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독식 사회] 한겨레 이슈 논쟁: '정치적' 해법에만 기대는 것은 한계가 있다/ 제현주

  • 2019-08-07

제현주
임팩트 투자사 ‘옐로우독’ 대표

시장과 비즈니스의 규칙에 주어진 강력한 헤게모니는 오래도록 사회와 정치가 가하는 일정한 제한 덕에 가능한 것이었다. 어디까지 제한할 것이며 그 제한을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가 늘 문제의 핵심이었다. 분리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상 경제의 장은 필연적으로 정치의 대상이다. 시장은 다수의 사람이 이해관계를 조율해 합의를 이루고 이를 통해 규칙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장소인 것이다. 시장과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가치중립적인 존재처럼 등장해 모든 문제의 해결사처럼 받아들여진다면, 권력구조를 크게 왜곡하는 일일 것이다. <엘리트 독식 사회>의 저자 아난드 기리다라다스가 내놓는 비판은 이와 같은 선상에 있다.

 

그러나 저자가 결론으로 내놓는 ‘정치적’이며 ‘구조적’인 해법 역시 또 다른 왜곡 위에 서 있다. 저자는 정치의 방식을 통해야만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배제된 이들에게도 발언권이 돌아갈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민주주의의 순수한 개념 안에서만 참일 뿐 현실의 정치 안에서는 그렇지 않다. 현실의 문제는 시장 내의 해법과 제도 정치 내의 해법 중 하나를 택하는 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기리다라다스는 자본주의를 고치는 문제에서조차 마켓월드 엘리트에게로 영향력이 집중되는 각종 현상을 길게 비판한 끝에 ‘제도를 고치지 않고서는 근본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며, 따라서 제도를 다루는 정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놓는다. 이 결론은 누구도 반대하기 어려운 치트키 같은 주장이지만, ‘불평등’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없는 현실의 복잡한 문제 앞에서 당장의 실천과 장기적 해법 사이를 저울질할 수밖에 없는 실천자에게는 공허한 말일 뿐이다. 저자의 말대로 마켓월드가 ‘불평등’이라는 단어를 회피하고 싶어 하는지는 몰라도, 그 단어를 그저 말하게 하는 것은 어떤 해법도 되지 못한다.

 

임팩트 투자업에 종사하는 나는 자본의 게임 규칙에 ‘사회적 차원’을 삽입하려는 임팩트 투자라는 일이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의 바퀴를 갈아 끼우는 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바퀴를 갈아 끼우려면 자동차를 멈추게 하든가, 아니면 달리는 자동차와 속도를 맞춰 같이 달려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바퀴를 만들며 자동차의 속도에 맞춰 뛰려고 노력하는 일과 운전자에게 속도를 늦춰보라고 설득하는 일 사이에 하나만을 골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자가 마켓월드의 해법이고 후자가 정치의 해법일 것이다. 우리는 쓸 수 있는 모든 해법과 자원을 동원해야 한다. 여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겸손과 끈기일 것이다. 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제도 정치의 문법 안에서 벌어지는 시도만이 유효한 해법이라는 주장은 오히려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이미 문제는 국가와 제도 정치의 범위를 뛰어넘어 벌어지고, 자본의 게임 또한 그러하기 때문에. 도덕주의적 당위나 정치의 논리는 해법의 일부일 수밖에 없고, 해법의 전체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어 홀연히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지도를 내놓을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2008년 금융위기의 여진이 남아 있던 시기, 금융위기의 원인과 의미에 대한 논평이 쏟아졌고, 자본주의가 변곡점을 맞았다는 주장은 흔한 것이었다. 그 이후 10여년이 지난 지금, 자본 시장의 게임 규칙을 움직여보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기리다라다스처럼 그 노력이 무용했으며 비겁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고, 그 노력이 아직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고 있으며 성과를 판단하려면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가 답해야 할 것은 둘 중 누가 맞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더 해야 하느냐다. 2010년, 금융위기에 대한 논평 중 하나인 <경제학의 배신>(The Value of Nothing)을 썼던 라즈 파텔은 신간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A History of the World in Seven Cheap Things)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본주의 생태계에 대한 인간의 경험과 대응은 성공을 위한 초월적인 지시와 함께 오지 않는다. 그런 것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아이디어로부터 우리의 정치를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한다. “피해를 찾거나 자본주의 생태계 때문에 가장 고통받는 사람을 찾아내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유일한 잘못이 지금 태어난 것인 사람들, 여성, 원주민, 기후변화와 공해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있음을 안다면, 그리고 이 문장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 모두의 행위가 모여 그들의 삶을 더 악화시킨다면, 우리는 어떻게 다르게 살 것인가?” 나는 이렇게 답한다. 시도 가능한 해법을 다 시도하며, 끈기 있게.

 

기리다라다스는 책의 끄트머리에서 “이 책이 나에 관한 것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적인 방식으로 쓰지 않기로 했”지만, “내가 비판하는 것과 나 자신을 분리할 수는 없다”고 밝힌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그러한 한계 안에 있다. 나는 저자가 마켓월드의 현현으로 지목하는 몇몇 회사와 업계에 몸담았던 바 있으며, 현재는 마켓월드의 엘리트가 안전하게 선택한 해법이라고 역시 저자가 비판하고 있는 임팩트 투자에 종사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가장 강력한 허수아비를 만들어 때리는 게임을 펼친다는 의심을 품기도, 동시에 어떤 대목에서는 일상에서 나 역시 느끼는 한계와 모순과 맞닥뜨리며 깊이 공감하기도 했음을 밝힌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04615.html#csidx0c75720b8f8727abb58b562cf4a9b64 onebyone.gif?action_id=0c75720b8f8727a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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