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종언’ 이후, 세계는 왜 우리가 기대했던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모두가 자유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확신했다. 세계는 점점 더 자유롭고, 더 풍요롭고, 더 평화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 믿었다. 자유민주주의는 공동 번영을 이루고, 충분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며, 모든 시민에게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참여를 보장하는 체제로 자리 잡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난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정반대다. 불평등은 심화되었고, 포퓰리즘과 권위주의가 부상했으며, 시민들은 자유민주주의에 등을 돌리고 있다. 대체 자유민주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런 아세모글루는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는 외부의 적이나 포퓰리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가 스스로의 균형을 잃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한다. 한때 압제에 맞서 자유를 확장했고 평등을 진전시켰던 자유주의는 기성세력이 된 뒤 기술 변화와 세계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지 못했다. 번영을 공유하고 적절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며 누구든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고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자유주의는 점점 시민의 삶으로부터 멀어졌고, 엘리트의 이념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탈산업화, 불평등, 포퓰리즘, 문화전쟁, 소셜미디어와 AI에 이르기까지 1970년대 이후 세계의 변화를 자유민주주의라는 하나의 서사로 꿰어내며, 공동 번영을 다시 일궈내기 위한 ‘노동계층 자유주의working class liberalism’를 제안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왜 위기에 빠졌는가?
- 자유주의의 내재적 딜레마
자유민주주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정치체제였다. 파시즘과 공산주의에 맞서며 찬란하게 빛났던 자유주의는 경제성장을 통해 공동의 번영을 이루고, 교육과 의료를 비롯한 충분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며, 모든 시민이 자유롭게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고 정치에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보장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광범위한 경제성장을 일구어내며 노동자와 중산층의 삶을 크게 개선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었을 때 자유민주주의의 세계적 승리를 확신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보장하는 바로 그 속성 때문에, 처음부터 몇 가지 딜레마를 안고 있었다. 바로 자유를 부정하는 견해를 어디까지 관용할 것인가, 공동체의 규범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때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가, 그리고 전문 지식과 민주적 자치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한편으로는 모든 생각과 아이디어가 주장되고 지지받을 수 있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 가운데 많은 사람이 자유주의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불관용intolerance”을 외친다는 문제가 있었다. 또한 모든 사람이 표현의 자유와 선택의 자유를 가져야 함에도, 어떤 자유주의자들은 교육받은 사람만이 그런 자유의 가치를 인식하고 사회적 이득을 위해 사용할 수 있으므로, 공적 의사결정에서 “무지ignorance”한 사람들보다 더 많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결론으로 나아갔다. 존 스튜어트 밀을 비롯한 여러 자유주의 사상가들 역시 교육받지 못한 다수의 압제를 우려했고, 전문가와 고학력층에 더 큰 정치적 발언권을 부여하려는 유혹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이러한 딜레마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해법 가운데 하나는 사회계약론적 장치에 의존하는 루소식 진보주의에서 나왔다. 루소는 각 개인이 사적인 이해관계를 넘어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뜻하는 ‘일반의지’에 참여하고 복종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일반의지가 이미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누군가가 이를 해석하기 시작하면, 숙의와 이견의 공간은 급격히 좁아진다. 일반의지에 반대하는 사람은 단지 다른 의견을 가진 시민이 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이익을 알지 못하거나 공동선을 거스르는 사람으로 취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회계약을 통해 하나의 공통된 의지를 상정하는 루소식 자유주의는 평등과 자치를 약속했지만, 동시에 깨우친 소수가 사회 전체에 ‘올바른’ 가치관을 부과하는 사회공학으로 나아갈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 딜레마들로 인해 자유주의가 언젠가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경제가 지속해서 성장하고 공동 번영이 유지되던 시대에는 이 문제가 치명적인 갈등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공동 번영은 어떻게 좌초되었나?
- 산업적 협약의 붕괴와 기술 발전
자유민주주의는 기술혁신과 경제성장을 공동 번영으로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새로운 기술이 생산성을 높이면 기업의 이익이 늘었고, 노동자의 임금도 함께 상승했다. 포드가 대량생산의 첫걸음을 떼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비숙련 노동자를 채용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포드나 GM 같은 기업들은 더 높은 임금과 안정적인 고용을 제공했고, 증가한 노동자의 소득은 다시 자사 제품에 대한 수요를 창출했다(포드가 노동자를 쥐어짜는 대신 높은 임금을 지급하기로 한 결정은, 노동자가 목소리를 내고 법적 권리를 향유하며 민주적 감시가 작동하던 자유주의 사회의 결실이었다). 대량생산 방식은 타 산업으로 확산되었고, 1950~1960년대 서국 전역에서 임금은 놀라운 수준으로 상승했다. 실로 ‘공유된 번영’의 시대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이 선순환의 고리가 끊어지기 시작했다. 위기의 출발점은 전후 자유민주주의를 떠받쳤던 ‘산업적 협약’의 붕괴였다. 제조업의 쇠퇴와 자동화, 세계화는 중산층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흔들었고, 기술혁신의 성과는 점점 더 소수의 기업과 고숙련 노동자에게 집중되었다. 동시에 플랫폼 독점, 지역 격차, 정치적 영향력의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공동 번영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약속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컴퓨터와 정보통신기술이 확산되면서 기업들은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보다 노동력을 절감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활용했다. 반복적이고 중간 수준의 숙련을 요구하는 일자리는 자동화되거나 해외로 이전되었고, 노동조합의 교섭력도 약화되었다. 그 결과 생산성은 계속 올라갔음에도 임금 상승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으며, 성장의 과실은 노동자 전체가 아닌 자본 소유자와 엘리트 대졸자에게 집중되었다(1970년대 말 이후 미국의 중위임금은 연평균 0.45%씩 상승한 반면, 노동생산성은 연평균 1.5% 이상 증가했다).
자유주의는 왜 노동계층을 잃었는가?
- 탈산업사회의 정치와 대졸자 연합
미국의 통치 철학이 명확하게 자유주의적 개념에 기반을 두게 된 것은 루즈벨트 행정부 시기였다. 뉴딜 시대의 자유주의는 노동운동, 남부 민주당(딕시크랫), 고학력 전문가 집단(루즈벨트 스스로가 보스턴 브라민 가문 출신이었다)의 연합 위에 세워졌다. 노동자와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시장을 규제하고(1935년 와그너법으로 노조 활동 합법화), 사회보장을 확대하는 한편, 행정국가를 운영할 전문가들에게 큰 역할을 부여했다.
그러나 저항 세력에서 권력의 주체로 올라선 자유주의 앞에는 커다란 과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개인의 자유와 진보를 옹호하고 반자유주의적 정책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았다. 자유주의는 이제 권력의 자리에서 성장해야 했다. 누가 이 아젠다를 지휘할 것인가?
1970년대 이후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 경제의 발전은 대졸 전문직과 엘리트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크게 올려놓았고, 이들은 노동계층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 반면 자동화와 제조업 쇠퇴는 노동계층의 소득과 사회적 위상을 약화시켰으며, 대졸자와 비대졸자는 주거지, 직장, 결혼, 인간관계, 가치관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점점 더 다른 세계를 살아가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자유주의 정치의 기반도 뒤흔들었다. 뉴딜 시기의 노동자·전문가 연합은 해체되었고, 민주당을 비롯한 서구 중도좌파 정당은 점차 고학력 전문가와 대졸자의 정당으로 재편되었다. 노동계층이 상대적으로 더 선호했던 노조 강화, 보호무역, 공공 일자리 정책보다 (공공 프로젝트보다 세후 재분배에 중점을 둔) 조세와 재정지출 중심의 정책을 중시하게 되었고(미국에서는 워터게이트 베이비스로 불린 민주당의 고학력 신인 정치인들이 이를 주도했다. 295쪽), 노동계층의 경제적·문화적 요구와는 점차 거리를 두었다(자유주의의 “부작위의 죄”). 그 결과 많은 노동계층 유권자가 중도우파와 우파 포퓰리즘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한편 대졸자 집단 내부에서도 엘리트 대졸자(시장과 능력주의에 우호적)와 대중 대졸자(시장에 비판적이고 재분배 선호)의 경제적 이해관계는 달라졌지만, 이민·동성결혼·낙태·세계화 등 문화적 이슈에서는 공통된 가치관을 형성했다. 여기에 탈산업경제의 최대 수혜자인 테크 산업이 창업자와 뛰어난 엔지니어는 사회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만큼 가장 큰 보상을 받아야 하며, 사회의 중요한 결정 역시 가장 유능한 전문가가 내려야 한다는 능력주의와 전문가주의를 사회 전반에 확산시켰다. 그 결과 자유주의는 점차 자치와 숙의보다 전문가의 판단과 엘리트의 리더십을 더 신뢰하게 되었고, 시민 전체의 참여보다 ‘올바른 결정’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띠기 시작했다(자유주의의 “작위의 죄”).
이러한 변화는 자유주의와 노동계층의 거리를 더욱 벌려놓았다. 대학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은 세계화와 이민, 다양성, 젠더 이슈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지만, 제조업 쇠퇴와 지역공동체의 붕괴를 경험한 비대졸 노동계층은 전혀 다른 현실을 살아가고 있었다. 자유주의 정치는 점차 후자의 경제적 불안보다 전자의 문화적 우선순위를 더 적극적으로 대변하기 시작했고, 노동계층은 자신들이 정치의 중심에서 밀려났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선거 전략의 실패가 아니라 자유주의 내부의 방향 전환이었다. 자유주의는 원래 다양한 공동체가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실험하고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사상이었다. 그러나 탈산업시대에는 점차 하나의 보편적 가치관을 사회 전체에 확산시키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사회공학’이 등장한다. 자유주의는 왜 표현의 자유와 자치보다 올바른 가치의 확산을 더 중시하게 되었는가?
사회공학: 문화전쟁과 백래시의 기원
- 깨우친 사람들이 선의에서 출발하여 사회를 통제하고자 하는 시도는 역사적으로 반복된다
2016년 9월, 미국 대선 유세 당시 힐러리 클린턴은 트럼프 지지자의 절반을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 외국인 혐오에 물든 “한심한 자들의 바구니”라는 범주에 넣을 수 있다고 발언했다. 자유주의 사회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혐오 발언(불관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어떤 사회든 불관용까지 표현의 자유로 인정해 용인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들의 자유를 제약하고 폭력적인 억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규제할 것인지 그 사이의 어딘가에 선을 그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차별과 혐오를 줄이고 더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겠다는 선의는 점차 하나의 가치관을 사회 전체에 확산시키려는 ‘사회공학’으로 변질되었다. 그리고 자유주의가 이러한 가치들을 설득과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합의된 상식처럼 다루며 스스로의 원칙을 훼손하기 시작한 과정에서 오늘날의 문화전쟁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사회공학이란, 비판적인 사고나 토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사람들의 가치관과 사고를 재구성하려는 노력을 말한다. 오늘날의 사회공학은 국가 권력의 강압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교육과 기업의 인사제도, 대학, 언론, 시민단체, 각종 전문직 집단이 특정한 가치관을 사회의 표준으로 만들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언어와 생각을 점차 용납하지 않게 되는 과정을 통해 작동한다. 표현의 자유보다 ‘올바른 가치’가 우선시되기 시작했고, 대학에서는 보수 성향 연사의 강연이 취소되고(DEI에 비판적이었던 MIT 존 칼슨 강연 취소 사례), 기업에서는 의무적인 DEI 교육이 확대되었으며, 일부 대학(UC 버클리)에서는 교수 채용 과정에서 DEI에 대한 입장을 사실상의 평가 기준으로 삼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는 폭력적이지는 않았지만(그래서 강력한 백래시를 불러왔다), 자유주의의 핵심 원칙인 표현의 자유와 자치를 약화시켰다.
그런데 깨우친 사람들이 선의에서 출발하여 자신들의 신념에 맞춰 사람들을 통제하고자 했던 시도(사회공학)는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온 하나의 메커니즘이었다. 중세 가톨릭교회는 성직자를 통해 신앙의 통일성을 강요했고, 중국 제국은 과거제와 관료를 통해 성리학적 규범을 전국에 확산시켰으며, 이슬람 세계에서는 울라마가 종교 규범을 사회 전체에 주입했다. 이 사례들과 오늘날의 사회공학은 권력의 필요에 의해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국가 폭력을 동반했는지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실무자들(성직자나 관료 vs. 대학·언론·기업·시민단체에 자리 잡은 대졸 전문가 집단)이 사명감과 권위를 바탕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사회의 표준으로 만들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이러한 사회공학은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자유주의 엘리트가 더 많은 관용과 평등을 추구할수록, 비대졸 노동계층은 자신의 가치관과 사고를 통제받는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 불만은 강한 백래시를 낳았고, 트럼프와 같은 반자유주의 정치세력은 이를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했다. 여기에 더해 몇몇 요인이 문제를 한층 더 악화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이 소셜미디어인데, 사고 단속에 나서려 하는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매우 가시적인 형태의 규범 집행 가능성을 확대하면서 공급 주도형 사회공학의 인센티브를 강화했다. 동시에 소셜미디어는 사회공학에 대한 불만을 증폭하고 조직하는 수단을 제공해 악순환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렇게 자유주의의 사회공학은 반자유주의의 사회공학을 불러왔다. 사회공학은 또 다른 사회공학을 낳는다.
소셜미디어는 어떻게 위기를 증폭시키는가?
- 알고리즘 시대의 자유주의
알고리즘과 AI는 자유주의의 원칙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유주의가 직면한 딜레마를 훨씬 더 심화시키며, 동시에 공동 번영을 회복할 새로운 가능성도 제공한다.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느냐에 있다.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은 자유주의의 가장 중요한 토대인 표현의 자유를 직접 검열하지는 않지만, 저스틴 사코Justine Sacco 사건(367쪽)처럼 분노와 도덕적 비난, 동료 집단의 압력을 증폭시켜 ‘알고리즘판 규범의 우리’를 만들어낸다. 그 결과 현실의 공동체가 제공하던 신뢰와 사회적 학습은 약화되는 반면, 에코체임버와 온라인 군중은 사고 단속과 사회적 배제를 더욱 강력하게 만든다. 여기에 광고 기반 플랫폼의 비즈니스 모델이 결합하면서, 가장 자극적이고 논쟁적인 콘텐츠일수록 더 널리 확산되고 좌우 진영 모두에서 사회공학과 백래시가 반복되는 악순환이 형성된다.
AI는 어떤가? AI는 방대한 정보를 처리하는 데는 뛰어나지만, 자유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자산인 인간의 실험, 공동체의 경험, 사회적 학습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이에크가 ‘분산된 지식’ 개념을 통해 주장했듯이, 유용한 지식은 중앙에서 집계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개인과 공동체가 현실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에서 생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AI의 역할은 인간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판단과 학습을 보완하는 것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교육과 지식 생산, 공동체 자체가 약화될 위험이 크다.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느냐에 따라 자유민주주의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AI의 미래 역시 정치경제적 선택의 문제다. 지금처럼 자동화와 AGI 개발, 디지털 광고에 AI가 집중된다면 일자리는 줄고 공동 번영은 더욱 멀어질 것이다. 반대로 AI가 노동자를 대체하는 대신 노동자의 숙련과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업무를 창출하는 ‘노동자 친화적 AI’로 발전한다면, 산업사회에서 무너졌던 공동 번영을 디지털 시대에 다시 회복할 수도 있다, 결국 자유주의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정치와 경제뿐 아니라 테크놀로지의 발전 방향 자체를 자유와 공동 번영이라는 목표에 맞게 다시 설계해야 한다.
새로운 공동 번영을 향하여
- 노동계층 자유주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유주의가 다시 사회의 중심 이념이 되려면 무엇보다 노동계층과의 단절을 극복해야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자유주의는 공동체를 경시하고, 문화적 사안을 중심으로 한 사회공학에 치우쳤으며, 탈산업화로 무너진 노동계층의 삶과 공동 번영의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노동계층 자유주의는 이러한 실패를 바로잡기 위한 새로운 자유주의의 청사진이다. 그것은 공동체를 자유주의의 핵심 기둥으로 복원하고, 표현의 자유를 다시 절대적인 원칙으로 세우며, 다양한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국민의식을 회복하고, 노동계층의 정치적 목소리와 사회적 존중을 되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저자는 어떤 상황의 바람직성을 따질 때 개인을 기초 단위로 삼는다는 점에서 자신의 입장을 비자유주의적 공동체 이론과 구분한다. 460쪽). 동시에 공동체의 자치를 존중하되, 공동체가 개인의 기본적 자유와 공동체를 떠날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자유주의의 레드라인도 분명히 한다.
새로운 자유주의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다시 공동 번영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40년 동안 노동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온 기술의 흐름을 바꾸어야 한다.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역량을 높이고 새로운 업무와 일자리를 만드는 ‘노동자 친화적 AI’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 친화적 기술을 지원하는 공공정책, 자동화를 과도하게 장려하는 조세제도의 개혁, 직업교육과 현장훈련의 강화, 빅테크 독점 완화, 노동조합의 새로운 역할이 필요하다. 또한 자유주의는 양질의 공공서비스와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면서도 불필요한 규제와 사회공학적 절차는 줄이고, 의료·교육 등 공공서비스의 생산성을 높여 자유민주주의가 다시 실질적인 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은 이민, 소셜미디어, 정치 자금, 고령화, 기후변화, 세계화 같은 새로운 시대적 과제에도 적용된다. 자유주의는 공동체의 문화적 우려와 자치를 존중하면서도 이미 사회의 구성원이 된 이민자의 권리와 책임을 함께 보장해야 하며, 표현의 자유는 지키되 플랫폼의 알고리즘과 기업 권력은 규제해야 한다. 또한 고령화와 기후변화, 세계화를 위기가 아니라 노동계층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와 공동 번영의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변화 자체를 막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방향을 노동자와 공동체에 유리하도록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노동계층 자유주의는 자유주의를 조금 수정하자는 제안이 아니라, 자유주의를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프로젝트다. 표현의 자유, 공동체, 자치, 공동 번영이라는 자유주의의 핵심 원칙을 회복하고, 그것을 노동계층의 삶과 다시 연결할 때 자유주의는 비로소 엘리트의 이념이 아니라 다수 시민의 정치가 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가 다시 번성할 수 있다면, 그것은 기술관료나 사회공학이 아니라 노동계층과 함께하는 자유주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