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경제학이다
대니 로드릭
이강국
2016-05-02
320
145*225 mm
979-11-85585-23-9 (03320)
18,000 원

 

★ 2015년 이코노미스트, 블룸버그 선정 올해의 책
★ 파이낸셜 타임스 선정 최고의 경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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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실패

2000년대 들어 경제학자들은 이제 불황이나 자산 버블은 없을 것이며 대형 은행들은 안전하고 건전하다고 믿고 있었다. 가령 로버트 루카스는 2003년에 “실제로 불황을 예방하는 주요한 문제는 해결되었다”라고 주장했다. 이 모든 믿음은 2007년 이후 주택 버블과 함께 미국의 금융산업이 붕괴하면서 무너져내렸다.

1989년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국제경제연구소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게 개혁 의제를 제시하면서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경제를 정부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자는 의도를 가진 워싱턴 컨센서스는 세 단어로 요약될 수 있었다. ‘안정화하고 민영화하고 자유화하라’ 시장경제의 제도적 기반을 간과하고 모든 국가에 보편적인 정책을 제시한 워싱턴 컨센서스는 이제 파산선고를 받았다.

 

쏟아진 비판들           

금융위기 이후 경제학은 그야말로 동네북 신세가 되었다. ‘경제모델은 너무 단순하며 비현실적 가정에 기반해 있다’ 혹은 ‘경제학은 암묵적인 가치판단으로 가득 차 있으며, 경제의 발전을 설명하고 예측하지 못한다’ 등과 같은 비판이 쏟아졌다. 마이클 샌델의 경우 “삶에서 바람직한 것들에 가격을 매기면 그것들을 타락시킬 수 있다”며 경제학이 시장과 인센티브에 의존함으로써 사람들을 좀먹는 가치를 조장하고 사회적 목표를 해친다고 주장한다.

경제학에 대한 많은 비판은 결국 경제학자들이 잘못된 모델을 쓰고 있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신고전파가 아니라 케인스주의, 마르크수주의 또는 민스키주의 모델을, 공급측 모델이 아니라 수요측 모델을, 합리주의적 모델이 아니라 행동주의적 모델을 써야 한다는 주장들이 그것이다.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일반 이론은 없다

그러나 경제학에 대한 포괄적인 비판은 대부분 적절하지 않다. 그것은 경제학이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에 의해 미리 포장된 결론들의 집합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다양한 가능성을 인정하는 모델들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상대성이론이나 진화론과 같은 자연과학은 보편적으로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와 달리 경제모델은 맥락에 의존하며, 거의 무한한 다양성을 띄고 나타난다. 경제학은 기껏해야 부분적인 설명만을 제시하며, 특정한 상호작용 메커니즘과 인과적인 경로를 명확히 하기 위해 설계된 추상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모델은 다른 모든 잠재적인 요인들을 분석에서 생략하여 특정 원인들만의 영향을 분리하고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만약 많은 원인들이 동시에 작용할 수 있는 경우, 경제모델은 현실을 완벽히 설명할 수 없다.

 

경제학의 강점

대니 로드릭은 경제학자들의 이론적 분석틀인 ‘모델의 다양성’이야말로 경제학의 강점이라고 주장한다. 경제학에는 다양한 모델이 있다. 경제학자들은 이 다양한 모델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더 좋은 세상을 위한 유용한 방책을 제안하며, 지식을 축적시켜 나갈 수 있다. 물리학이나 여타의 자연과학과는 다른 종류이지만, 모델을 통해 경제학은 과학이 된다.

경제학은 더 나은 모델이 나쁜 모델을 대체하며 수직적으로 발전하지 않고, 이전의 모델이 설명하지 못하던 특징들을 설명하는 새로운 모델과 함께 수평적으로 발전한다. 즉, 새로운 모델이 낡은 모델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환경에서 더욱 적절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을 도입하는 것이다.

가령 시장의 효율성에 대한 근본 정리는 완전경쟁시장을 기반으로 한다. 그렇지만 현실의 시장은 완전경쟁적인 경우보다 불완전한 경우가 많고, 이에 맞춰 수많은 불완전경쟁시장 모델이 발전했다(독점적 경쟁, 베르뜨랑 대 꾸른 경쟁, 정적 대 동적 모델 등). 1970년대 이후에는 비대칭적 정보가 모델화되었고 조지 애컬로프와 조셉 스티글리츠는 이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오늘날에는 행동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나타났다. 이처럼 경제모델에서 이상적이고 완벽한 시장은 모든 종류의 방식으로 실패할 수 있는 시장에 길을 내주었다. 그러나 새로운 모델이 이전의 모델들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를 통해 경제학의 통찰의 범위가 확대되었다.

 

경제학에 대한 찬양이자 비판

때로는 모순적일 수도 있는, 다양한 경제모델을 포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경제학자들은 공공정책의 문제를 다룰 때 종종 잘못된 확신과 시건방 때문에 모델의 다양성을 망각하곤 한다. 특히 경제학자들은 어떤 모델을 유일한 모델로 착각하기 쉽다. 2007년 금융위기에 대비하지 못했던 것, 그리고 워싱턴 컨센서스의 실패 모두 이러한 착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또한 다양한 모델을 익히며 훈련받았지만, 상황에 맞춰 어떤 모델을 선택해야 하는 데에는 익숙하지 못하다. 결국 자신의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선호에 따라 모델을 선택하는 경우가 종종 생겨난다.

그러나 경제학은 분명 세상을 개선하는 데 기여해왔다. 로드릭은 케인스와 화이트가 정초하여 1970년대 이전까지 전례 없는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열었던 브레튼우즈체제, 교통량이 많은 시간과 구간에서는 요금을 높이고 다른 시간과 구간에서는 요금을 낮춘 혼잡요금제, 멕시코의 산티아고 레비가 도입한 빈곤 퇴치 정책 등을 예로 들며, 경제학의 분석틀을 공공의 문제에 적용함으로써 세상을 부분적으로마나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경제학에 대한 찬양이자 비판이다. 경제학은 결정적이고 보편적인 답을 제공하지는 못하지만,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훌륭한 분석 도구를 제공한다. 그러나 매우 유연해야 하며 맥락을 중요시해야 하는 경제학의 속성은 어설픈 전문가의 손에서는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