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글쓰기
이고은
2019-11-25
236
128*188 mm
979-11-85585-79-6 (03800)
13,800 원

 

★2019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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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입에 머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여섯 글자가 있다. 《여성의 글쓰기》는 지난 십여 년간 기자 생활을 하며 꾸준히 글쓰기 훈련을 해온 저자 이고은의 한때는 면구스러웠던, 그러나 더는 누추하지 않은 사뿟한 고백을 담은 책이다. 고립되고 옹졸해진 마음들이 잔뜩 날이 선 채로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겨누는 반지성의 사회에서 이고은은 자신의 뭉근하고 끈질긴 경험을 토대로 존엄함을 지키는 첫걸음으로서의 글쓰기에 관해 말한다. 
책은 “나는 글 쓰는 사람입니다”라는 절절한 크기의 첫 문장으로 독자를 맞는다. 글을 쓴다는 것은 대관절 무엇이며, 우리에게 이 고역의 행위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아가 다른 무엇도 아닌 ‘여성의 글쓰기’는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스스로 ‘알파걸’이라고 믿었던 이고은은 남성 중심적인 크고 거대한 질서 아래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버텼지만,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경험하며 무너지고 만다. 여성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겪는 소외와 배제, 차별로 인한 고통을 그제야 피부로 느끼게 된 까닭이다. “인간이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완전한 성찰을 얻을 수 없는 한계적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책의 문장들은 태어났다. 《여성의 글쓰기》는 혐오와 소외의 시대,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언어를 찾는 여정에 함께하도록 이끈다.
 
 
“제대로 살기 위해, 나는 써야만 했다”
글쓰기 노동자가 ‘나의 언어’를 찾기까지
 
〈경향신문〉 정치부와 사회부에서 일하며 대한민국의 갖가지 사회 구조적 문제들을 마치 자신의 고민인 양 떠안고 살았던 기자 이고은은 육아를 이유로 사표를 낸 후, 이제껏 알지 못하고 보지 못했던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와 마주한다. 적지 않은 시간 사회적 노동을 이어오며 크고 작은 도전과 성취를 이루었건만,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핍진하게 쪼그라들었다.
이고은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이전과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것뿐이었다. “왜 세상은 나에게만, 여성에게만 포기를 향한 선택을 강요하는 것일까.” 그런 그에게 글쓰기는 가장 갈급한 일이요, 유일한 해방이었다. 자신 안의 불편한 감정에 귀 기울이고 그 이유를 찾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다단했지만, 간신히 붙잡은 단어들이 휘발되어 사라져버리기 전에 이고은은 쓰고, 쓰고, 또 썼다. 다행히 일간지 기자 생활을 하며 붙은 ‘글쓰기 근육’이 있었기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인위적인 환경에서 다져진 기술이었지만, 글쓰기 근육은 그를 살게 하는 힘이 되었다. 
다만 이고은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자로서의 글과 이후의 글에 결정적 차이가 있음을 깨닫는다. ‘나의 언어’였다. 그는 “자기만의 언어를 갖는 일은 삶을 되짚고 성찰하고 돌파해가는 일이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내기 위해 가장 절실한 과제”(23쪽)라고 말한다. 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직시하고, 수용하고, 넘어서고자 하는 이고은의 움직임을 읽는 순간, 우리도 덩달아 마음을 들썩이게 된다. 그 간절함과 긴요함을 아는 까닭이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나의 언어로 ‘내 글’을 써보지 못한 회한은 뒤늦게 나를 재촉했다. 펜을 놓고 자아가 사라져버리는 기분이 극에 달할 무렵, 나는 어떻게든 나의 언어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어를 잃어버린 삶은 기록되지도, 기억되지도 않을 것이라는 공포가 엄습했기 때문이다. 삶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고 소리 내어 말할 목소리를 잃어버렸다고 느낄 때, 내 안의 모든 것을 더듬어 나의 언어를 끄집어내고자 애썼다.”(23쪽)
 
 
“글쓰기는 여성에게 최적화된 노동이다”
자신의 언어를 찾기 위한 전략과 기술 그리고 의미
 
이어서 이고은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매우 희망적인 명제를 전한다. 바로 “글쓰기는 여성에게 최적화된 노동”(18쪽)이라는 것이다. 글쓰기는 억압받는 삶에서 비교적 물리적으로 자유로이 행할 수 있는 노동으로서, 이는 여성의 한계 동시에 가능성에 대한 명제이기도 하다. 남성을 기본값으로 살아온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모든 여성은 언제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숙명에 놓인다. “남성에게 언어는 절실한 문제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이 사회의 언어는 이미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 논리, 문제의식에 대해 일일이 표현할 필요도 없고, 남성으로서의 삶에 의문을 가질 일도 없다. 그러니 지금보다 더 나은 질서를 모색할 이유도 별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여성은 남성의 언어로 가득한 이 사회에서 자신의 언어를 찾아 헤맨다. “그 언어란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지워진 존재로서 경험의 기록이며, 자신을 배제하는 체제에 던지는 질문”(147쪽)이다. 이고은은 냉엄한 현실과 거대한 벽을 인식할 때면 오히려 막막해진 적도 있었지만, 막연하게 살아가는 것보다는 나의 존재가 훨씬 분명해졌다고 힘주어 말한다. 삶의 방황, 생활의 혼란에서 출발한 질문의 해답을, 그는 결국 페미니즘에서 찾았다. 그 도구는 쓰고 읽는 글이었다. 
인생의 항로가 바뀌는 경험에서 그는 분투했고, 이를 벼리고 벼려 자신만의 온전한 언어로 빚어낸 것이 책 《여성의 글쓰기》다. 이고은은 글쓰기에 필요한 일종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관한 생각을 시작으로, 기자 생활을 통해 쌓아둔 사유와 고민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또한 ‘경력단절여성’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글쓰기의 힘에 대해 절감한 바를 적으며 잃고, 무력함에 빠지고, 좌절하면서도 저항하며 일어서고자 했던 크고 작은 경험이 글쓰기에 미친 영향에 관해 썼다. 후반부에서는 개인을 넘어 사회적 존재로서의 우리가 글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고, 또 꿈꿀 수 있는 희망을 강조했다. 더불어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어떻게 쓸 것인가’를 주제로, 글쓰기에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나름의 기술을 정리하며 글쓰기 숙련기술자로서의 내공을 아낌없이 담았다.
 
 
“우리의 언어가 세상 밖으로 꺼내져 나올 때,
아주 미세한 진동이 일어난다”
 
이고은은 충분하게 주어지지 않은 밭은 시간 속에서도 간절한 집중력과 진득한 애정을 쏟아 꾸역꾸역 글을 써 내려갔다. 집안일과 돌봄 노동 등 일상 시간 대부분을 누군가의 보조자로서 역할하는 데 써야 했던 그는 “누구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깊은 밤, 냉랭한 새벽”이 되면 원고 앞에 앉았다. 눈이 가장 피로하고, 온몸 구석구석이 가장 뻐근할 때, 그러나 머릿속은 가장 또렷하고 반짝였다. 나의 언어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그 순간을, 이고은은 “즐거우면서 고통스러웠고, 괴로웠지만 기뻤다”는 말로 갈음한다. ‘들어가는 말’에서도 등장하는 “글쓰기의 고통과 기쁨에 대해 말하고, 나누고 싶었다”는 그의 말은, 독자를 향한 조심스러우면서도 보드라운 손짓과도 같다. 
책은 ‘여성의 글쓰기’로 시작해서, ‘우리의 이야기’로 닫는다. 이고은은 말한다. “여성의 성찰은 실존적이지만 열려 있고, 또 자유롭다. 땅에 발을 디딘 채로 저 너머의 새로운 세계를 꿈꾼다. 이는 생물학적 성별을 떠나, 사실 누구에게나 내재된 ‘소수자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9쪽) 오랜 시간, 우리는 남성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주류의 언어’를 빌려 글을 써왔다. 그러니 주류로부터 비켜서 있는 수많은 타자들의 삶은 자연스레 소외되고 배제되기 마련이었다. 이고은은 엄마가 되기 전에는 몰랐다. 승자와 패자를 명확히 가르는 남성적 질서, 세상을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에 더 익숙했다. 애석하지만 우리 대부분의 인식 또한 그러하다. 남성 중심적인 질서 아래에서 오랫동안 작동해온 이 사회가 마지못해 겨우, 그것도 ‘젊고 새로운 세대의 여성’만을 위해 털끝만큼 내어준 몫을 두고 싸우느라 우리는 허우적댔다. 치열하고 고된 삶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고은은 바로 이 소외와 배제의 경험을 통해 어림짐작조차 쉽지 않은 크고 작게 가난한 무수히 다양한 삶과 마주할 수 있었다. 
목소리 내기는 모든 변화의 출발점이다.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꺼내어 말하는 일에서부터 모든 이야기는 시작된다. 책에는 더 나은 삶을 향한 이야기, 목소리, 글이 촘촘히 담겨 있다. 쓰지 않으면,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여성의 글쓰기》는 우리가 지금 품은 그 마음을 활자에 고이 담아 내보내는 일을 살며시 부추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