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혼자 죽다
성유진, 이수진, 오소영
2017-04-25
320
145*215 mm
979-11-85585-35-2 (03300)
17,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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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사로부터 아무도 무연하지 않다!

누구도 곁을 지키지 않는 죽음
그 장소에서 한국 남자의 고통을 발견하다

나는 마지막에 어떻게 죽을까? 나의 부모는, 나의 가족들은, 어떤 모습으로 삶의 마지막에 이르게 될까? 과연 존엄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할까? 상상하고 싶지 않은 결말에 이르는 것은 아닐까? 죽음의 방식은 생각보다 사회적, 문화적 조건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단 한 번의 실패로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회, 아무리 일해도 노후가 불투명한 사회, 혹은 꾸준히 일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사회이라면 존엄한 최후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아무도 곁에 없이 혼자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이 한 해 1,200명이 넘는다. 그들 중 대다수가 남자다. 과연 그들의 죽음을 개인적인 불행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그들 가운데 많은 수가 성실한 노동자였고, 평범한 가족을 꾸렸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이유로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남자 혼자 죽다』는 최근 4년간의 취재를 통해 서울의 무연고 사망자들이 어떻게 마지막 순간을 맞았고, 매년 급격히 늘어나는 이러한 무연사無緣死가 왜 발생하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젊은 대학생들로 구성된 취재팀은 치열하고 저돌적으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낸다. 죽음의 장소를 추적하고 있지만, 이 책의 목적은 은밀한 죽음의 엿보기가 아니다. 죽음의 순간까지 그리움이나 희망 따위를 스스로 은폐했던 그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구 천만의 도시에서 그들은 사막의 유골이 되었다. 북적한 서울의 도처에서 매일 같이 무연사가 발생하지만, 그들의 삶은 아무도 찾아보지 않는다. 취재가 계속될수록 무너진 유대 속에서 무연한 삶이 무연사로 향하는 과정은 개인적인 불행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특히 남자가 절대 다수인 한국의 무연사 현상에는 복지 제도의 허점과 가부장 문화, 남자가 경제력으로만 평가받는 세태 등 남성 문제의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원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책은 무연사로부터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오늘, 서울에서 벼랑 끝 남자들의 마지막은 어떠했을까

시작은 약간의 호기심, 그리고 반쯤은 농담이었다. 자취와 하숙으로 서울살이를 하던 ‘언론고시’ 준비생은 옆방 사람들과 몇 년째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는 방에서 죽으면 가족들이 며칠 뒤에야 알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다 한 팀원이 친척의 장례식 때 사업 실패 후 멀어진 가족들이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 사람들을 취재해볼까?’

한겨울 목욕탕 주차장에서 경비가 삼엄한 부촌의 아파트까지, 종로통 뒷길에 숨은 쪽방촌에서 취재 팀원이 사는 평범한 동네의 빌라까지 취재팀은 4년에 걸쳐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서울을 누비며 무연사를 취재했다. 면목동 어느 아파트 놀이터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되어 사망한 김만호(이하 가명)씨는 오토바이 사고로 평생 해온 목공일을 그만두어야 했고, 그로 인해 가족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찾은 놀이터는 생전에 가족들과 단란한 삶을 꾸렸던 동네에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장애인 송석기씨는 명의를 도용당해 대포 차량이 생기면서 수급비가 끊겼다. 돈을 내지 못해 살고 있던 고시원에서 쫓겨난 그는 거리에서 죽었다. 하루를 살아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던 성실한 빌딩 청소부 유재명씨는 일터에서 홀로 생을 마감했고, 자존심이 강하고 허언이 심했던 서울대학교 출신 김근수씨는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다 쪽방촌 교회 쉼터에서 세상을 떠났다.

가벼운 제안에서 시작된 취재는 거듭할수록 무거운 책임이 되어 돌아왔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에 눈물을 쏟게 하는 일이었고, 때로는 견딜 수 없는 기억과 싸워야 하는 일이었다. 어떤 이는 취재팀의 질문을 받고 지인의 죽음을 처음 알았고, 누군가는 끝까지 살고자 했던 무연고 사망자를 벼랑으로 내몬 것은 다름 아닌 복지 제도의 허점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남자의 자기 모멸감, 소득 격차, 가부장 문화…
무연사의 해법을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으로 분석하다

이 책의 1부가 무연사의 장소에서 동네 주민, 지인, 관련 기관, 직장 동료 등으로부터 고인들이 남긴 삶의 편린들을 채집해 벼랑에 선 사람들의 세밀한 풍경을 그려낸다면, 2부에서는 무연사의 이유를 사회적, 심리적, 문화적 차원에서 다각도로 살펴본다.

저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김찬호 교수는 무연고 사망자들의 비정상적 언행과 감정에 ‘모멸감’이 섞여 있음을 발견한다. 그에 따르면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자기 모멸감이 남성들에게서 더 흔히 발견되고, “사회경제적 성취로만 자기 존재감을 세우는 문화”가 한국 사회에서 유독 심한 것은 남성이 절대 다수인 한국 무연사 현상을 읽어내는 데 중요한 열쇠다. 김태형 심리학자는 무연사의 근본 원인으로 돈 버는 수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세태를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소득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설명한다. 차별과 무시가 사라져야 관계가 회복되고, 그때 비로소 무연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고령화 문제를 연구해온 나이토 카츠오 교수의 말을 인용해 무연사와 비슷한 개념인 일본의 ‘고립사’에 대해 일본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도 알아본다. 지역 주민이나 신문, 가스, 전기, 택배와 같은 사업자가 혼자 사는 가구를 방문해 상황을 살피거나, 매일 차를 마시는 일본인의 습관에서 착안해 전기포트 사용 여부로 생사를 확인하는 일본의 방식도 참고해볼 수 있다.

지난 5년 사이 무연사가 두 배로 늘고, 1인 가구가 급격히 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무연사 대책이 검토 중이다. 궁극적으로는 사자를 무연으로 내몬 실업과 이혼, 가족의 해체를 줄이기 위한 구조적인 해결책이 필요하겠지만, 당장 임박한 순간의 지원도 필요하다. 무연생無緣生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사를 확인하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마지막 순간에 손을 잡아주는 공동체의 복원을 통해 안전망은 더욱 촘촘해져야 한다. 딸의 전화번호를 품에 두고 차마 연락하지 못하는 쪽방촌 어느 아버지의 삶 앞에서 저자들은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지만,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하려는 노력이야말로 공동체 복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취재는 계속되어야 한다. 6명의 취재팀으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