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협력사회] 한겨레 “전쟁은 인류의 협력을 넓힌 ‘파괴적 창조’”

  • 2018-10-30

“전쟁은 인류의 협력을 넓힌 ‘파괴적 창조’” 

 

옛소련 출신 미국 이론생물학자 진화론 개념으로 사회·역사 분석
“인간의 초사회성은 전쟁서 비롯 대규모 집단의 협력이 존망 열쇠”

 

초협력사회-전쟁은 어떻게 협력과 평등을 가능하게 했는가
피터 터친 지음, 이경남 옮김/생각의힘·1만8000원.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40주년 기념판이 최근 국내에도 번역돼 나왔다.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의 번식과 복제를 위한 로봇, 이기적으로 프로그램된 생존기계에 불과하다는 도발적 주장은 다윈의 진화론 못지 않게 격렬한 논쟁을 낳았다. 이 책의 초판이 나온 지 꼭 20년 뒤, 영국의 동물학자 매트 리들리는 <이타적 유전자>로 번역된 저작에서, 개체와 종의 생존에 최적화된 행태를 보이는 동물과 인간이 집단 안에서 서로 협동하며 이타적 행동을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경쟁과 개별성이 아닌 협력과 사회성에 주목한 것.

리들리의 주장은 얼핏 ‘이기적 유전자’론에 대한 반박 같지만, 실은 그 연장선에서 동물 세계, 특히 인간 집단의 진화를 더 풍부히 설명해주는 양쪽 바퀴였다. 리들리의 책의 원제는 <덕의 기원>인데, 이는 명백히 다윈의 <종의 기원>을 패러디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는 원저의 부제가 ‘인간의 본능과 협력의 진화’라는 데서도 드러난다. 이기적 본성과 이타적 협동심이 인간 본성의 동전의 양면이라는 게 정설로 굳어지면서, 연구자들의 관심은 상반된 두 성향의 기원과 진화 과정으로 옮겨갔다. 이타성은 본성인가, 학습인가? 이기적 유전자가 이타적 인간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가? 인간의 도덕성이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만의 독특한 본성인지, 영장류때부터 이어져온 진화적 연속성의 산물인지를 놓고 마이클 토마셀로와 프란스 드발이 펼쳐온 상반된 주장이 대표적이다.

 

옛소련 출신의 미국 이론생물학자 피터 터친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2016년 발간된 <초협력사회>라는 책에서, 인간의 이타성과 사회성이 집단 안에서 뿐 아니라 이질적 집단들 사이에서도 나타나는 현상, 다시 말해 전 인류 차원의 거대한 협력이 이뤄지는 ‘초사회성’의 연원과 진화 과정을 추적한다. 초사회성은 “작은 마을에서부터 도시나 국가, 그 이상 큰 무리를 지어 낯선 사람들과 협력할 줄 아는 인간의 능력”이다. 미국과 러시아가 앞장서고 세계 16개국이 참여한 국제우주정거장(ISS)은 “가장 멋지고 거대한 규모의 국제적 협력 사례”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국제연합(UN)도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터친은 이처럼 높은 수준의 협력이 점진적이고 평화적으로 쌓여온 게 아니라 전쟁이라는 ‘창조적 파괴’를 거쳐 이뤄졌다고 말한다. 또 한번의 도발적이고 역설적인 주장이다.

 

터친은 인간의 초사회성을 설명하는 자기만의 논거를 인류의 진화와 사회 역사에서 발견한다. 현생인류는 약 20만년 전에 출현한 이래 아주 오랜 기간을 수십~수백명 단위의 소규모 수렵채집사회를 이루며 살았다. 약 1만년 전 농업혁명과 정착생활로 집단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7500년 전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최초로 수천명 단위의 중앙집권 군장사회가 나타났다. 5000년 전에는 최초의 도시와 국가가 출현했고, 기원전 마지막 1000년 동안에는 페르시아, 로마, 한(중국) 같은 대제국이 형성돼 많게는 수천만명을 통치했다.

 

정착과 경작은 부족간 전쟁을 격화시켰는데, 패배의 결과는 집단 전체의 운명에 결정적이었다. 한 사회가 생존전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진화적 압력’이 극심해진 것. 이는 더 좋은 무기와 전술 뿐 아니라 사회의 견고한 결속과 규모의 확대로 이어졌다. 프랑스 군대의 격언대로 ”신은 대군의 편”이었다. 개인 뿐 아니라 집단의 존망에도 냉혹한 진화론적 논리가 작동한다.

 

전쟁의 가장 끔찍한 결말은 대량학살이다. 그런데 터친은 “이런 야만적이고 잔학한 힘도 창조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승리한 세력은 협력이 안되고 제 기능을 상실한 국가를 제거함으로써 더 협력이 잘되고 풍요로운 국가를 만들어낸다는 것. “코 앞에 다다른 야만족은 제국 붕괴의 진짜 원인이 아니다. 야만족은 사회적 협력을 유지하지 못한 실패의 결과일 뿐(…) 위대한 문명은 살해되지 않는다-그것은 자살로 끝난다.” 냉혹한 진화론의 결론이 서늘하고 비장하다. 지은이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문화 진화의 역사, 협력자의 딜레마, 인간을 ‘평등’하게 만든 발사식 무기의 발달과 전쟁 방식, 과두제 권력의 부패 원칙 등 구체적이고 흥미로운 역사적 사례들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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