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푸틴: 그는 과연 세상을 뒤흔든 요승인가
조지프 푸어만
양병찬
2017-03-20
396
140*220 mm
979-11-85585-34-5 (03990)
17,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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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라스푸틴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세상은 훨씬 나은 곳이 되었을 것이다!”

1917년의 제정러시아와 2017년의 대한민국, 반복되는 역사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

이 책은 라스푸틴 전기의 결정판이다. 옛 이야기들에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라스푸틴의 허황된 삶, 논란 많은 인간관계, 불가사의한 죽음 뒤에 숨은 진실을 밝힌다. 저자 조지프 푸어만은 라스푸틴의 유년기에서 시작하여 농부와 설교자로 살았던 청년기를 거쳐, 십여 년간에 걸쳐 로마노프 왕가와 맺은 끈끈하고 친밀한 관계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베일에 싸였던 진실들을 낱낱이 추적하고 서술한다.

라스푸틴의 신통력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정말 눈빛만으로 최면을 걸고 다른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었을까? 그는 혈우병에 걸린 황태자의 출혈을 마음대로 멎게 만들 수 있는 치유자였을까? 그는 황후 알렉산드라의 연인이었을까? 영국의 첩보원들이 라스푸틴의 암살 음모에 가담했을까? 이 책은 라스푸틴을 둘러 싼 가십과 추문의 정체를 추적하여 그 진위를 밝히되, 비선실세 라스푸틴의 국정농단을 가능하게 했던 중요한 역사적 실체에 근접한다.

역사의 진실이 여기에 있다. 라스푸틴의 초능력 보유 여부나 성적 일탈 따위가 아니라, 그는 무시할 수 없는 권력의 소유자로서 제정러시아의 붕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라스푸틴이란 존재를 끊임없이 호출하고 부당한 권력을 위임했던 제정러시아의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알렉산드라의 무능과 전횡이 있었다는 것이다. 제정러시아의 비극은 여기에서 비롯되었고, 그 비극이 오늘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라스푸틴 vs. 최태민·최순실

2016년 10월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세상에 드러난 직후, 「AFP」「워싱턴 포스트」「CNN」「가디언」 등의 주요 외신은 최순실을 일컬어 ‘한국의 라스푸틴’ 또는 ‘한국의 여자 라스푸틴’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 이전, 2007년 미국 대사관의 외교 문서에서도 ‘한국의 라스푸틴’이 등장했었다. 당시 주한 미국 부대사였던 윌리엄 스탠튼이 한나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던 박근혜의 배후에 ‘한국의 라스푸틴’이었던 최태민이 있었다고 보고한 것이다. 그렇다면 제정러시아 말기의 라스푸틴과 한국의 최태민·최순실 사이에는 어떤 유사점이 있었을까? 이를 간단히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라스푸틴

최태민·최순실

최고 권력자의 멘탈리티

·차르의 외아들 차레비치 알렉세이가 혈우병 환자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딸인 황후 알렉산드라가 혈우병 보인자)

·두 차례에 걸친 부모(박정희, 육영수)의 암살

종교

·수도원 생활, 수차례의 순례 여행

·동방정교회로부터 끊임없는 이단 시비(흘리스티)

·목사, 승려 등 다양한 종교 섭렵

·영세교 창시

신통력

·황태자의 혈우병 발작을 진정시킴

·최면술 학습

·‘육영수 현몽설’로 박근혜에게 접근했다는 설

·최면술을 잘 쓴다고 알려짐

성 편력

·수차례의 스캔들, 성희롱 등 주체하지 못한 성욕

·여섯 명의 부인

국정농단

·총리, 내무장관, 교회 고위직 등에 측근 기용

·전쟁 등과 관련된 국가 기밀을 황후로부터 미리 입수

·이익 추구를 위해 입맛에 맞는 사람을 요직 등용

·국가 기밀문서 입수 등

극우단체 지원

·유대인, 좌익에 대한 집단 학살과 테러 지원(“붉은 깃발을 걷어내리자!” “빨갱이들이 이야기하는 자유에 속지 말자!”)

·블랙리스트 작성

·청와대가 전경련 등이 어버이연합 등의 보수단체를 지원하도록 요구함

국정농단 고발

·비밀경찰 등의 수많은 보고서를 차르와 황후가 묵살

·‘정윤회 보고서’를 찌라시로 간주하고 되레 작성자를 처벌

뇌물

·공직을 원하는 사람, 나랏돈 지원을 원하는 사람들로부터 뇌물 수수

·재벌 기업으로부터 재단 출연금, 삼성 승계 지원 등의 뇌물 수수 혐의

자녀

·군입대한 아들의 후방(병원열차) 배치

·정유라 이대 입시 부정, 삼성으로부터 승마 지원

최고 권력자의 거처 출입

·확인 절차 없이 한 달에 최소 한 번 이상 황궁 출입

·‘보안 손님’으로 수차례 청와대 출입

최후

·1914년 광신도 여인 구세바로부터 피습당함

·유수포프 등에 의해 1916년 12월 암살당함

·차르 니콜라이 2세는 1917년 2월 혁명으로 폐위된 후 1918년 가족과 함께 처형됨

·최태민 살인 암매장 의혹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구속 수감

·박근혜 대통령은 2017년 3월 탄핵됨

 

 

라스푸틴 전기의 결정판

전설에 따르면 라스푸틴은 제정러시아 말기 세상을 뒤흔든 요승으로, 술에 만취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헤매며 수십 명의 여성들과 정을 통했다고 한다. 그는 종교적 극단주의(religious extremism)의 상징으로 신통력을 갖고 있었고, 최면을 거는 듯한 눈에서는 광선을 내뿜었으며, 제정러시아의 마지막 차르였던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알렉산드라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라스푸틴은 떠돌이 수도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정신도 말짱했다’는 팩트에도 불구하고, 라스푸틴에 관한 수많은 전승들은 온갖 루머와 거짓 주장을 퍼나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면 라스푸틴은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라스푸틴은 제정러시아 말기의 난세를 상징하기도 하며, 최선과 최악이라는 인간 본성의 양면성을 표상하기도 한다. 라스푸틴의 전설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있는 것 같다. 시베리아, 벤쿠버, 런던, 방콕에는 그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이 있고, 그의 얼굴이 그려진 맥주와 보드카 상표가 있다. 그에 관련 뮤지컬, 오페라, 카툰, 다큐멘터리가 수두룩하고 ‘시베리아 소농(小農) 라스푸틴’을 주제로 한 영화도 10여 편 만들어졌다.

라스푸틴의 흥망을 다룬 수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대부분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선정적인 측면을 과도하게 부각시켰다. 이 책의 저자 조지프 푸어만은 러시아 연구의 권위자로, 그가 1990년에 출판한 『라스푸틴: 하나의 삶(Rasputin: A Life)』은 지금껏 라스푸틴에 관한 최고의 책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푸어만은 구소련이 무너진 직후인 1991년부터 구소련의 서고에서 잠금 해제된 라스푸틴에 관한 기밀문서와 라스푸틴과 차르 니콜라이 2세·황후 알렉산드라가 주고받은 미공개 서신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 책 『라스푸틴 – 그는 과연 세상을 뒤흔든 요승인가(Rasputin: The Untold Story)』를 다시 펴냈다. 이 책은 라스푸틴에 관한 역사적 진실을 담고 있는 최고의 평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구도자에서 요승으로

라스푸틴은 숭고한 의도와 진정한 확신을 가진 구도자였으며, 루머와 전설의 영역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매혹적인 삶을 살았지만, 결국 탐욕·욕망·유혹의 화신으로 전락했다. 그는 총명하고 흡인력이 있으며 수많은 선행을 베풀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권력을 탐했고, 권력을 얻으려면 특권층의 약점을 교묘히 이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황후를 구워삶아 교회의 최고 지도자로 부상한 후, 나랏일에도 관여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수상의 해임과 임명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까지 올랐다.

라스푸틴은 정치적 술수를 동원하여 세속 권력의 정점으로 승승장구하였다. 뇌물을 받기 시작하였고, 술과 섹스에 빠져들었으며, 우울과 탐욕과 방종에 젖어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영적 위기를 느끼며 영적 재능이 사라지고 있다고 느꼈고 최면술을 배우기도 했다. 그리고 점차 수많은 적들이 그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권력의 정점에서 몰락의 순간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역사는 반복되고,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비극으로 점철된다

라스푸틴에게 권력을 위임한 것은 차르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알렉산드라였다. 러시아 황실은 라스푸틴을 신의 대리자이자 민중의 대변자로 여겼으며, 특히 알렉산드라는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였다. 그 이유는 황실의 유일한 아들이었던 알렉세이가 혈우병(hemophilia)을 앓고 있었는데, 라스푸틴이 기도하면 상태가 호전되었기 때문이다. 알렉세이의 주치의들은 라스푸틴을 경멸하면서도, 그가 황태자의 고통을 줄여주었다는 것을 마지못해 인정했다. 주치의 표도로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아무리 해도 알렉세이의 출혈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나 라스푸틴이 불쑥 나타나자 순식간에 출혈이 멈췄다.”

라스푸틴의 배후에는 제정러시아의 황실이 있었다.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는 무능했고, 황후 알렉산드라는 라스푸틴을 맹신했다. 제정러시아는 제1차 세계대전에 연합군 측으로 참전하였다가 연거푸 패전했으며 백성들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려야 했다. 정국은 불안하였고 교회는 완전한 혼란 상태였다. 차르의 권세는 급격히 쇠락했고 라스푸틴의 국정농단은 정점에 달했다. 이제 라스푸틴은 가장 막강한 권력인 동시에 가장 매도되고 경멸받았다.

1916년 12월, 라스푸틴은 유수포프와 드미트리 등에 의해 암살당한다. 그리고 제정러시아의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는 1917년 2월 혁명으로 폐위된 뒤, 이듬해 볼셰비키에 의해 가족과 함께 처형되었다. 이 책은 제정러시아의 몰락 과정에서 라스푸틴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역동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 배후에는 최고 권력자의 무능이 있었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라스푸틴을 둘러싼 역사의 진실이 여기에 있다. 제정러시아의 비극이, 2017년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도 낯설지 않다. 역사는 반복되고, 기억하지 않은 역사의 반복은 대개 비극으로 점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