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
임상철
2019-01-14
240
135*202 mm
979-11-85585-63-5 (03330)
15,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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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에 골몰한 이가
거리에서 보낸 편지들
 
이른 아침부터 인력 사무소로 출근해 전화기를 붙든 사무소 소장의 입술을 바라보며 하루 잠자리를 가늠하는 일상. 그런 일상을 사는 이에게는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도 쉬이 예측할 수 없는 미래다.
빈곤, 아버지의 폭력, 돌에 맞아 실명한 오른쪽 눈,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보육원에서의 성장… 중학교를 졸업하고 밀려나듯 사회로 나온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잇고 고시원, 쪽방, 길거리, 피시방 등을 전전하는 생활 속에서 기어이 생존마저 여의치 않다고 느꼈을 때, 저자는 홈리스의 자활을 돕는 사회적기업 빅이슈의 문을 두드렸다.
잡지 〈빅이슈〉는 재능 기부로 만들어져 고시원, 쪽방, 거리 등에서 주거를 해결하는 주거취약계층에게만 판매 권한을 주어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정가가 5,000원인 잡지 한 권을 판매하면 2,500원이 판매원의 수익으로 돌아가는 구조로, 합법적인 일자리를 통해 홈리스에게 자활의 계기를 제공한다.
〈빅이슈〉 판매원이 된 저자는 잡지를 판매하다가 이내 잡지만 파는 건 무언가 부족하다는 고민에 이른다. 〈빅이슈〉는 표지 모델만큼이나 이 잡지를 판매하는 ‘빅판’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저자는 그 고민을 자신의 목소리로 해결하기로 마음먹고는 어린 시절부터 18년여의 홈리스 생활까지, 자신의 삶에 담긴 이야기를 적고 그려 잡지 뒷면에 끼워 넣었다. 이 책은 그 잡지 뒷면에서 출발했다.
 
‘홈리스’ ‘장애인’이란 명명으로 뭉뚱그려지던 삶이
불현듯 ‘한 사람’의 목소리로 들려온다
 
‘장애인’과 ‘홈리스’는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모습이지만, 우리는 이들의 삶을 동정하거나 연민하며 쉽게 타자화하는 방식으로, 또는 굳이 그런 어둡고 우울한 삶까지 알고 싶지 않다는 뻔뻔한 당당함으로 환대하기를 거부하거나 포기하기도 한다. 그렇게 이름과 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한 개인이 아니라 ‘장애인’과 ‘홈리스’라는 집단으로 명명되어 뭉뚱그려진다. 이들의 삶은 ‘한 사람’의 삶이 아니라 ‘장애인’ 또는 ‘홈리스’의 삶으로, 추상적이고 거리가 먼 흐릿한 이미지로 납작해진다.
이 책은 그 흐릿한 실루엣이 뼈와 살과 목소리를 가지고 무대 한가운데에 서서 말하고 소통한 기록 그 자체다. ‘홈리스’나 ‘장애인’이라 불리는 사람의 이러한 행위는 (당연하게도) 그가 보고 듣고 말할 수 있으며, 그러한 시선을 누군가와 나누고자 하고,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자꾸만 가장자리로 몰아넣는 이 사회에서 절망하지 않고 머물 수 있는 자리와 방법을 찾아 고민하는 ‘한 사람’의 생동한 삶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편지들은 임상철과 비슷한 조건을 가진 수많은 이들의 삶에 라벨을 붙여 단 하나의 이름으로 명명하곤, 개인이 아닌 라벨이 붙은 집단의 삶으로 아주 쉽게 구분 지었던 우리의 안이한 태도를 되돌아보게 한다. 임상철의 이야기는 사회적 의제로서의 ‘홈리스’ ‘장애인’이 아니라 집이 없는 ‘한 사람’, 장애를 가진 ‘한 사람’의 서사로 그 의제를 뒤집어 보여 주며 편견을 깨고, ‘사람답게 산다’는 말의 의미를 곱씹어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안녕하세요. 홍대입구역 3번 출구 빅이슈 판매원입니다.
잘 지내셨는지요?”
 
책에서는 반복을 피하기 위해 덜어냈으나, 그가 A4 용지 3~4장 분량으로 적어 〈빅이슈〉에 끼워 넣었던 편지는 늘 독자의 안부를 묻는 말로 시작한다. 임상철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마치 목소리를 가다듬듯 편지를 읽는 이의 안부를 먼저 물은 뒤, 오늘은 자신의 삶에서 어떤 장면이 무슨 이유로 떠올랐는지를 간단히 설명하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우리는 순식간에 저자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저자는 마치 타임머신을 운전하듯 자신의 삶에서 특정 사건이 일어난 과거의 순간들로 옮겨 다닌다. 그가 운전하는 타임머신에 착석한, 저자의 삶에 무지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그가 데려가는 곳들에서 수없이 생경한 장면들을 마주한다. 처음으로 무료 급식소를 찾았다가 모여든 인파에 놀라는 순간, 1998년의 서울역에서 술판에 끼어들었다가 싸움판까지 마주하고는 그것이 자신의 미래인 것만 같아 좌절하는 순간, 등짐으로 벽돌을 나르다 비계에서 추락하며 ‘이대로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기도하는 순간, 회사에서 만나 생애 처음으로 마음을 나눈 이가 뇌전증이라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 뒤 마주앉은 호프집에서 속내를 터놓는 순간, 오랜만의 술자리에서 다투는 친구들에게 ‘우린 다들 형편없다’며 식당 안이 다 울리도록 큰소리를 내버린 순간 등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잘 지내셨는지요?” 하고 묻는 그의 안부는 ‘나의 삶이 이토록 안녕하지 못했다’는 자기 연민의 촉발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의 편지에서는 자신을 연민하거나 동정의 대상으로 만들려는 어떤 의도도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만들어왔다’는 담담한 고백이 담긴 편지가 묻는 안부는 ‘그동안 당신의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졌느냐’는 질문에 가까울 것이다. 저자의 편지가 자꾸만 ‘나’를 돌아보게 하는 이유다.
 
‘생존’과 ‘생’ 사이에서 사는 우리는 같은 사람이다
 
인력 사무소에서 매일 다른 일을 받고, 하루 또는 한 달 노임으로 그날, 그달의 잠자리를 해결하며 18년여를 살아온 이의 일상은 언뜻 생각하기에 생존에 대한 고민만이 이어지리라 짐작하기 쉽다. 그러나 저자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 또한 우리의 편견이란 사실을 금세 깨달을 수 있다. 임상철은 누구나 그렇듯 ‘생존(살아남음)’과 ‘생(사는 일)’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살아왔다.
저자가 ‘생존’을 위해 찾은 곳이 빅이슈라면, ‘생’을 위해 찾은 것은 미술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품어왔던 화가, 조각가라는 작은 불씨는 거리를 떠도는 삶으로 인해 스러질 뻔했으나 〈빅이슈〉를 팔며 임대주택에 입주하게 되면서 다시 살아났다.
이는 거리에서 맺은 인연들 덕분이기도 했다. 저자가 세상에 보내는 신호를 포착하고 기꺼이 응답한 사람들. 그들은 저마다의 우연으로 잡지를 구매했다가 팬이자 단골을 자처하거나, 팔순을 기념하는 개인적인 회고록의 표지 그림을 저자에게 부탁하거나, 일일 판매도우미로 나서 저자의 판매지에 활기를 부여하기도 하고, 28번째 생일을 맞아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며 한 번에 28권의 잡지를 구매해 가기도 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에서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불현듯 들려오는 한 사람의 목소리를 흘려듣지 않은 사람들. 그들이 거리에서 발견했던 것은 자신이 ‘도와야’ 할 누군가가 아니라 ‘들어야’ 할 한 사람의 목소리였을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사람들은 길거나 짧은 인생의 여정에서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살아갑니다. 저도 저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고 지금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불운으로 얼룩진 자신의 이야기를 동정이나 연민이 아닌 환대의 권리를 주장하는 데 썼다. 우리가 타인의 삶을 앞에 두고 해야 할 일은 비평이 아니라 경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