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결한 야만인
나폴리언 섀그넌
강주헌
2014-07-10
656
153*225 mm
979-11-85585-02-4
25,000 원
도서구매 사이트

아마존 야노마뫼 족, 석기시대에 살고 있던 인류 최후의 원시부족

야노마뫼 족은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국경 양편의, 아마존에서도 외부인이 접근하기 힘든 곳에 살고 있었다. 1964년 섀그넌이 현지 조사를 시작했을 때까지도 양국 정부는 이들에 대해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이들은 2만 명이 조금 넘었고, 250개의 독립된 마을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이들은 외부 세계와 거의 접촉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유입된 질병으로 떼죽음을 당한 적도 없었다.

야노마뫼 족은 화전(火田)을 통해 플랜틴 바나나 등을 경작하고 있었다. 화전은 구석기시대의 수렵채취문화에서 벗어나 농업과 가축에 완전히 의존하는 단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이들이 석기시대에 살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한편 이들이 가지고 있던 테크놀로지라고는 활과 화살, 불을 지피는 데 사용하는 막대기, 해먹, 질그릇, 줄기로 만든 바구니 등이 전부였다. 칼과 같은 일부 철제 도구가 있었지만 이것은 주로 막 접촉을 시작하고 있던 극소수의 선교사들로부터 얻은 것들이었다.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에도 모습을 비추었던 야노마뫼 족은 이렇게 섀그넌이 현지 조사를 시작한 1964년 당시 지구 상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야생의 원시 부족이었다.


나폴리언 섀그넌, 35년간 야노마뫼 족과 함께 생활한 인류학자

1964년 섀그넌은 대부분의 인류학자가 그렇듯 1년 정도의 현지 조사를 목표로 야노마뫼 지역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야노마뫼 족이 인류학계에서 통념적으로 이해되던 원시 부족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는 오랜 시간 그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의 사회적 행동과 습성을 배우고 인구 변화와 이주 과정,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 이웃 마을과의 전쟁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그는 35년 동안 25번 남짓 야노마뫼 족의 품에 돌아갔고, 대략 5년 정도를 그들과 함께 살았다.

섀그넌은 가장 많은 논란에 휘말린 인류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인류학에 과학(진화론)을 도입하여 기존 학계로부터 엄청난 반발에 부딪혔다. 선교사들이 원주민을 개종시키기 위해 산탄총을 나눠 준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선교단체의 연구 방해와 집요한 비난을 경험했다. 급기야 유전자 실험을 위해 야노마뫼 족에게 고의로 홍역을 전염시켰다는 비난이 제기되었고, 극우적 인종주의자로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후에 섀그넌에 대한 모든 비판은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루소의 ‘고결한 야만인’ vs. 홉스적 인간

루소는 『사회계약론』(1762)에서 자연 상태의 인간은 더없이 행복하고 비폭력적이며 이타적이고 경쟁하지 않고 서로에게 친절하다고 묘사했다. 그러나 섀그넌은 이 책을 통해 이러한 상상이 몽상임을 보여 준다.

인간이 진화하여 사회와 문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안전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섀그넌이 관찰한 야노마뫼 족은 만성적인 폭력과 전쟁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섀그넌이 야노마뫼 족의 땅에 들어갔던 첫날, 비사아시테리의 야노마뫼 족은 이웃 마을과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야노마뫼 족은 이웃 마을에서 초대를 할 때에도 이것이 진정한 초대인지 자신들을 죽이기 위한 음모인지를 항상 고민해야 했다. 오히려 우리의 먼 조상들은 토마스 홉스가 『리바이어던』(1651)에서 묘사했던 자연 상태, 즉 만성적인 전쟁 상황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전쟁에 대한 과학적 분석

사회과학의 전통적인 설명에 따르면 전쟁이란 부족한 전략적 물적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놓고 벌어지는 집단 간의 다툼이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인류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의 시대, 즉 기껏해야 지난 8,000년 동안에나 적용될 수 있다. 오히려 인류의 기나긴 역사에서 집단 간의 갈등이 발생한 주된 목적은 생식가능 연령대의 여성을 추가로 획득하는 것이었다.

섀그넌은 1988년에 야노마뫼 족의 전쟁을 연구한 결과를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현재 생존 중인 야노마뫼 족의 전사(우노카이), 즉 누군가를 죽인 경험이 있는 137명을 조사한 논문이었다. 이 조사에 따르면 40세 이상의 생존자 중 3분의 2가 한 명 이상의 가까운 친족-아버지와 형제, 남편과 아들-을 폭력으로 잃었다. 그리고 생존한 성인 남성의 45%가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을 죽인 경험이 있었다.

흥미로운 결과는 야노마뫼 족 남성들과 부인의 수 및 번식률과의 관계이다. 사람을 죽인 경험이 있는 이 전사들은 평균적으로 1.63명의 부인을 가졌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부인의 수는 0.63명에 불과했다. 이러한 결과는 20세 이후 네 구간으로 분류한 모든 연령대의 성인 남성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또한 더 많은 부인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자식도 더 많을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예측할 수 있다. 실제로 사람을 죽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평균 4.91명의 자식을 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자식 수는 평균 1.59명에 불과했다. 사람을 죽인 사람들이 무려 3배나 많은 자식을 낳은 것이다.

이처럼 ‘전략적 물적 자원’이 갖춰지기 이전의 부족사회는 자식을 생산할 수 있는 결혼 적령기의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적 접근권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섀그넌의 중요한 정보 제공자 중 한 명은 한 마을이 적대적인 여러 마을로 분열될 때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이 반복되자 버럭 화를 내며 “이제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은 그만해요! 여자! 여자! 여자 때문이었소!”라고 소리쳤다.

 

인간은 왜 사회를 조직하게 되었나?

인간을 포함한 일부 생명종들은 왜 사회를 조직하는가? 이것은 여전히 흥미진진한 의문으로, 아직도 사회과학에서 명쾌하게 설명되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 인류학에서는 무리를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사회적 연대 혹은 사회적 우호관계를 레비 스트로스가 제시한 것처럼 주로 공통된 선조로부터 이어진 혈통에 기반한 것으로 설명한다.
섀그넌도 처음에 야노마뫼 족 같은 부족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은 혈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야노마뫼 족의 방대한 족보 자료를 면밀하게 조사한 후에는 유전적 근접성이 혈통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섀그넌은 이러한 연구 결과를 얻기 위해 1960년대에 윌리엄 해밀턴이 제기한 ‘포괄 적응도’ 이론에서 출발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친족 관계에 있는 개체들은 유전자를 공유하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번식하지 않더라도 가까운 친족을 편애함으로써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섀그넌은 자신이 수집한 야노마뫼 족의 족보에서 친족 관계를 유전자의 공유 정도를 기준으로 하여 계량화하였다. 그가 사용한 척도는 근계계수 f라는 간단한 도구로, 형제자매와는 유전자를 50% 공유하므로 f=0.5, 사촌의 경우에는 f=0.125가 된다. 야노마뫼 족의 족보는 무척 복잡했지만, 공통 선조를 알아내면 근교계수를 이용하여 사람들 간의 유전적 근친도를 명쾌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실제로 야노마뫼 족의 모든 마을에서 정치 지도자는 거의 언제나 집단 내에서 최대 다수의 유전적 친척을 보유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정치 지도자 이외의 구성원들 간에도 친족의 수에 따른 신분 차이가 있었다. 이처럼 야노마뫼 사회에서 정치적 신분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친척, 즉 유전적 수에 따라 결정되었고, 이른바 부족한 전략적 물적 자원에 대한 지배권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사회생물학의 도전, 문화인류학계의 반발

섀그넌이 야노마뫼 족의 친족관계를 설명하려던 작업은 당시 그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사회생물학으로 평가받게 된다. 당시는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1975)이 사회과학계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던 때였다.

마빈 해리스, 마셜 사린스를 비롯한 주요 인류학자들은 사회생물학이 인간의 생명과 삶을 다루는 학문들에서 가장 중요하고 종합적인 이론 틀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윌슨의 주장에 크게 분노했다. 해리스는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받은 ‘문화유물론적 결정론’이라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었다. 많은 인류학자들은 인간의 행동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에 생물학과 번식 경쟁, 진화론과 관련된 개념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단호히 주장했다. 특히 해리스는 한 학술대회에서 섀그넌이 야노마뫼 족에게 “전쟁을 선호하는 유전자뿐 아니라 유아 살해를 선호하는 유전자까지 있다고 주장하는 인류학자”라며 비난했다. 해리스는 또 그의 저서에서 원시 부족들 사이에서 여자 때문에 전쟁이 벌어진다는 섀그넌의 주장을
혹독하게 비판했고, 해리스와 섀그넌은 이 쟁점을 두고 수십 년간 논쟁을 지속했다.

1976년 미국 인류학회의 학술대회와 주요 대학에서의 토론회(주로 ‘사회생물학, 왜 위험한가?’와 같은 제목)를 거치면서 사회생물학에 대한 비과학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사회생물학은 인류학자들에게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에서 혐오스러운 것, 예컨대 전쟁과 파시즘, 인종차별과 식민주의, 자본주의, 우생학과 엘리트주의, 대량학살 등을 가리키는 약어가 되었다. 사회생물학적 설명이 어떤 현상을 명쾌하게 입증할 때마다 과학자임을 자부하던 인류학자들은 비이성적인 감정과 정치적 올바름에 호소하였다. 지성의 첨단에 있던 인류학자들이 보여 주었던 태도를 보면 현대인은 문자 그대로의 ‘고결한 야만인’일 수도 있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스캔들

섀그넌에 대한 비판은 2000년 저널리스트인 마이크 티어니의 『엘도라도의 어둠: 어떻게 과학자와 언론인이 아마존을 파괴했는가』가 출간될 때쯤 절정에 이른다. 티어니는 섀그넌이 인종 이론을 실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홍역을 퍼뜨려 수백 명의 야노마뫼 족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고, 아마존에서 금을 채굴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정부의 범죄자들과 관계를 맺었으며, 매카시 상원의원의 극우적 정치관을 지지한다는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타임, 뉴스위크, 가디언, 뉴요커 등의 언론에서는 “과학자들이 인종 이론을 실험하기 위해 아마존 원주민들을 죽였다.”라는 선정적인 기사를 보도했다. 미국 인류학회의 태스크포스팀도 2002년에 일부 혐의를 인정하는 듯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이후 국제전염병학회, 미국 국립과학원 등 여러 단체와 학술지에서 조사한 결과 홍역의 유행에 관한 티어니의 주장은 명백한 거짓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또한 매카시를 지지한다는 혐의의 근거로는 마르크스주의자를 비판했고 매카시와 같은 미시간 주 출신이라는 것뿐이었다. 이외 티어니가 제기한 다른 혐의들 역시 어떠한 객관적인 증거도 없었다. 이에 2005년 미국 인류학회는 태스크포스팀의 보고서를 철회하고 섀그넌을 복권시켰다.

이 논란을 거치는 과정에서 섀그넌은 더 이상 현지 조사를 수행할 수 없게 되어 연구 일선에서 은퇴했다. 또한 건강에도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스트레스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섀그넌은 이렇게 터무니 없는 거짓 혐의가 떠들썩한 스캔들로 확대된 것은 이 조작된 이야기가 너무 흥미진진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의 속성도 생물학적으로 진화한다는 이론이 대부분의 인류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티어니의 책은 사회생물학의 신빙성을 깍아내리며 그 이론을 지지한 이단적인 인류학자를 마녀사냥하기에 적절한 기회였던 셈이다.

 

우리시대 가장 위대한 인류학자의 기록

이 책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원시 부족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현대의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한 단면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러한 섀그넌의 기록을 인간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두고두고 연구해야 할 보물창고라고 평가했다.

이 책은 한 인류학자의 삶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가 인간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과정에서 부딪혔던 지적 야만인들로부터의 비난과 공격은 역설적으로 야노마뫼 족을 통해 관찰한 인간의 본성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