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들의 나쁜 사회
권경우
2015-04-05
304
148*210 mm
979-11-85585-22-2 (03300)
15,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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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사건들’로 존재하고 우리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은 단순하지 않고 사건은 단일하지 않다. 사건은 항상 ‘사건들’로 얽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사건들의 층위와 위상을 맥락적으로 사유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선과 악, 옳고 그름의 이분법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대한 훨씬 복잡한 시선을 회복해야 한다. 진실은 그 너머에 있다. 그리고 각자도생이 아닌 애통하고 분노하는 이들과의 연대로 그 너머에 닿을 수 있다.

이 책은 문화연구자와 비평가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성북문화재단에서 문화사업본부장으로 일하며 지역사회와 문화예술생태계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권경우의 칼럼과 비평을 모은 것이다. 정치와 사회, 인문학과 철학, 대중문화와 예술, 청년담론과 대학사회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저자의 관점은 일관되어 있다. 저자는 우선 ‘헬조선’으로 명명되는 사회를 직면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그 이후의 문제다. 현실에 대한 명확한 분석과 진단이 없다면 잘못된 출구를 찾게 된다. 저자가 생각하는 출구는 정치나 경제 등 개별 영역이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철학 등을 포괄하는 문화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은 곧 분절된 삶이 아니라 통합적 관점의 삶을 일상에서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을 뜻한다.

 

‘착한 사람들’이 ‘나쁜 사회’를 유지하고 강화한다


예측할 수 없는 위험과 재난의 일상에서, 악이 구조적으로 고착된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착한 사람들’로 살아갈 것을 강요받는다. 그들은 저항하지 않고 자신의 무능과 연약함을 자책하며 살아간다. ‘착한 사람들’이 ‘나쁜 사회’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아이러니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롯된다. 이 책의 1부 ‘우리는 나보다 똑똑하다’는 주로 사회적 문제에 관해 쓴 글들로, 세월호 참사, 세 모녀 자살 사건, 인천 어린이집 원아 폭행사건 등으로 표출된 ‘나쁜 사회’를 직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나쁜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은 우리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각성하고 연대를 도모하는 것으로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2부 ‘나는 대한민국이 아니다’는 인문학과 대중문화에 관해 다룬다. 인문학, 자기계발, 힐링 열풍의 사회적 맥락에는 유사점이 있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생존의 조건을 다룬다는 점, 그럼에도 그것만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따라서 그 현상들은 대개 반쪽짜리 허상이다. 우리에게는 제대로 된 인문학과 힐링이 필요하며, 각자도생이 아닌 상호협력의 삶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저자는 ‘응답하라 시리즈’ ‘진짜 사나이’ ‘먹방 유행’ 등의 대중문화 흐름과 ‘일베 현상’ 등에 담긴 대중들의 공통 감수성과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정치적 무의식’을 탐구하며 새로운 문화정치적 지형도를 그리고자 한다.

3부 ‘대학에서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에서는 청년담론과 대학사회와 관련된 글을 묶었다. 대학은 이제 신자유주의의 전진기지가 되었고, 그 핵심을 이루는 청년세대는 탈출구 없는 ‘절벽사회’를 경험하고 있다. 오랜 시간 대학에서 연구자로, 강사로 지냈던 저자는, 희망이 사라진 대학에서 청년세대와 교수들은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를 묻고 있다.

 

문화비평이란 무엇인가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문화비평’으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문화비평은 무엇일까? 문학비평이나 영화비평, 미술비평 등과는 어떻게 다른가? 문화비평은 특정한 장르를 넘어선다. 장르와 장르 사이의 관계성,
장르의 부상과 소멸, 권력의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다룬다. 또한 비평은 대중이 서 있는 자리가 아니라 건너편에서 이루어진다. 비평가는 대중이 서 있는 곳에서 같이 바라보다가 글을 쓸 때는 반대편으로 건너가야 한다. 비평 텍스트를 선정할 때는 대중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글쓰기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대중과 분리되는 입장을 가져야 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문화비평의 하나의 전범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어떤 곳이며, 이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일까’라는 물음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