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윌 헌트
이경남
2019-08-20
352
140*210 mm
979-11-85585-73-4 (03300)
17,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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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올라갔다. 두 발 딛고 선 이 땅에 더는 깃발을 꽂을 자그마한 공간조차 남지 않게 된 순간, 고개를 돌려 위를 쳐다봤다. 그래서 달 표면을 겅중겅중 뛰어다녔고, 화성의 화산에 탐사선을 보냈으며, 멀리 떨어진 우주 공간에서 일어나는 자기폭풍을 기록했다. 인류의 역사는 오랫동안 바깥세상과 높이에 도전해온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발아래’는 어떠한가? 땅 아래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지표투과 레이더나 자력계 등이 개발되었지만, 여전히 희미하고 뿌연 영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표면을 디딘 채 햇볕을 받으며 사는 인간에게 땅 아래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세상이었다. 단테도 말하지 않았는가. “너무 어둡고 깊은 지옥은, 모호하고 심오하여 짐작도 가지 않았다. 눈으로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골짜기는 그 골에 무엇이 깃들었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여기, 분명 우리 발밑에 광대히 펼쳐져 있지만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그 유령 같은 풍경으로 뚜벅뚜벅 걸어 내려간 이가 있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논픽션 작가인 윌 헌트다. 
첫 번째 저작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유려한 필치로 발아래 세계의 삶과 역사를 매혹적으로 그려낸 《언더그라운드》(원제: Underground)는 아마존이 선정한 “2019년 2월의 책”에 이름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뉴욕타임스 북리뷰〉, 〈가디언〉, 〈네이처〉, ‘커커스 리뷰’, ‘셸프 어웨어니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리터러리 허브〉 등 다양한 언론과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수많은 독자를 사로잡았다. 이 책은 지하세계에 대한 저자의 집착을 보여주는 개인적 탐험사인 동시에, 인간과 지하의 역사와 관계를 통해 동굴과 그 밖의 어두운 공동(空洞)이 갖는 두려움과 매혹이 우리를 어떻게 지하에서 내쫓고 또 다시금 끌어들이는지를 다룬 광각적 연구다. 
 
 
버려진 지하철역과 성스러운 동굴에서
핵 벙커와 고대 지하도시에 이르는 경이로운 탐험
 
이 책의 저자 윌 헌트는 열여섯 살 여름, 고향 로드아일랜드주의 프로비던스에서 자신의 집 아래를 지나는 버려진 터널을 우연히 발견한다. 절퍽거리는 진흙 바닥과 어둡고 습한 공기의 터널 안을 손전등 불빛에 의지하여 한 발 두 발 내디딘다. 이후로도 그는 특별히 할 일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이따금 터널 안으로 기어든다. 불안정한 십 대 시절, 오직 터널만이 그의 마음 둘 곳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센 폭풍우가 한차례 지나간 뒤 늘 그렇듯 파고든 터널 안에서 그는 양동이 제단과 마주한다. 천장에서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물은 가지런히 놓여 있던 양동이들을 뒤집으며 무서운 소리로 두드려댔다. 이 첫 번째 터널 탐험에서 받은 매혹적인 인상은 두고두고 그의 영감을 자극하여 뉴욕의 지하철과 하수구를 시작으로 전 세계 2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동굴, 지하묘지, 벙커 등을 탐험하는 평생의 여정을 추진할 역사적 계기가 된다. “그렇지 않아도 무한한 매력을 지닌 이 책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것은 헌트라는 한 개인이 맺어온 지하와의 깊은 인연이다”라는 〈토론토스타〉의 추천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윌 헌트는 어렸을 적의 이 경험을 두고 “상상력을 통째로 뒤집을 만큼 맹렬하게 내 마음을 사로잡았고, 스스로에 대한 사고방식과 세상의 구조물을 대하는 태도를 근본부터 바꿔놓았다”고 고백한다. 이어서 번뜩이는 재치로 무장한 젊은 작가는 다행스럽게도 개인 차원의 각성에서 머물지 않고 “지하의 주제를 지표면 위로 끌어올려 대양을 헤치듯 힘차게 밀고 나간다.”(맷 파이프, 아마존 에디터) 
오래전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말하였듯, “컴컴한 동굴이 주는 위협적인 두려움”과 “그 안에 어떤 신비로운 것들이 있을지 모르니 한번 알아봐야겠다는 욕망”에 동시에 사로잡힌 것이다. 땅 아래 세상에서 우리는 철저히 외지인이다. ‘자연선택’이 우리 몸이 요구하는 기초대사부터 우리 눈의 격자 구조에 이르기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에서 인간을 지하가 아닌 지표면에서 지내야 하는 존재로 설계한 까닭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날에도 땅 아래 세상을 응시할 때면 어둠 속 포식자에 대한 가물거리는 기억으로 두려움에 몸을 떤다. 무언가 그럴듯한 이야기가 은밀히 숨어들었으리라 기대하면서도, 여전히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다. 그러나 지하세계 입구 언저리에 웅크리고 앉은 우리는 종내 내려가고야 만다. 우리 영혼의 핵심에 묻힌 충동에 이끌려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만다. 
대륙과 신기원을 아우르는 서사적 전개 과정에서 윌 헌트는 지하세계를 탐구하는 데 평생을 바친 ‘지하 마니아’들의 방식을 따라간다. NASA의 미생물학자 팀과 함께 블랙힐스의 지하 1.6킬로미터 지점까지 내려가 생명의 기원을 추적하는가 하면, 파리의 카타콩브와 하수도에서 팔꿈치로 진흙을 헤치며 ‘도시 탐험가’들과 탐험을 감행하고, 호주 원주민 가족과 어울려 오지에 있는 3만 5,000년 된 신성한 광산으로 들어간다. 또 뉴욕 지하철 터널에 일기를 기록하는 유령 같은 그라피티 작가를 끈질기게 추적하며, 피레네 산맥에 위치한 동굴 깊은 곳에서 구석기 예술가들이 만든 신성한 조각상과 마주한다. 서평 전문매체 ‘셸프 어웨어니스’는 이 책을 “문화와 시대를 초월하고 현대와 고대의 관습을 고리로 엮어 다채로운 모자이크로 붙여가는 매혹적인 여행”이라고 묘사했고, 저자는 땅속 곳곳을 거침없이 이리저리 오가는 여정으로 그에 화답한다. 
책은 신비로운 장소 못지않게 그곳에 파묻혀 깊은 애정과 집착으로 지하세계를 탐닉하는 인물들의 내밀한 이야기에도 조명을 비춘다. 무려 40년간 집 아래에 깊숙한 굴을 파 내려간 ‘두더지 인간’ 윌리엄 리틀, 1818년 땅속에 존재하는 미지의 존재를 좇겠노라 선포한 존 클리브스 심즈, 파리의 보이지 않는 지층을 가장 먼저 이미지로 포착해낸 나다르, 도시 아래의 고요한 어둠을 뚫고 고대의 물줄기를 따라 걸었던 스티브 덩컨, 동굴 아주 깊은 곳에서 생물학적 리듬을 끊어내 보려 했던 미셸 시프르 등을 통해 지하에 대한 인간의 위대한 열망과 집착을 펼쳐 보인다. 그들 ‘지하의 신봉자’들은 하나같이 어떤 형태의 초월성을 추구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들보다 앞서, 경외감과 거대한 신비함에 압도되어 쿵쾅거리는 마음을 안고 동굴 속으로 조심스레 기어든 고대인들이 있었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 지하세계의 권세에 매달린 멀쩡한 문명인들이 있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 볼 수 없는 것을 보기 위해 내려간다.
오직 어둠 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빛을 찾아 그곳으로 간다."
 
“헌트는 자신의 탐험이 갖는 과학적·역사적·문학적·심리학적·영적·비유적 속성을 드러내지만, 그를 따라가다 보면 그것은 특이하다기보다 인류의 보편적인 속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미국의 대표적 서평 매체 ‘커커스 리뷰’는 이 책을 이렇게 평했다. “지하(underground)”라는 말을 들으면 누군가는 땅속을 떠올리고, 지옥을 떠올리고, 금단의 영역을 떠올린다. 이 모든 것의 공통점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너머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동굴 입구를 지나 아래로 내려갈 때, 조상들은 마음의 어떤 합리적 지평에서도 세속의 영역을 떠나 영적인 세계로 들어간다고 믿었다. 물론 현실에 대한 인식이 대부분 이성과 합리성에 근거를 둔 과학과 기술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더는 이런 식으로 세상과 가교를 잇지 않는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태곳적 어둠에 이르는 순간, 당황스럽고 불안하게도 우리는 그들과 같은 각도로 몸을 비틀고 수그리고 엎드려 기고 암벽에 부딪히는 숨결을 느낀다. 스스로 아무리 근대화되고 문명화되고 계몽된 존재로 여길지라도, 내면에서 어떤 원시적인 충동이 요동치는 것을 느낀다. 세네카는 동굴의 어둠 속에서는 “우리의 영혼이 종교적 두려움에 압도당하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썼다. 우리는 더는 동굴 깊숙한 곳에서 신성한 의식을 거행하지 않지만, 그곳에서 불리었던 기도문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오래된 우주론은 마음속 깊은 곳에 여전히 단단하게 도사리고 있다.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 《온 트레일스》의 저자인 로버트 무어는 이렇게 극찬했다. “내 기억에 이처럼 수시로 감탄하고 무릎을 치며 읽은 책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일 것이다. 이론이나 현실적으로는 분명 대담하지만, 결코 무모하지는 않은 시도다.” 책은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이 수수께끼에 싸여 있으며, 얼마나 많은 부분이 우리를 끈질기게 피하고 있는지, 얼마나 더 깊은 세상이 우리가 아는 것 너머에 실재하는지 검토한다. 그리고 그 모든 탐험에는 예술과 과학, 역사와 인류학이 찾아낸 결과물이 촘촘히 얽혀 있다. 우리는 땅 위, 계몽에 집착하는 세상에 산다. 모든 비밀 위로 투광등을 비추고 모든 굴을 드러내 어둠의 마지막 흔적을 남김없이 뿌리 뽑으려 한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지하세계와 인연을 맺는 바로 그 순간, 미지의 것에 대한 의심을 살며시 누그러뜨리게 된다고 말한다. 이윽고 아무 때고 아무것이나 다 드러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이야기한다. 지하는 언제나 작은 틈과 보이지 않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해준다. 그 깊고 긴 심연은 우리가 무질서하고 비합리적인 존재이며, 마법의 사고와 꿈의 비행과 상실의 기간을 수시로 겪는 존재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윌 헌트는 빼어나고 세련된 문장으로 우리의 ‘표면 지상주의’를 치유하고 지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차원의 세계로 이끌어, 그동안 닫혀 있던 몸과 마음의 눈을 뜨게 한다. 그로 인해 독자들은 넉넉한 마음으로, 아주 기꺼이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유형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지하의 풍경이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는 우리의 믿음에 어떻게 형태를 부여하는지 그 과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혹적인 이야기”(마이클 핀클, 《숲속의 은둔자》의 저자)는 보이지 않는, 표면 아래에 있는 어둠에 대한 생생한 조명을 권한다. 끝없이 흥미진진한 여정을 함께 거치고 나면, “독자들은 지면에 뚫린 구멍 하나도 예전과 같은 시선으로 보지 않게 될”(〈뉴욕타임스 북리뷰〉) 것이다. 어렸을 적, 우리는 모두 무언가의 탐험가였다. 이 책 《언더그라운드》는 그 문고리를 다시금 더듬는 짜릿한 계기인 동시에, ‘볼 수 없는 것’에 접속하고자 하는 영원한 열망에 관한 명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