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독일 통일 이후, 누구도 말하지 않던 동독의 기억을 추적한 르포르타주. ‘역사상 가장 완성된 감시국가’ 동독의 비밀경찰 슈타지의 실체를 파헤친다. 시민 6.5명마다 한 명의 정보원이 있을 정도로 거대한 감옥과 같던 사회에서 감시당했던 피해자들과 체제의 부속품이었던 가해자들의 목소리가 교차한다.
국가가 개인의 삶을 어디까지 통제할 수 있는가, 기억되지 않은 상처는 어떻게 현재를 지배하는가?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에서 국제법·인권법 변호사로 재직했던 저자 애나 펀더(Anna Funder)는 장벽 붕괴 이후에도 지워지지 않은 동독 감시 체제의 상흔을 목격하고, 전직 슈타지 요원들과 피해자들을 취재하기 시작한다. 생생한 인터뷰, 소설 같은 서사가 어우러진 《슈타지랜드》는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감시에 익숙해지고, 두려움 속에서 침묵하게 되는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이 질문은 분단과 독재의 기억을 가진 한국 독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잊힌 사람들의 목소리를 복원해낸 이 책은 자유와 인간의 존엄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다시금 일깨우는 강렬한 논픽션이다.
독일 지도 1945~1990
베를린 장벽 지도 1961~1989
1 베를린, 1996년 겨울
2 미리암
3 보른홀머 다리
4 찰리
5 리놀륨 궁전
6 슈타지 본부
7 나이 든 남자들의 냄새
8 걸려오는 전화들
9 율리아에겐 할 이야기가 없다
10 이탈리아인 남자친구
11 N 소령
12 립시
13 폰 슈니―
14 기분이 더 나빠져요
15 크리스티안 씨
16 사회주의적 인간
17 선 긋기
18 상패
19 클라우스
20 골름의 보크 씨
21 파울 부인
22 거래
23 호엔쇤하우젠
24 본자크 씨
25 베를린, 2000년 봄
26 장벽
27 퍼즐 맞추는 사람들
28 미리암과 찰리
감사의 말
애나 펀더(Anna Funder)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에서 국제법‧인권법 변호사로 재직했고, 라디오‧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제작자로도 활동했다. 1997년 포츠담의 오스트레일리아 센터 상주작가로 선정되어 머물던 중, 과거 동독을 지배했던 거대한 감시 체제의 참상을 목격했다. 슈타지(국가보안부)의 잔혹한 감시 아래 삶이 철저히 파괴된 피해자들과 전직 슈타지 요원들을 인터뷰하여 탄생한 《슈타지랜드》는 감시가 개인의 내면과 영혼을 어떻게 무너뜨리는가를 생생한 목소리로 세밀하게 그려낸다. 이 작품은 2004년 영국 최고의 논픽션상 새뮤얼 존슨상(현 베일리 기포드상)을 수상했으며, 전 세계 28개국에서 출간되며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올 댓 아이 엠All that I am》(2011)으로 마일즈 프랭클린상을 수상하고 국제 IMPAC 더블린 문학상과 영연방 작가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2025년 국내에 소개된 《조지 오웰 뒤에서》는 〈뉴욕타임스〉〈이코노미스트〉〈가디언〉 등 주요 매체의 베스트셀러로 선정되며 국제적 화제를 모았다.
1966년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태어났다. 파리, 베를린, 뉴욕에서 살았고 현재는 가족들과 시드니에 거주하고 있다.
책 속으로
슈타지는 정부가 통제를 유지하기 위해 둔 내부 군대였다. 그 기관의 임무는 스스로 선택한 어떤 수단이든 가리지 않고 사용해 모든 사람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슈타지는 당신을 찾아오는 손님이 누구인지, 당신이 어디에 전화를 거는지, 심지어는 당신의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지 아닌지까지 알았다. 그것은 동독 사회 전체에 퍼져나가는 하나의 관료 체제였다. 어느 학교나 공장이나 아파트 단지나 술집에든 동료들과 친구들에 대해 슈타지에 보고하는 누군가가 있었다. 세부에 집착하던 슈타지는 공산주의의 종말을, 그리고 그것과 함께 찾아올 국가의 종말을 예견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1989년과 1990년 사이 슈타지는 완전히 뒤집혔다. 어제는 스탈린주의 첩보 조직이던 것이 오늘은 박물관이 되었다. 40년 동안 ‘조직’은 중세시대 이후로 독일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기록에 맞먹는 분량의 자료를 만들어냈다. 슈타지가 자국의 남자들과 여자들에 대해 남긴 기록들을 똑바로 세워 늘어놓으면 180킬로미터나 되는 선이 만들어질 것이다.
_21~22쪽, 1장 〈베를린, 1996년 겨울〉
미리암에게 과거는 찰리가 죽었을 때 멈췄다. 피크닉이나 요리, 휴가처럼 자신의 진짜 삶에 관한 기억들은 ‘미리암’이 ‘우리’였던 때의 기억이고, 그 일들은 그와 찰리가 함께 했던 일들이다. 마치 찰리의 죽음 이후의 시간들은 중요하지 않기라도 한 것 같다. 그 시간들은 시간이 아닌 시간, 역사가 아닌 역사를 쌓아온 시간이었다. 미리암은 용감하고 강인하면서도 동시에 부서져 있다. 그가 말하는 동안, 그의 존재는 마치 그 자신에게 그 자체로는 더 이상 실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보다는 한때 존재했던 삶에 바치는 살아 있는 묘비명에 가까운 것 같다.
_76쪽, 4장 〈찰리〉
장벽이 무너진 뒤, 독일의 매체들은 동독을 ‘역사상 가장 완성된 감시국가’라고 불렀다. 마지막에 슈타지는 9만 7,000명의 요원을 두고 있었는데, 이는 인구 1,700만 명의 나라를 감시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는 수였다. 하지만 그 외에도 17만 3,000명 이상의 정보원이 국민들 사이에 존재했다. 히틀러의 제3제국에서는 시민 2,000명마다 한 명꼴로 게슈타포 요원이 있었고, 스탈린 치하 소련에서는 국민 5,830명마다 한 명꼴로 KGB 요원이 있었다. 하지만 독일민주공화국에서는 국민 63명마다 한 명꼴로 슈타지 장교 또는 정보원이 존재했다. 어떤 추정치에 따르면 시간제 정보원까지 포함할 경우 시민 6.5명마다 한 명의 정보원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밀케는 반대 의견이 보이는 곳마다 적을 찾아냈고, 적을 더 많이 찾아낼수록 더 많은 요원과 정보원을 고용해 그들을 진압하게 했다.
_95쪽, 6장 〈슈타지 본부〉
“처음에 슈타지에서 일했을 때는 결혼한 상태였지만, 우린 행복하지 않았고, 전 제 아들의 선생님 중 한 명하고 사랑에 빠졌어요. 우린 관계를 이어가기 시작했죠. 가장 친한 친구한테 그 얘기를 털어놨는데, 그 친구가 알고 보니 지나치게 충성심이 강해서 직장에다 그걸 보고했지 뭐예요. 그 사람들은 절 사흘 동안 독방에 가둬놨어요. 그러고는 저를 강등시켜 1년 동안 건설 현장에서 일하게 했죠. 제 상사가 이러더라고요. ‘누구든 바람을 피울 수는 있지만, 모든 게 보고는 되어야 하거든.’”
_239쪽, 15장 〈크리스티안 씨〉
하지만 나는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독일민주공화국이라는 개념을 곰곰이 생각해보는 중이다. 공산주의, 적어도 동독식 공산주의는 닫힌 믿음의 체계였다. 그것은 진공 속에 존재하던 우주,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들과 천국들을 갖춘, 그 형벌과 구원이 바로 여기 지상에서 집행되던 우주였다. 처벌의 상당수는 단지 믿음의 부족, 혹은 믿음이 부족하다는 의심만으로도 이루어졌다. 배신행위는 가장 미세한 징후들로 측정되었다. 서방 텔레비전을 수신하도록 맞춰진 안테나, 노동절에 내걸리지 않는 붉은 깃발, 누군가가 그저 정신을 온전히 유지하기 위해 호네커에 대해 늘어놓는 저속한 농담 같은 것들로.
_246~247쪽, 16장 〈사회주의적 인간〉
장벽이 세워지던 8월 13일, 코흐는 주둔지로 호출되었다. 비상 상황이었고, 모두가 경계 태세를 유지해야 했다. “이틀 뒤에 지휘관에게 불려 갔어요. 지휘관은 제 부츠를 보더니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너무 허술하다고 하더군요. 그러고는 제게 호네커를 포함한 한 무리의 사람들과 동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가시철조망이 쳐지고 장벽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구간을 따라서요. 그러더니 그는 제게 새 부츠를 장만하라고 했습니다. 그날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여름날이었어요. 체크포인트 찰리가 세워질 곳에 도착했을 때, 서쪽에서는 시위하러 나온 군중이 우리를 향해 고함을 치고 있었습니다. (…) 그때 전 겨우 스물한 살이었어요.” 그는 말한다. “그냥 선을 긋는 제 일에만 집중했죠.”
_266~267쪽, 17장 〈선 긋기〉
“전 이렇게 말했어요. ‘브라보. 훌륭하군요. 근데 당신들은 하나만 할 수는 없는 겁니까? 내가 슈타지에서 일했기 때문에 벌받는 걸 보고 싶은 겁니까, 아니면 슈타지에 맞서서 일했기 때문에 벌받는 걸 보고 싶은 겁니까? 원하는 게 정확히 뭔가요?’” 이제 그도 웃고 있다. 지금이 그의 순간이다. 선을 긋기는 했지만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았던 남자는 이제 장벽 이후의 잔해로부터 어떤 도덕적 정당성을 끌어내고 있다.
_281쪽, 18장 〈상패〉
코흐 씨는 보른홀머 거리에서의 ‘국경 시설’에 관한 슈타지의 도표와 사진을 내게 주었다. “일급비밀이에요!” 그는 복도에 있는 복사기에서 그것들을 복사하며 기쁜 듯 소리쳤다. (…) 미리암은 자신이 울타리를 넘었던 지점에서 150미터쯤 떨어진 곳에 다리가 있었다고 했다. 나는 내가 그 자리에 와 있다고 느껴질 때까지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기차 두 대가 교차한다. 두 기차의 바퀴 리듬이 서로 얽혔다가 다시 떨어져 나간다. 기차들이 사라지자 나는 선로를 바라본다. 적어도 여섯 개의 선로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다시 그 반대로 열차들을 밀어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다음엔 옹벽이 있다. 옹벽은 그리 높지 않지만, 그 뒤쪽의 땅은 높이가 또 다르다. 저기가 미리암이 올라갔던 곳일까? 나는 벽의 꺾인 곳을 찾다가 한 군데를 찾아낸다. 저기가 미리암이 웅크리고 있었던 곳일까?
_282~284쪽, 18장 〈상패〉
클라우스는 뒤로 몸을 기댄다. 담배 연기가 그의 입을 가리며 회색 안개처럼 퍼져나가고, 회색 턱수염도 가린다. “난 슈타지 쪽 사람들이 충분히 벌을 받았다고 생각해.”
“그게 무슨 뜻이야?”
“글쎄, 그 사람들한테 양심이라는 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만약에 없다면?” 나는 빈츠 씨와 크리스티안 씨와 코흐 씨를 떠올린다. 양심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도.
“난 그렇게까지 관심은 없어.” 그는 말한다. “난 그들이 날 파고들게 내버려두지 않았거든.”
이것이 그의 승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이 그가 과거에 매여 그것을 상처처럼 끌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동독에 ‘내적 망명’이라는 게 있었다면, 내적 승리라는 것도 있었을지 모른다.
_298~299쪽, 19장 〈클라우스〉
우리의 행동이 우리의 미래를 어떤 방식으로 저당 잡히게 하는지 알기는 너무도 어렵다. 파울 부인에게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아기를 만나기로 결정할 상황에서, 그리고 나중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그런 상황에서, 양심에 비추어 옳은 행동을 할 용기가 있었다. 하지만 일단 그 결정을 내리고 나니, 그것과 함께 살아갈 완전히 새로운 용기가 또 필요했다. 내가 보기에는 파울 부인이, 사람들이 그렇듯 자신의 힘과 상처를 견디는 능력을 과대평가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 부인은 자신의 원칙 때문에 죄책감 가득한 망가진 사람이 되어 외롭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일의 결과로, 저는 다시는 심문을 받지 않게 됐어요.” 부인은 자신의 남편과 그 세 학생 역시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독 전역에서 온, 터널을 통해 탈출하려 계획하고 있던 서른 명 남짓 되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_338~339쪽, 22장 〈거래〉
알고자 하는 욕구 밑에는 정의에 대한 욕구가 있다. 체제는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미리암이 어떤 형태로든 정의를 찾아내기 전까지 이 세계는 바로잡힐 수 없다. 많은 것이 유리 뒤에 놓였지만 그건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다.
_429쪽, 28장 〈미리암과 찰리〉
이 책을 향한 찬사
잊고 싶은 마음과 기억해야 할 필요 사이에 놓인 생존자들을 감동적이면서도 유머 있게 그려낸 내밀한 초상.
_2004년 ‘새뮤얼 존슨상(현 베일리 기포드상)’ 심사평
탁월하다. 감시 체제 아래의 실제 삶이 어떠했는지를 이보다 섬뜩하고 예리하게 보여주는 책은 없다.
_〈뉴욕 타임스〉
치밀하고 연민 어린 책… 경청이라는 영웅적 행위.
_〈런던 리뷰 오브 북스〉
《슈타지랜드》는 위대하고 독창적인 르포가 여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슴을 찢어놓을 만큼 아프고, 아름답게 쓰인 책이다. 의심할 여지 없는 고전이다.
_〈가디언〉
인상적이다… 슈타지의 촉수가 어떻게 뻗어 있었는지를 완전히 인간적인 관점으로 그려낸 이 초상은, 앞으로 다가올 전체주의적 미래에 대한 경고처럼 읽힌다.
_〈커커스 리뷰〉
분단된 나라에서 살아갔던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의 인상적인 삶의 이야기를 모아냈고, 그들의 이야기를 훌륭하게 들려준다.
_〈인디펜던트〉
저자는 충실한 조사와 개인화된 서술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동독을 탐구하고 설명하는 일에 착수한다. 그는 호기심 가득한 외부인의 기민한 눈으로 개인적 서술들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 서술들은 1989년 이후 통일 독일의 부인할 수 없는 성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내부에 하나의 평행세계처럼 존재하고 있는 한 장소의 초상을 때로는 충격적으로, 또 때로는 기이하게, 그리고 종종 유쾌하게 드러낸다.
_〈파이낸셜 타임스〉
《슈타지랜드》는 감시하는 사람과 감시당하는 사람의 비율이 공산주의 체제하의 소련보다도 더 높았던 한 나라로의 음울한 여정에 우리를 데려간다.
_〈더 타임스〉
《슈타지랜드》는 과거의 베를린을 아는 사람 누구에게나 익숙함과 놀라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삶이 언제나 감정적인 쇼처럼 펼쳐지는 한 도시를 흥미롭게 소개하는 입문서가 될 것이다.
_〈스코틀랜드 온 선데이〉
보기 드문 문학적 재능으로 쓰인 매혹적인 책. 동독의 억압이라는 잔혹한 현실을 이보다 더 훌륭하게 소개해주는 작품은 떠오르지 않는다.
_〈선데이 텔레그래프〉
속임수와 배신 위에 세워진 정치 체제가 얼마나 엄청나게 인간을 소모시키는지를 섬뜩할 만큼 세밀하고 실감나게 전한다. 끔찍한 이야기지만, 생동감과 재치가 넘치는 문체로 쓰였다.
_〈데일리 메일〉
베를린 장벽에 의해 삶이 형성되었던 사람들의 잔인한 역사에 대한 탁월한 서술.
_〈선데이 타임스〉
냉전기의 동독이라는 이상하고 끔찍하며 사악할 정도로 잔인했던 장소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그 공포만큼이나 슈타지의 부조리함 역시 훌륭하게 그려낸다.
_〈이브닝 스탠다드〉
펀더는 청소부, 학생, 그리고 심지어는 전직 슈타지 요원들과도 대화를 나누며 분열된 동시에 놀라울 만큼 현대적인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정서를 생생하게 재현한다.
_〈마리 끌레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