아니면 무엇인가. (…) 가해자의 음란물을 읽은 나를 지배하는 주된 감정은 분노와 불쾌감이었지만 법의 언어는 외형상으로는 성폭력 피해자의 분노와 불쾌감을 죄의 성립요건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_84쪽, ‘수치심과 분노’
당시 여당은 재판소원제 도입을 검토 중이었다. 만일 그렇게 되면 현 3심제가 4심제로 바뀌는 셈인데 그 얘기가 나온 후부터 나는 불안해 미칠 지경이었다.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지니 좋을 것 같은가? 아니다. 재판이 길어지면 고통스럽다. 재판이 한 번 더 늘어나면 이는 고스란히 소송 관계인의 법률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변호사들이야 돈을 더 많이 벌게 돼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피고인의 형이 확정돼야 사건을 떨쳐내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피해자 입장에선 불안과 고통의 시간만 연장되고 돈은 돈대로 더 들어가는 셈이다.
_98쪽, ‘수치심과 분노’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한 자의 인권이 침해당한 자의 인권과 동등하게 취급받는 것은 옳은가. 그러면 형벌이란 대체 왜 필요한가.
_101쪽, ‘수치심과 분노’
법정에 선 피고인이 검찰이 제출한 여러 증거 중 피해자 진술서를 부동의하면 피해자는 법정에 나와 증인신문을 통해 진술서가 본인의 의사에 의한 것이고, 본인이 진술한 내용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진정성립(眞正成立)’ 증명을 해야 한다. 2차 사건 1심에서 피고인이 증거를 부동의해 증인신문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업무 시간에 불려 나와 피고인의 거짓말로 인한 황당한 질문들에 답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화가 났다.
_110쪽, ‘변호사들’
수많은 피해자들이 지원 단체에서 저런 변호사를 만날 것이다. 변호사가 자신을 홀대해도, 잘못된 것인 줄도 모르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피해자들도 많을 것이다….
_120쪽, ‘변호사들’
문제는 가해자인 피고인들이 이 원칙을 피해자를 괴롭히기 위해 악용한다는 데 있다. 피고인이 방어권을 이용해 명백한 증거를 의도적으로 부인하고 피해자를 법정으로 불러내 낯선 이들 앞에서 피해 사실을 상기시키고 다시 진술하게 하며, 때론 피고인 변호사로부터 모욕적인 질문과 추궁을 당하게 하는 등 2차 가해를 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가해자 역시 그런 부류였다. 나를 법정에 불러내 공격을 가하고 싶다는 욕망을 편지 등을 통해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그런데도 법원이 피고인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피해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 옳은가?
_145쪽, ‘판사들’
피고인 방어권이라는 정의를 수호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재판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피고인이 열람할 수 있는 건 옳았다. 반면 피해자는 어디까지나 ‘증거’이기 때문에 증거의 오염을 막기 위해 최근까지도 피해자의 재판 자료 열람은 공소장 등 극히 일부를 빼고는 제한되었다. 그 공소장마저도 피고인에겐 부본을 부쳐 주었지만 피해자는 직접 법원에 가서 복사해야 하기 때문에, 사건 관한 법원과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나 같은 피해자는 열람하기가 쉽지 않았다. 피해자는 항상 증거능력을 의심받으며 자신이 무결하다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하는 존재였다. 나는 피고인과 일면식도 없는데 우연히 피고인 눈에 띄어 교통사고 당하듯 운 나쁘게 스토킹을 당한 ‘완벽한 피해자’였지만 그런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_167~168쪽, ‘판사들’
피해자의 탄원서는 피해자가 피고인의 엄벌을 요청하며 재판부에 제출하는 서류다. 피해자가 증인신문 때 법정에 서는 것 외에 재판부를 향해 직접 발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탄원서를 피고인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열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몰랐다. 아마 법조인 아닌 대부분의 이들은 이 사실을 모를 것이다. (…) 개인에게 쓴 편지도 타인에게 함부로 보라고 하지 않는데, 피해자가 법원 대상으로 제출한 공문서를 다른 타인도 아닌 가해자에게 쉽게 넘겨준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가? 게다가 그 탄원서가 가해자를 엄벌해 달라는 내용이라면?
_168쪽, ‘판사들’
재판부에 전화를 걸어 탄원서 내용 때문에 협박당하고 있으니 앞으로 내 탄원서를 동의 없이 피고인과 공유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답했다. “그건 판사님이 결정하실 일이니 일단 문서를 작성해서 보내세요. 결재를 올려 볼게요.”
_170쪽, ‘판사들’
세상은 나의 상식과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지나치게 비대해진 검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한다. 그랬더니 경찰에 과부하가 걸린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피해자들이 본다…. 이 상황은 정의로운가?
_237쪽, ‘검사들’
아마도 내가 피해자로서 대하는 경찰이 일반인들이 경험하는 날것의 경찰일 것이다. 그간 내가 알던 경찰은 얼마나 포장되어 있었던 걸까. 아니, 내가 기자로서 대하고 취재하고 잘 안다 생각했던 모든 세계가 얼마나 가상의 것이었던가. 나는 얼마나 오만했던가….
_271쪽, ‘경찰관들’
단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기자에겐 턱없이 낮은 문턱이 피해자에겐 지나치게 높다면, 이것은 정의가 아니다.
_272쪽, ‘경찰관들’
“저도 알아요.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것이 형사재판의 대원칙이라는 것. 아름다운 이야기죠. 저도 피해자가 되기 전엔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피고인 방어권과 피해자 안전이 충돌한다면, 그때도 피고인 방어권이 지켜져야만 하나요? 그 대원칙이 성립하려면, 그러니까 국가가 사적 보복을 막기 위해 형벌권을 행사하려면 피해자를 완벽하게 보호해 줘야죠.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공익에 피해자의 안전은 속하지 않는 거예요? 피해자가 신고한 후 더 신경을 안 쓰도록 보호해 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잖아요. 왜 신고 후 입증 책임까지 피해자에게 지우나요? 그러면 수사기관은 왜 존재하는 건가요? 그러면서 왜 피해자더러 당사자가 아니니 빠져 있으라는 건가요?”
_286~287쪽,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스토킹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피해 경험 이후 변화된 지점’을 물은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해자의 30.5%가 ‘나와 비슷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관심이 생겼다’고 답했다. 아마도 피해자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피해자밖에 없다는 사실을 갖은 환난을 겪으며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_311~312쪽, ‘연대’
피해자는 공신력이 없다. 단지 피해자이기 때문에, 감정적인 존재라 여겨져서, 아무리 법리검토를 거쳐 논리적인 의견서를 재판부와 검찰에 제출해도, 검찰이 오류를 범한 것이 엄연한 팩트인데도 들여다보지조차 않는다.
_406쪽, ‘취재가 시작되자’
그 감각, 나도 이렇게 힘든데 기자 아닌 다른 사람들은 어떤 고통을 겪고 있을까, 가늠해 보는 마음. 그것이 바로 기자 정신의 밑바탕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취재에선 나는 기자가 아니라 일개 피해자였지만, 취재가 시작되자, 이번에도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리고 나의 취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_410쪽, ‘취재가 시작되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더 나은 이야기’는 피해자의 관점으로 구성한 서사다. 어떤 사안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 전에 매번 곱씹었다. 내가 기자가 아니라면, 내게 법적 지식이 없다면, 내가 훨씬 더 어리고 힘이 없다면, 이런 상황을 용납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_422쪽, ‘에필로그’
나는 그녀를 기자로 소개받았으나 그녀는 자신을 스토킹범죄의 피해자라고 소개했다. 7년간 이어진 스토킹범죄 피해자라는 이름표가 생각보다 깊게 삶에 파고들어 그녀의 평범한 일상을 무섭게 갉아먹었을지라도, 피해자는 형사사법 시스템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서럽게 배척당했을지라도, 우체국 마감 시간 전까지 의견서를 들고 달리는 뺨에 눈물 한 방울이 맺혔을지라도 나는 그녀의 뼈아픈 법정 투쟁기인 이 책을 읽고 확신했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그녀는 ‘탁월한 피해자’라는 것을. 이 책은 스토킹범죄가 기자인 피해자를 만나 르포르타주(reportage)로 기록되는 과정을 담았다. 깊은 절망으로 좌절했을지언정 무너지지 않은 과정을 글이라는 도구로, 피맺힌 절규로 엮어내었다. 지금도 피해자로서 달리고 있는 그녀의 옆에서 함께 뛰어 줄 여러분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대한민국의 피해자들이 더 이상 외롭지 않도록.
_김세희(변호사, 전 성폭력 전담 검사)
가해자는 어떤 말을 해도 받아들여지는 재판이라는 무대, 피해자는 에티켓을 지키며 바라만 봐야 하는 관객일 뿐이다. 사법체계는 피해자를 다가오는 순간 피하고 싶은 미세먼지 같은 존재로 대한다. 사회는 가해자와 멀어질 거라 피해자를 위로하지만 우리는 아무런 방어막 없이 매일 가해자들과 나란히 걷고 있다.
저자 곽아람 기자와의 인연은 내 피해의 시간 속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우리도 이런데, 다른 피해자들은 어떻게 견딜까” 입버릇처럼 말하는 그는 내가 본 가장 탁월하고 멋진 피해자였고, 이 사실은 변치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라도 그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이 그의 한숨과 입술의 무게를 덜어주길 바란다. 우리 사회가 더는 피해자의 우려를 착각이라 재단하지 않길 바란다. 오해하지 마라. 우리는 가해자와 싸우고 있지 않다. 피해를 방관한 사회와 시스템을 향해 다른 이들 몫까지 돌을 던질 뿐이다. 어디에서도 온전히 설명받지 못했던 피해자로서의 고통을 명확하게 짚어주는 이 책은, 우리 사회의 지독한 민낯을 비추는 거울이자 피해자들의 마음을 정확히 대변하는 완벽한 해설지이다.
_김진주(‘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저자)
‘훗날을 도모하며 오늘은 모조리 기록하자.’ N번방의 실체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나 역시 같은 절망 앞에 섰다. 단 한 건의 보도도 없는 공백 속에서 가해자들은 활개쳤다. 나는 저자처럼 어떤 언론사에 속한 기자가 아니었고 대학생일 뿐이었다. 무력감이 온몸을 뒤덮었지만, 나는 기록으로 그들에 맞섰다.
저자도 그 절망을 알 것이다. 세상이 등을 돌린 자리에서 그 역시 기록을 택했다. 절망 속에서 버티고 있던 사람들이 저자 곁으로 모여들었다. ‘탁월한 피해자’란 결국 그런 사람이다. 제도가 외면할 때 기록으로 연대를 만들어낸, 오늘을 살아내는 사람이다. 이 책이 만들어낸 연대가 독자들을 통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_원은지(추적단불꽃 대표, 프리랜서 기자· 활동가,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공저)
《탁월한 피해자》는 한 사람의 피해를 기록한 책이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얼굴을 비추는 책이다. 피해는 어느 날 우연히 떨어진 불운으로 끝나지 않는다. 설명해야 하고, 입증해야 하고, 아무 잘못 없는 사람이 제 삶 전체를 걸고 버텨내야 하는 지난한 시간이 된다. 저자는 자신을 ‘탁월한 피해자’라 부르지만, 그것은 특별히 강해서 붙인 이름이 아니라, 자원이 있고 언어가 있고 싸울 힘이 있는 사람조차 이렇게까지 처절해야 한다면, 그렇지 못한 수많은 피해자들은 얼마나 쉽게 침묵 속으로 밀려나는가를 드러내는 고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위로의 마음으로, 그러나 동시에 가열찬 연대의 마음으로 권하고 싶다. 피해자에게 필요한 것은 섣부른 훈계도, 멀찍이 선 동정도 아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말해주는 일, 당신이 겪은 일을 끝까지 믿고 듣겠다고 약속하는 일, 그리고 다시는 누구도 그런 싸움을 혼자 치르지 않게 하겠다고 함께 말하는 일이다. 연대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한 사람의 고통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 책은 뜨겁고도 아프게 가르쳐 준다.
_허민숙(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이처럼 친밀한 살인자》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